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전근홍 기자] “경미한 외부요인은 재해사망이 아니다” 산행 중 질식사로 남편을 떠나보낸 미망인에게 재해사망 보험금 1억원을 지급할 수 없다는 한 보험사의 답변이다.

이 미망인의 남편은 올해 초 동료들과 산행 중 수분섭취를 위해 ‘콜라비(채소)’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 심정지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 후송된 병원은 질식을 사망 원인으로 진단했고 동행인으로부터 사망자가 질식을 일으키기 직전 음식물을 섭취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그러나 사망자가 생전 보험을 가입했던 A보험사는 경미한 외부 요인, 즉 자연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재해사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망자가 가입했던 보험약관에 따르면 보험사는 질식사 등을 포함한 재해일경우 1억원을 지급하지만 자연사일 경우 10분의 1수준인 1000만원정도만 지급한다. 

불분명한 약관내용에 대해 소비자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가입을 권유한 것인지, 정상적으로 청구한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는 아닌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보험 상품은 미래에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것이다. 본래 계약은 양 당사자 간에 합의하여 내용과 가격을 정하지만 보험은 다르다. 대기업인 보험사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가입하도록 돼 있어 소비자가 계약 내용을 조율할 수 없고 그들이 만든 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상법과 대법원 판례 경향은 보험사에게 약관의 중요한 내용은 반드시 소비자에게 상세히 설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것이 ‘설명의무’다. 반대로 소비자는 보험계약 시 인수여부와 보험료를 책정하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과거질환, 직업을 상세히 고지해야 할 의무를 진다.

문제는 보험금을 청구할 때만 되면 끊임없이 설명의무와 고지의무가 충돌한다는데 있다. 어려운 보험 약관에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이 과거질환을 앓은 병력과 직업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보험금을 면책·삭감하고자 소송도 불사하는 것이다.

실제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보장성 상품과 연관된 민원은 1957건으로 전년 동기(1859건) 대비 5.3%(98건) 증가했다. A보험의 경우 계약 10만건 당 환산한 민원수치를 보면 7.18건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민원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렵고 애매한 보험용어에 있다. 이 용어를 토대로 약관을 만들고 상품을 판매한 보험사는 반드시 상세한 설명을 할 책임이 있다는 지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 A보험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정상적인 보험금 지급심사를 거쳤고 줄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하다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상품판매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또 어렵고 애매한 약관내용에 대해 자체적인 점검을 벌여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A보험 상품을 믿고 가입을 결정한 소비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다. 지금도 소비자들은 주변서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언젠가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보험사는 이제 소비자를 울리는 사례가 나올 때마다 전례에 따른 형평성 문제 운운하며 '과거의 커튼' 뒤에 숨어선 안된다. 보험사는 현재의 사례가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전례라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보험사의 실적개선은 신상품이나 금융상품 개발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험사 미래가 소비자 신뢰를 잃은 채 어찌 밝을 수 있겠는가.

전근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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