내용요약 1. 재벌사금고화 전락 2. 부실인가의혹 3.대선 공약 파기

[한스경제=김서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의 규제혁신이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며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 규제 완화를 직접 촉구하는 ‘돌직구’를 날리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관련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은산분리 완화 입법안이 이번 만큼은 진척이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7일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IT 기업이 자본과 기술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꾸준히 논란이 돼왔던 은산분리 완화를 직접 입에 올렸고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방법까지 나름 제시한 셈이라 한층 주목을 받았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 시절 은산분리법 완화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최근 “현 시점에 은산분리 완화를 통한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는 국가적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현재 인터넷전문은행의 영업 환경을 앞세운다. 산업자본이 대주주가 될 수 없다보니 대규모 증자를 할 수 없다는 이유다. 진보정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진영에서는 재벌의 사금고화될 수 있음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해 혁신 사례를 듣고 미소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행 은산분리 규제로는 대규모 증자 불가능

은산분리는 산업자본이 은행지분을 최대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은 4% 넘게 가질 수 없다. 쉽게 말해 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돼 은행을 좌지우지 할 수 없도록 은행 지분 소유에 제한을 두는 제도다.

그간 은산분리 규제는 K뱅크(케이뱅크)와 한국카카오은행(카카오뱅크)에게는 족쇄로 작용해왔다. 특히 케이뱅크의 경우 상황이 더 급했다. 현행 은산분리 규제 하에서는 산업자본인 KT가 독자적으로 대규모 증자를 하고 싶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증자를 하려면 거의 모든 주주가 지분율대로 증자에 참여하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해야 한다. KT는 현재 케이뱅크의 지분 10%를 갖고 있다.

지난 4월과 7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각각 출범 1주년을 맞으면서 이 규제의 완화를 요구하는 의견도 곳곳에서 나왔다. 현재 자본금으로는 인터넷은행 영업을 이어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케이뱅크는 자본금 부족으로 대출 영업의 중단과 재개를 이어오고 있고, 카카오뱅크도 출범 당시 대비 대출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인터넷 전문은행 주주 현황. 그래픽=이석인기자 silee@sporbiz.co.kr

◆ '그럼에도 불구하고'...은산법 완화 반대 이유 3가지 

은산분리 규제를 풀어주는데 반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기업이 은행업까지 진출하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된다는 논리다.

# 1. 은행의 사금고화

정의당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7일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진단 토론회’를 열고 은산분리 규제가 지속돼야 하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은산분리 규제 완화 주장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2013년 동양그룹 사태를 통해 개벌 금융계열사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재벌 계열사 동반부실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금융 계열사가 수행한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금융위원회는 특례법에 규정한 대주주 자격 제한과 대주주와 거래 금지 조항 등을 통해 은행의 재벌·대기업 사금고화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2. 부실인가  

다음으로는 케이뱅크 인가 시 정부의 부실심사 문제가 미해결 상태라는 점이 꼽힌다. 케이뱅크 인가를 둘러싼 의혹은 지난해 7월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케이뱅크 예비인가 당시 대주주인 우리은행이 국제결제은행(BIS)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이 은행권 평균치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금융위가 ‘3년 평균 BIS 비율’로 해석해 특혜성 인가를 줬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김은정 참여연대 간사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라는 것은 완전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위한 단계적인 방법을 거치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은 시작부터 은행업 하에 인가가 됐고 그 운영방식에 있어서 무점포 비대면이지 은행과 사실상 동일하니 최종적인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우회적인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부실한 은행업 인가에 대한 책임회피수단으로 은산분리 완화 규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이런 정책은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금융위가 책임을 지는 것이 먼저지 은산분리 완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는 그 이후”라고 덧붙였다.

최근 이같은 지적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은행권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케이뱅크 1대주주인 우리은행은 최근 한 지방금융지주사가 케이뱅크 지분인수 의사를 표명했지만 거절했다. 금융지주사가 우리은행 지분을 인수할 경우 현행 은산법 하에서 문제의 소지는 없다. 굳이 은산법을 완화해야 우리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이같은 시간벌기는 은산법 완화 움직임에 나타나면서 성공적인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얻게됐다.  

# 3. 대선공약 파기 

은산분리 완화가 대선 공약과 배치된다는 비판은 은산법 완화를 반대하는 진영의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인터넷은행에 대해 “각 업권에서 현행법상 자격을 갖춘 후보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금융권에서는 인터넷은행 인가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까다로운 인허가 과정을 개정, 진입장벽을 낮추는 대신 현재의 은산분리 규제는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후보 당시 발언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반박한 상태다. 이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에도 ‘인터넷은행에 대한 진입 장벽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은산분리를 포함한 금산분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은산분리 완화 해법 열렸다…케뱅·카뱅 추후 행보는

요원해 보이던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를 기다리던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카카오뱅크에 비해 주주 구성이 다양해 증자에 더 어려움을 겪어왔던 케이뱅크의 경우, 규제 완화가 이뤄짐에 따라 대주주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자본 확충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문 정부 초반부터 ‘이번 정부에서는 은산분리 완화가 힘들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말을 해주니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완화가 완전히 된다는 가정 하에 증자도 훨씬 수월해 질 것”이라며 “지금은 주주사가 20개나 되고 증자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규제가 완화되고 대주주가 생기면 시간과 과정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은산분리 규제가 풀리면 대주주가 바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지분율 58%를 차지하고 있는 1대주주이고 카카오가 10%로 2대주주인데, 규제가 완화되면 카카오는 한국투자금융지주의 보유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행사해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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