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의 눈] 벤투가 실패한 지도자 되지 않으려면
[박종민 기자의 눈] 벤투가 실패한 지도자 되지 않으려면
  • 박종민 기자
  • 승인 2018.08.2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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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벤투(왼쪽) A대표팀 감독과 신태용 전 감독.
파울로 벤투(왼쪽) 대표팀 감독과 신태용 전 감독. /사진=KFA 제공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지난 6월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취재하러 러시아에 갔을 때 얘기다. 2주간 현지에 머물면서 러시아 사람들이 매사에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례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 자동차 운전자는 사람이 보이면 약 50m 이상 전부터 서행한다. 1초라도 빨리 가려고 차들이 정지선에서 꿈틀대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축구도 닮았다. 한국은 너무 조급하다. 정책적으로 일원화되지 않은 유소년 시스템이 선결 과제이긴 하지만, 여론의 조급증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소다.

대한축구협회(KFA)의 신중한 작업 끝에 지난 17일 파울로 벤투(49ㆍ포르투갈) 감독이 한국 축구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벌써부터 여론이 좋지 않다. 중국리그 충칭 당다이 리판에서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이력 등 최근 행보가 비난의 주된 근거다.

섣부른 평가는 자제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2001년 1월 1일 거스 히딩크(72ㆍ네덜란드) 감독 선임 후 17년 간 13차례나 수장을 교체했다. 축구계는 부임 초기부터 여론의 낙인이 찍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상처 받고 떠난 감독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 재직 기간은 평균 1년 남짓이었다.

신태용(48) 전 대표팀 감독은 지난 해 7월 울리 슈틸리케(64ㆍ독일) 감독의 바통을 넘겨받고 소방수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아시아 최종예선 두 경기에서 연속 0-0으로 비기자 불과 몇 개월 만에 조롱의 대상이 됐다. 신 전 감독은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으로 재계약에도 실패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인 홍명보(49) 전 대표팀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 실패로 ‘역적’ 신세가 됐다.

2014년 9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전 감독도 초기인 2015년엔 16승3무1패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갓틸리케’ 칭호를 얻었지만, 이후 부진하자 ‘수틀리케’ 등 과도한 마녀사냥에 시달리며 옷을 벗었다.

그나마 예외가 있었다면 히딩크 감독이다. 그는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전과 8월 체코와 평가전에서 0-5로 지며 ‘오대영’이라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이듬 해 한일월드컵에서 팀을 4강에 올려놓으며 ‘국민적 영웅’이 됐다. 주변에서 참고 기다린 덕분이었다. 만일 슈틸리케 감독처럼 중도 경질했다면 월드컵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축구협회는 그 동안 감독들에게 1년 남짓의 부족한 시간을 줬고, 여론은 더 성급하게 감독의 잠재력과 역량을 부정적으로 단정해 버렸다. 국가대표 출신인 K리그의 한 감독은 “(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결과가 나오면 이후에 평가해도 늦지 않다”며 여론의 ‘선평가 후결과’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4년 계약을 한 벤투 감독은 적어도 2~3년의 시간을 지켜본 후 평가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미리부터 너무 띄우거나 깎아 내릴 필요가 없다. 성급한 여론은 ‘실패한 지도자’를 만들 뿐이다.

멀리서도 길 건너려는 사람을 보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정지선에 다가오는 러시아의 차들이 생각난다. 벤투 감독을 바라보는 우리네 속도도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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