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SK건설 '자연재해' 주장 불구, 업계 전문가 '인재 확신' 의견 내놔

[한스경제=이성노 기자]SK건설이 시공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이 지난달 23일 무너지며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지 3주가 훌쩍 넘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인명피해 규모를 알 수 없는 가운데 관심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천재(天災)냐 인재(人災)냐에 따라서 시공사인 SK건설을 비롯한 관련업체들이 책임져야 할 배상 혹은 보상수준이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지는 데다 나아가서 국내 건설업체의 향후 해외 수주전이나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SK건설은 사고 당시 이례적인 폭우로 댐 상부가 유실됐다며 '천재(天災)'를 주장한다. 라오스 정부를 비롯한 현지 기관들은 사고 당일 아무리 집중호우가 쏟아졌어도 댐 붕괴만큼은 없었어야 했다고 반박한다.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수십년간 댐건설을 해왔던 전문가들과 학계, 건설업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인재(人災)'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라오스 남중부 아타프주에 있는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댐 보조댐이 무너지면서 36명이 사망했고, 98명이 실종했다. /사진=연합뉴스

무너진 보조댐, 36명 사망·98명 실종· 6600여명 이재민 발생

사고의 시발점은 수력발전댐 보조댐 5개 가운데 한 곳이 무너지면서 부터다. 당시 라오스는 우기로 지난달 16일부터 폭우와 강풍 주의보가 있었다. 사고 발생 일주일 사이에 약 1100mm의 집중호우가 내렸고, 사고 전날인 22일에는 약 440mm의 폭우가 쏟아졌다.

댐이 무너지면서 약 5억톤의 물이 쏟아졌고, 13개 마을을 덮쳤다. 14일 댐 붕괴로 36명이 사망했고, 98명이 실종됐으며 이재민은 약 6600명에 달한다.

댐 관리·운영을 담당한 한국서부발전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사고 댐에서 처음으로 침하현상이 발견됐다. 규모는 당시 11cm로서 허용 범위에 있었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틀 뒤 22일에는 댐 상단부 10곳에서 균열이 발생해 복구 장비를 수배했다. 사고 당일 23일 오전 11시께 댐 상단부가 1cm 가량 침하했고, 이때부터 정부에 대피 협조를 요청하고 주민 대피를 시작했다. 오후 5시까지 인근 주민 대피를 완료했고, 하류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 안내를 지속했다.

 

SK건설은 사고 원인을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K건설 "범람으로 인한 자연재해" 주장하지만...

SK건설은 댐이 무너진 직후 사고 원인에 대해 일관되게 '자연재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 평소의 3배가 넘는 폭우가 내리면서 보조댐 5개 가운데 1개가 범람했다"며 "범람으로 댐 상단 일부가 유실됐지만, 절대 붕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SK건설측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사고 전날 오후 9시 댐 상부 일부 유실을 확인한 뒤 당국에 신고해 하류 주민 대피, 긴급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사고 당일(23일) 오전 3시에 본댐(세남노이) 비상 방류관을 통해 긴급 방류를 실시해 보조 댐 수위를 낮추는 작업을 벌였다.

다만 논란이 되고 있는 여수로 작동 여부에 대해서는 "사고 당시 문제없이 작동했다"면서 "사고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일부에선 비상 방류 시간을 두고도책임 소재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댐 관리와 운영을 맡은 한국서부발전이 댐 일부 유실을 확인한 뒤 무려 6시간이 지나서야 비상 방류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댐 업계 관계자들은 라오스 댐 사고 원인을 인재라고 확신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관련업계 "100% `인재`일 것" 확신하는데... 

'천재(天災)'라는 SK건설의 주장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댐 개발사업 업체 대표이사 A씨와 댐 설계 경험이 있는 수력발전소 사업개발 업체 이사 B씨는 "100% 인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수십년간 댐건설에 참여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은 ▲댐 하나만 무너진 점 ▲댐 설계 시 가능최대강수량(PMP)·가능최대홍수량(PMF)을 반영한다는 점 ▲댐 상부가 유실됐다는 점 ▲여수로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점을 근거로 천재일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확신했다. 다음은 각각의 쟁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짚고 넘어가야할 몇가지 쟁점

하나만 무너졌을까

A씨와 B씨에 따르면 5개 보조댐은 모두 구조와 역할이 같다. 폭우에 의한 범람이라면 5개 보조댐이 모두 범람했어야 하는데 한 곳에서만 침하와 유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댐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A씨는 "본댐(2개)과 보조댐이 모두 7개인데 한 곳에서만 문제가 발생했다"며 "만약 홍수라는 천재지변이라면 모든 댐이 무너져야 했는데 하나만 붕괴했다는 것 자체가 인재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설명했다.

