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또 다시 고개든 ‘신흥국 위기설’…한국 전염 가능성은 ‘제한적’
터키발 금융불안으로 터키 리라화가 가파른 가치 하락을 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허지은 기자] 터키발(發) 금융불안이 패닉으로 치닫고 있다. 터키가 미국인 목사를 장기구금한데 따른 미국의 터키산 철강 및 알루미늄 보복관세 조치가 터키 리라화 급락의 주요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 현상치곤 하락폭이 지나치게 크고 미국과 터키간 종교적 갈등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터키발 금융불안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10일 터키 리라화는 장중 20%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터키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디폴트(Default·채무 불이행)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터키 은행규제감독국(BDDK)은 리라화 폭락으로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아지자 자국 은행에 외환거래 제한을 내렸다. 이날부터 터키 은행들은 외국인 투자자와의 외화·리라화 스와프 거래는 물론 현물·선물 외환거래 등은 해당 은행 자본의 50% 까지만 할 수 있다.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13일 오전부터 시장 안정에 필요한 조치를 발표하고시장과 공유할 것”이라며 “은행 외환거래 제한은 리라화 폭락으로 타격을 입게 될 중소기업 등 실물경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리라화 폭락, 美목사 장기구금 때문

이번 터키 금융불안은 미국과의 마찰에서 비롯됐다. 터키가 미국인 앤드루 브런슨 목사의 장기 구금을 결정한 데 대해 미국이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매기는 관세를 2배 높이기로 결정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혼란이 가속화됐다. 지난 한 주 간 리라화 가치는 27% 절하됐으며 10일에는 하룻새 20% 이상 급락하기도 했다.

통화가치가 하루에 15% 이상 급락하면 외환위기로 불거질 위험이 높다. 지난 5월 같은 상황을 겪었던 아르헨티나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우리나라 원화 역시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 12월 24일 당시 원화가치가 절반 이상 크게 떨어지며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965원까지 치솟은 바 있다.

미국과의 마찰로 인해 러시아 루블화에 이어 터키 리라화가 하룻새 20% 이상 급락하는 등 가치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출처=리딩투자증권

◆ 터키, 디폴트 리스크 ‘매우 높음’?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가 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터키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국가인데다 장기 집권 중인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고려하면 최근 미국과 무역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협상보다는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터키의 경상수지 적자규모는 지난해 기준 GDP 대비 5.5%로 신흥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단기외채 규모가 외환보유액을 크게 웃돌고 있어 외화수급 여건도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터키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은 지난 5월 기준 147%에 육박한다. 쉽게 말해 들고 있는 돈보다 갚아야 할 외화가 더 많다는 의미다.

정책 여건마저 녹록치 않다. 지난 6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터키 중앙은행은 제대로 된 통화 정책을 펼치지 못 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등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터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기준 1년 전보다 15.9%나 치솟았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연구원은 “터키는 경제 펀더멘털도 취약하지만 미국과의 정치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IMF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본다”며 “터키 대통령도 장기 집권을 하고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 타협하기보다는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 2012년 그리스 외환위기와 다른 이유는  

만약 터키가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가장 먼저 유럽계 은행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터키 기업과 은행들은 인근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은행과 긴밀한 공조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앞서 그리스를 비롯해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이 한차례 경제 불안을 겪은 뒤여서 터키 리스크가 더해질 경우 파장이 커질 수 있다.

다만 터키 디폴트는 2012년 그리스 재정위기와는 성격이 다소 다를 것으로 보인다. 터키는 그리스와 달리 유로존 국가가 아니어서 유로존 전체의 붕괴 위험은 낮게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스페인 등 유럽 금융기관들은 2012년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부실채권 비율을 낮추는 등 금융안정성을 높였다”며 “금융위험이 확산되면 유럽중앙은행(ECB)도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스 문제가 재현될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 한국 전염 가능성은... "제한적" 근거는 

터키 리스크가 유럽을 넘어 신흥국 전반으로 번질 위험은 높다. 연초 아르헨티나에 이어 중국, 러시아, 터키까지 가세해 신흥국 금융시장 전반의 위험으로 번질 위험도 있다. 글로벌 변동성 확대에 안전자산 수요가 커진다면 달러화 가치 급등으로 전체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이 증폭될 수도 있다.

박성우 흥국증권 연구원은 “터키 발 우려는 당분간 금융시장 내 안전자산 선호심리를 자극해 달러 강세 및 글로벌 금리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터키 발 금융시장 불안이 일부 유로존 은행권의 건전성 악화로 전이된다면 유로화 상승 동력이 약해져 당분간 달러 강세에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달러 강세의 추세적인 전환은 추이를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유로존 성장세 회복과 ECB의 통화정책 정상화 이슈, 내년 이후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확대 등을 고려하면 달러 강세 압력은 약해질 수 있다.

박 연구원은 “오는 10월 환율 보고서 발표를 전후해 미 정부의 약 달러 유도 가능성도 남아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달러화 약세 압력이 여전히 우위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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