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2015년은 황정민으로 시작해 황정민으로 끝날 조짐이다. 올 초 영화 ‘국제시장’으로 단숨에 천만영화 기록을 만들고, 연달아 ‘베테랑’으로 ‘쌍천만배우’에 올랐다. 연말에는 ‘히말라야’(16일 개봉)로 또 한번 감동과 눈물까지 쏙 빼놓는다. 실존인물을 그린 ‘히말라야’는 2005년 엄홍길 대장이 등반 중 사망한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기 위해 에베레스트에 오른 휴먼원정대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황정민은 엄홍길 대장을 맡아 실화처럼 제작진, 배우들을 챙겨가며 한국, 프랑스, 네팔의 여러 산들을 올랐다. “히말라야 촬영 뒤 등산복을 버렸다” “산에 오르기도 싫다” 했지만 엄살이 빤히 보이는 황정민과 마주 앉았다.

-영화를 본 소감은.

“까먹었던 기억들이 살아나며 먹먹했다. 힘든 것들을 견뎌낸 제작진들을 위해서 영화가 미친듯이 잘 됐으면 좋겠다.”

-살아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같은 소재의 다큐멘터리도 있다.

“실화이고, 실존 인물이라 부담이 됐다. 처음엔 ‘댄싱퀸’에서 호흡한 팀과 일하는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는 웬걸 ‘이게 아니었구나’ 했다. 힘이 부치는 아슬아슬한 지점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 악물고 찍었다.”

-엄홍길 대장으로부터 조언을 구했나.

“산에 대한 태도, 사람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엄 대장께 많은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별말이 없었다. 심도 깊은 얘기를 잘 안하셨다. 얘기가 없는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기도 했다. 산악인들은 8,000M의 숨 한번 제대로 못 쉬는 힘든 곳을 올라가며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깨닫는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삶과 경계에 대해 섣불리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엄 대장이 외로웠겠구나 느꼈고, 충분히 이해했다.”

-힘든 산을 타는 모습은 배우라는 직업과도 오버랩된다.

“한번은 히말라야 12좌를 오른 산악인이자 영화에 수퍼바이저를 맡은 김미곤 대장께 ‘힘든 곳을 왜 올라가느라 고생하냐’고 물었다. 대답을 듣고 할 말이 없었다. ‘형님은 왜 배우 하세요’라고 되묻더라. 괜히 질문했구나 미안했다.”

▲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다.

“다같이 고생했다. 촬영 지점까지 짐도 이고 지고 올라갔다. 사고 없이 촬영을 마쳐야 하니 힘든 티를 내지 않고 내가 먼저 나설 때도 있었다.”

-국내외의 여러 산을 등반했다.

“엄 대장이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산을 오르는 것과 똑같았다고 보면 된다. 프랑스 몽블랑 촬영 때는 8시간 산을 오른 다음 촬영을 시작했다. 눈이 오는 등정 장면에는 강풍과 눈보라가 필요한데, 남들이 내려오는 날씨에 우리는 올라갔다. 눈보라를 얼굴로 맞는데 피부에 상처가 날 정도로 따가웠다. 네팔에서는 촬영을 마치고 3일 정도 여독을 풀 시간이 주어졌는데 막 집에 가고 싶었다. 현지에서 쉬는 것도 용납이 안돼 자비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고 돌아왔다. 북한산 현장에서는 산장까지 무거운 짐을 매고 매일 오르락 내리락 반복했다.”

-고생담을 들려달라.

“네팔의 루크라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인데 착륙할 때 살았다고 박수치며 환호했었다. 2,000여M의 현지에서 3,500M까지 사흘을 9시간씩 걸어 올랐다. 하나 밖에 없는 좁은 길에서 야크들이 지나갈 때 기겁했었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졌다. 고산병도 조심해야 해서 씻지 못하고 물티슈로 닦았다.”

-촬영이 끝났을 때 홀가분했겠다.

“큰 사고 없이 해냈다는데 박수치고 싶다. 양수리 야외세트에서 이석훈 감독이 더 이상 촬영이 없다고 말했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 원래 눈물이 많지 않은데 무거운 짐을 벗게 되니 울었다. 그런 감정으로 울기는 오랜만이었다.”

▲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신적, 체력적으로 참 힘든 영화였겠다.

“맞다. 그럼에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팀워크로 다져진 동료애를 어디서든 보지 못했을 것 같다. 주인공을 떠나 나를 낮추고, 내가 없어지고, 팀으로 움직이는 모습 만으로 큰 공부가 됐다.”

-빨간 볼이 실제 산악인의 모습 같다.

“볼 빨간게 영화에서 잘 살았다. 입술도 늘 터있어 따로 분장을 하지 않았다. 모습이 그래선가 현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대장으로 불렸다. 자연스럽게 책임감이 생겼다.”

-믿음직한 선배, 대장 같다.

“사실 성격상 리더나 대장 역할을 잘 못한다. 뒤에서 장난치고 노는 걸 좋아한다. 촬영 동안 큰 일이 나면 안되니까 제작진, 배우들에게 큰 소리도 내고 독려도 했다. 꼰대들이 할 소리를 하니 부담감도 있었다.”

-어떤 장면이 제일 힘들었나.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발견을 장면과 강단에서 연설하는 장면. 2회 차에 찍었는데 아직 산에 가보지 않았을 때 촬영했다. 내가 엄홍길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등산복도 어색할 때인데 힘들었다. 감독에게 산 촬영을 다녀온 뒤 재촬영을 하자며 찍었는데 붙여보더니 더 찍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편의 천만영화를 비롯해 한국인의 감동 포인트를 제대로 아는 배우다.

“대본 분석을 꼭 하고 깊게 연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관객들에게 감동을 배가시킬 수 있는게 뭔지 공부한다. 오버와 절제의 계산도 철저히 하는 편이다.”

-해외 촬영에 고추장을 싸갔나.

“당연히 가져갔지. 외국음식이 금방 질린다. 장모님이 볶음고추장을 정말 잘 만드셔서 많이 가져갔다. 밥 반찬으로, 소주 안주로 잘 먹었다. 촬영 때는 코펠도 항상 가져가는데 외국은 고기가 싸니까 구워서 한잔했다.”

-등산복이 어울리는 나이다. 자주 입나.

“자주 입는다. 뮤지컬 ‘오케피’ 연습 때도 등산복을 입고 간다. 편한데다 어떤 신발에도 잘 어울린다. 블랙야크를 매일 입는다.”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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