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국회 소위 통과...법조계 "자산 있을 때 회생신청이 유리, 채권단도 구조조정 책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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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양인정 기자]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을 했다가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았을 땐 정작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어 파산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을 단행한 한진해운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한진해운이 기억에서 사라지자 무능한 경영자는 뇌리에 남고, 채권자 주도의 실패한 구조조정은 잊혀졌다.

27일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기촉법 제정안은 ‘한계기업의 구조조정 출구가 좁아져 위기’라는 여론에 밀려 내놓은 입법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기촉법은 부활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기업에게는 피부로 와 닿는 제도로 여겨지지 않는다.

◇기촉법 도입하려면 구조조정 잘못에 책임 물어야

기촉법의 제정을 누구보다 반기는 곳이 금융권이다. 워크아웃 절차가 없어지면 채권 회수는 요원해지고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대손충당금만 쌓여가기 때문이다.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은 금융시장의 변동과 연계될 수밖에 없다. 저금리 기조에서 수익성 악화를 고민하는 은행이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에 대해 신규자금을 넣기보다는 회수 중심의 구조조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생각은 다르다. 키코상품으로 피해를 본 수백 곳의 중소기업을 대신해 공동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조붕구 회장은 “기촉법에 따른 워크아웃으로 신규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이점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대가가 너무 크다”며 “중소기업들이 워크아웃제도에 대해 그다지 공감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기촉법이 있던 시기에도 기업들은 워크아웃을 주저해 왔다. 기업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아 워크아웃을 신청한 기업의 비중은 2009년 이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017년 1월 금융감독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와 금융연구원이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기업은 13곳이었으나 워크아웃을 신청한 대기업은 5곳이다. 자율협약을 진행했던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제외하면 기촉법상 워크아웃을 해야 할 11곳 중 6곳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았다. 2015년 13곳이 신청한 것에 비해 7곳이나 줄어든 수치였다.

또 기업 워크아웃의 졸업까지 평균 소요기간은 약 3년이다. 개시연도를 기준으로 워크아웃기업들의 졸업비율을 보면, 2001년 92.3%이었던 것이 2012년에 25%로 까지 떨어졌다. 2014년과 2015년에는 약 40%대까지 졸업률을 보이고 있지만 하락추세는 여전하다.

기촉법이 없어져 위기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기업 워크아웃은 이미 기피하는 제도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기업 워크아웃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을 했다가 실패한 경우 책임을 지우는 보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업이 워크아웃 이후 회생절차에 들어갔을 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제정안에 이와 같은 내용은 담겨져 있지 않다.

전성인 교수는 “주요 채권자가 주주처럼 회사를 구조조정 했다가 회생절차에 돌입하는 경우 기업의 파탄에 주요 채권자의 책임이 밝혀질 수 있다”며 “이 때 책임 있는 채권단은 회생기업의 주주가 주식이 소각되는 것과 같이 채권을 소각하거나 후순위로 전락시키고 회생계획안에 대한 의결권 박탈과 같은 패널티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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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촉법 폐해, 회생신청 앞당겨 해결

금융권에서는 유동성 위기에 돈줄이 막히는 상황에서 워크아웃마저 없으면 한계기업은 신규자금도 지원받지 못하고 회생절차에 들어가 거래처를 잃고 망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기촉법이 있어야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이 쉬워지고 한계기업이 구조조정에 대한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

정말 그런 것일까? 한진해운은 기촉법상 워크아웃이 아닌 자율협약을 진행했지만,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기촉법상 워크아웃과 큰 차이가 없다.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을 하는 동안 부채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채권단의 등쌀에 못 이겨 중요 자산을 처분해야 했다. 한진해운이 회생절차에 들어갔을 땐, 운영자금마저 고갈된 빈 껍데기였다.

구조조정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은 워크아웃을 신청했을 때 차라리 법정관리에 돌입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처분 가능한 자산이 있고 영업라인이 살아있으며 운영자금이 있었을 때, 회생을 신청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기업이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채권단은 법원의 허가 없이 그 어떤 채권 회수행위도 할 수 없다. 대출의 만기가 도래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회생기업은 매출로 돈이 들어와도 당장 대출금의 이자나 원금 상환 없이 기업 운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파산법조계 일각에서는 회생신청 시점을 미국과 같이 유연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처럼 '채무가 자산을 초과하고 금융비용을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 신청조건이 아닌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있을 때' 기업이 자유롭게 법원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GM그룹은 오로지 은퇴자를 위한 의료보험기금 200억달러를 전액 출자전환하거나 감액위해 회생을 신청했다. 채무조정이 목적이 아닌 단체협약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한 회생신청이었다.

채무자회생법을 꼭 개정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이주헌 서울회생법원 공보판사는 “현행 채무자회생법 제도에서도 신청 조건이 경직되어 있지 않다”며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고 유동성 위기가 감지되는 상황이라면 회생신청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이어 “또 최근에는 회생신청 후 개시결정을 늦춰 그사이 채권단 자율협약, M&A, 신규자금 유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놨다”며 “어느 정도 자산과 운영자금이 확보된 상태에서 조기에 회생절차에 들어오면 대출만기에 압박받는 일 없이 기업 경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꿈틀거리는 DIP 파이낸싱 시장도 주목

이보다 채권단의 신규자금에 의존하지 않게 신규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시장도 중요하다.

한국성장금융에 따르면 정부가 구조조정혁신 정책의 하나로 추진 중인 모태펀드 1조원이 이르면 9월부터 시중에 풀리기 시작한다. 민간운용사(GP)가 이 돈을 구조조정기업에 운용한다.

구조조정 업계 한 관계자는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도“민간 차원의 구조조정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만큼, 신규자금을 지원하면서 회사를 쥐락펴락하는 워크아웃은 퇴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이번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도입 시점부터 5년 한시법 형태로 제정됐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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