PMP·PMF 제대로 반영됐나

이들은 SK건설 주장대로 폭우로 인한 범람이 사고 원인이면 PMP(Probable Maximum Precipitation)·PMF(Probable Maximum Flood)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PMP는 특정 위치에 주어진 강우면적에 대해 연중 어느 지정된 기간에 물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론적 최대 강수량이다. PMF는 PMP를 기반으로 특정 지역에 발생할 수 있는 최대 홍수량이다. 이번에 무너진 보조댐의 경우 200년 빈도의 저수지 유입량의 120%(500년~1000년 빈도)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쉽게 말해 PMF가 제대로 반영됐다면 1000년 이상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홍수를 견뎌야 한다는 뜻이다.

A씨는 "댐을 설계할 때 기본적으로 PMF와 PMP를 반영하는데 폭우가 와서 댐이 무너졌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으로 구성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대응 한국 시민사회 TF'에 따르면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사고 지역 1년 강수량이 4000mm를 넘나들 정도로 많고, 지난 2009년 7월에 1200mm가 쏟아졌다고 기록돼 있다.

'시민사회 TF'는 "사고 전 약 1000mm의 비가 왔다고 자연재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기상 자료 조사가 미흡했을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그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며 "댐을 건설할 때 해당 지역에 대해 몇십 년을 조사하고 축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사고 지역 부근에 댐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축적된 데이터가 많았을 텐데 철저한 조사가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댐 하나만 무너진 점, 댐 설계 시 가능최대강수량·홍수량을 반영한다는 점, 댐 상부가 유실됐다는 점, 여수로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점을 근거로 천재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확신했다. /사진=SK건설

시공·재료 품질관리 진행됐나

댐 건설업계 관계자는 보호공을 제대로 설치했다면 댐 상부가 유실됐을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 보호공이란 댐의 침식을 막기 위해 댐 표면을 암석 등으로 1m 가량 덧쌓는 것을 말한다. 이번에 무너진 댐이 흙댐이지만, 댐 바깥표면은 사실상 암석인 셈이다.

B씨는 "아무리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댐 상부가 유실이 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무너진 것 자체가 인재"라고 말했다.

침하 현상 역시 인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무너진 댐은 흙댐(어스필 댐·earth-fill dam)으로 수력발전을 위해 물을 가둬 수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일 목적댐이다. 어스필 댐에는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댐 내부 중앙부에는 물을 흡수해도 균열이 생기지 않는 점토로 만든 코어를 설치한다. 시공을 잘못하거나 재료가 좋지 않으면 내부 침식이 일어나고 물이 흐르면 안될 곳으로 흘러가는 파이핑 현상이 일어난다.

B씨는 "침하가 생겼다는 것은 코어재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설계자가 아무리 최상의 재료를 선택해도 시공사가 재료 품질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설계의 잘못인지, 시공의 잘못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재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여수로, 제 기능했는데 범람했나

댐은 기본적으로 월류(물이 넘쳐흐르는 현상)를 방지하기 위해 여수로(수위 및 유량이 일정량 이상이 되었을 때 여분의 물을 배수하기 위한 수로)를 설치한다. 또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비상방류시설도 기본적으로 설계한다.

A씨는 "여수로와 비상방류시설이 제대로 시공되고 작동했다면 댐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지적했다. 여수로가 작동했는데 댐이 무너졌다는 것은 PMP·PMF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댐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부실시공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라오스 정부는 사고 원인을 시공사의 부실 공사로 의심하고 있다. /사진=SK건설

줄어든 공사기간, 영향 없었나

시공기간을 단축한 것도 사고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SK건설은 지난해 4월 당초 계획보다 4개월 앞당겨 물을 채우는 임파운딩(Impounding)을 실시했다. 댐 업계에선 댐 실적이 많지 않은 SK건설이 어떠한 이유에서 붕괴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공기를 줄였고, 임파운딩을 빠르게 진행했는지에 대해 의아함을 나타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공기가 줄어든 것 자체가 위험 부담을 안고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한국서부발전과 의견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선 이번 댐 건설 사업이 '건설 및 운영 후 양도(BOT)' 방식이기 때문에 운영 시기를 당길수록 수익을 더 챙길 수 있어 완공 시기와 담수 작업 일정을 앞당겼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인재’ 쪽으로 기우는 여론

라오스 댐 참사 원인을 두고 많은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단 여론은 인재쪽으로 기울고 있는 분위기다. 댐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라오스 정부 역시 SK건설의 주장과는 동떨어진 입장을 보이고 있다.

10일 '비엔티안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라오스 정부 관계자들은 부실시공 가능성 등을 제기했다. 댐이 매년 우기에 예상되는 많은 비를 견딜 수 있도록 시공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룬 라오스 총리는 "사실확인위원회는 국민과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기 위해 면밀하고 투명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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