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황정민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다작 배우다. 영화 ‘달콤한 인생’(2005년) ‘너는 내 운명’(2005년)을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쓸며 전성기를 맞은 황정민은 이후 쉴 틈 없는 작품 활동으로 관객을 만났다. ‘국제시장’(2014년) ‘베테랑’(2015년)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했고 ‘히말라야’(2015년) ‘검사외전’(2015년) ‘곡성’(2016년) ‘아수라’(2016년) ‘군함도’(2017년) 등 최근 몇 년 간 ‘다작배우’다운 행보를 보였다. 최근 개봉작 ‘공작’이 흥행세를 보이자 혹자는 “또 황정민이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런 말조차 고맙다. 내가 더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웃었다.
- ‘공작’에서 분한 박석영의 실존인물인 박채서 씨를 만났는데.
“그 분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긴 세월 동안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지 알고 싶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책임감을 갖고 일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까. 내가 질문을 던진다기보다 그 분이 어떤 분일지 어떤 심리상태일지 궁금했다. 첫인상이 참 강렬했다. 상대방의 속을 읽을 수가 없는 눈빛이었다. ‘첩보원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분의 느낌을 내가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표준어와 경상도 사투리를 명확하게 구분하며 연기했다.
“대북공작원 ‘흑금성’일 때는 표준어를 썼고 북한의 눈을 속이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했을 때는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이 캐릭터가 1인 2역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완벽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영화대사보다 양이 많고 호흡이 다른데.
“‘구강액션’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 윤종빈 감독님이 원한 건 우리가 대사를 액션처럼 다이내믹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게 말이 쉽지 실제로 표현하기 참 어렵다. 난 거의 차렷 자세로 많은 대사를 해야 했다. 보통은 손을 쓰거나 동선을 움직이면서 하는데 이번엔 입으로만 하면서도 2중, 3중 심리까지 표현해야 하니 고달팠다. 혹여나 의미가 생길까봐 시선을 돌리거나, 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당황했다.”
-윤종빈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했다.
“늘 궁금한 감독이었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며 소통했다. 굉장히 집요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기억력도 너무 좋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 어떤 장면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늘 생각하는 감독이다.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느꼈다. ‘아 이 장면을 위해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왔구나’라고.”
-북 고위간부 리명운 역을 맡은 이성민과 긴장 관계와 우정을 오가는 연기를 보여줬다.
“연기 잘 하는 사람과 함께하니 기분이 좋았다.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고 기댈 데가 있으니까. 솔직히 ‘공작’이라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성민 형도 되게 힘들어했다. 서로 바닥을 치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배우들끼리는 작품 이야기를 안 한다. 프로 선수들이니까 연기하고 빠져야 한다는 생각인 거다. 하지만 ‘공작’의 경우 학생 작품 느낌으로 접근했다. 다들 자신을 내려놓고 소통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효리가 영화의 카메오로 등장했다.
“거의 마지막 신인데 이효리가 확답이 없었다.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 무조건 출연해야 했다. 감독님이 설득 편지를 잘 써서 겨우 확답을 얻었다. 그 당시 정치적으로 시기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효리도 출연을 확정하기 힘들었을 거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분단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우정을 다루고자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고 하더라. 이효리를 처음 만났을 때 성민 형과 함께 바라보기만 했다. 연예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 ‘공작’ 촬영을 마치고 연극 ‘리차드 3세’로 무대에 섰는데.
“‘공작’을 하고 많은 걸 느꼈다. 내가 정말 모자라는 걸 느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연극 무대에 섰다. 다행히 관객 분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주시며 좋아해주셨다. 그 때 느끼는 감동이 컸다.”
-다작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또 황정민이야?’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처음에는 그 말이 상처가 됐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배우가 몇 명이나 있지 싶더라. 그만큼 내가 그런 말을 들을 위치가 됐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에너지가 생긴다. 오히려 고맙고, 자부심이 생긴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우연치 않게 내 영화만 본 거니까. (웃음) 더 열심히 일할 원동력이 된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jwon04@spor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