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IT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업무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사진은 원격SW들을 활용해 업무를 보는 모습.

[한스경제=팽동현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부족해진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원격소프트웨어 솔루션과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솔루션 같은 소프트웨어(SW) 제품들을 도입하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두 가지 솔루션은 기본적인 접근방식에 있어 하나는 사람을 좀 더 일하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에 앞서 일본에서 도입이 활발히 이뤄져왔다. 

◇ 폭염이 달군 원격SW 시장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 들이닥치면서 원격근무 및 협업 관련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주 52시간 근무가 법제화되면서 기업들이 보다 압축적이고 효율적인 업무환경 조성에 관심을 쏟게 됐는데, 여기에 살인적인 무더위까지 겹치면서 원격근무·재택근무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원격SW 전문기업인 알서포트의 주력제품 중 하나인 화상회의 솔루션 ‘리모트미팅’은 지난달에 평균 회의 건수와 회의 시간에서 각각 전월대비 41.5%, 10.2% 증가를 기록했다. 또한 원격제어 솔루션 ‘리모트뷰’는 17.8%, 원격지원 솔루션 ‘리모트콜’도 10.1%의 사용량 증가가 나타났다.

중견 제약사인 일양약품도 이 회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장 영업직원들 및 지방 공장에 전화통화만으로는 전달이 어려웠던 부분도 모바일 기기로 문서와 화면을 공유하면서 보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다”면서 “사무실에 모이는 횟수가 줄면서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것은 물론, 업무 흐름이 끊이지 않아 집중도도 향상됐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에도 원격SW 도입이 활발하다.  한국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무인시스템 공영주차장에서 작동 미숙이나 기기 오류로 낭패를 보는 이용자들이 많았는데, 알서포트의 원격제어 솔루션 도입 후 현장에 인력을 파견할 필요 없이 PC로 즉시 문제해결을 도울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유수의 대기업들은 화상회의나 원격제어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업무 수행에 활용한지 오래다. 그동안은 해외지사 간 회의나 고객지원과 같이 필수적인 경우 위주로 쓰였으나, 유연해지는 기업문화와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라 점차 그 적용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고 원격근무가 모든 업무분야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글로벌 IT기업인 IBM만 해도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지난해 수십년간 운용해온 원격근무제를 협업 생산성 제고 차원에서 폐지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특정 기구·장비 사용이 필요치 않고 ▲직접 대면해 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적으며 ▲정량적인 목표나 기한이 있거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수월한 업무에 적합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경험한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원격SW 기반 업무방식 개선을 적극 장려, 일반사무직으로까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용노동부에서 원격·재택근무 인프라 구축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으나 최대 7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불편함 때문에 성과가 미미하다. 노동부는 올해 100개사 지원을 목표했으나 청기업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거세지는 RPA 도입 바람

원격솔루션과 함께 최근 각광받고 있는 분야중 하나가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다. 이는 그동안 사람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던 업무를 SW로봇으로 자동화해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급격한 IT 발전으로 인해 신속정확하고 보다 효율적인 업무처리가 가능하다면 이를 마다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RPA 도입은 금융권에 특히 활발하다. 지난해 8월 여신업무를 시작으로 먼저 도입에 나선 신한은행은 올해 1월 전담조직까지 신설, 3분기까지 펀드, 외환, 퇴직연금, 파생상품 등 전 영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도 자동화 효과가 높은 업무 위주로 적용을 확대해가고 있으며, KEB하나은행 또한 최근 하나금융그룹 계열사 공동으로 솔루션 선정을 위한 공고를 냈다.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도 IT사업 주요과제로 RPA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직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충족 및 고도화된 업무 집중을 위해 도입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면에는 인건비 절감이라는 목적이 있다. 딜로이트의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한 글로벌 은행은 해외무역 관련 지급결제업무에 RPA를 적용하면서 업무의 57%를 자동화했고 필요인력을 110명에서 47명으로 감축시킨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향후 RPA가 IPA(지능형 프로세스 자동화)로 진화하면서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데이터가 쌓이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지·학습능력이 강화될 자동화SW는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는 아직 제한적 영역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고, 그 지능 수준이 사람만큼 높아지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라 일손이 부족해질 시점이 머지않았음을 감안하면 사람을 육성하는 대신 자동화로 해결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자칫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데이터 분야 전문가인 전용준 리비젼컨설팅 대표는 “RPA에는 현재 매우 제한적인 수준의 AI가 적용되지만, 반복적인 업무를 대신하기에는 충분하다”며 “즉각적·가시적 효과를 보여주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언뜻 보면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같아도, 단순 작업 외에 정작 창의성을 발휘하는 부분은 전체 과정에서 그 비중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자동화SW는 앞으로도 인간근로자의 ‘워라밸’보다는 자격요건에 더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팽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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