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유사업, 유가·환율 등 대외 환경에 취약
전기차 역시 탈(脫) 정유 작업 부추겨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정유업계가 비(非)정유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정유 4사가 석유화학·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투자한 금액만 무려 12조원에 달한다.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정유사업이 국제유가와 환율 등 대외 영향에 취약한 만큼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비정유 부문에 '조 단위' 투자 계획을 연이어 발표했다. GS칼텍스를 비롯해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 국내 최대 정유사 SK에너지를 자회로 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를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하고 공장 건립에 1조원이 넘는 거금을 투입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사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비정유 부문에 '조 단위' 투자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석유화학 사업에 10.3조원 베팅

GS그룹은 지난 24~25일 강원도 춘천시 엘리시안 강촌리조트에서 열린 '2018 GS 최고경영자 전략회의'에서 향후 5년간 20조를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에너지 부문에만 14조원을 투입한다. 전남 여수 제2공장 인근 약 43만㎡ 부지에 2021년까지 연간 에틸렌 70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MFC·Mixed Feed Cracker)을 갖출 계획이다.

GS칼텍스는 지난 2월 전남 여수공장에 2조6000억원 규모의 석유화학 시설을 건설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번 투자는 납사 등을 분해해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프로필렌, 에틸렌 등 올레핀 제품을 생산하는 프로젝트로 정유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도약하는 차원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5월 화학업계 1위인 롯데케미칼과 2조7000억원 규모의 올레핀과 폴리올레핀을 생산하는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 신설하기로 뜻을 모았다. 두 회사는 기존 합작법인인 현대케미칼에 추가 출자해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내 약 50만㎡(15만 평) 부지에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원유찌꺼기인 중질유분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HPC는 납사를 사용하는 기존 NCC(Naphtha Cracking Center) 대비 원가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설비다. NCC는 납사를 투입해 각종 플라스틱 소재가 되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지난 22일에는 에쓰오일이 두 번째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5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연간 150만톤 규모의 스팀 크래커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시설을 짓기 위한 타당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약 4조8000억원을 투입한 RUC&ODC(잔사유 고도화&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에 이은 대규모 투자 계획이다.    

에쓰오일 스팀 크래커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원료로 투입해 에틸렌 및 기타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설비다. 원료 조달과 원가 경쟁력에서 이점을 갖고 있다. 더불어 올레핀 다운스트림 시설을 추진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 생산을 증대할 계획이다.

2018 정유업계, 비정유 사업 투자 현황. /표=한스경제

◆ SK이노베이션, 올해만 해외 두 곳 배터리 공장 투자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올해에만 해외 두 곳에 공장을 건립하기로 했다. 두 곳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금액만 약 1조6000억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월에 건설 투자비, 운전자본 등 8402억원을 투입해 헝가리 코라롬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회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몰려 있는 유럽 시장 공략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헝가리 공장 모든 생산라인이 완공되는 2022년에는 연간 7.5 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24일에는 배터리 사업의 중국 합작 파트너인 중국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의 합작을 통해 장쑤성 창저우시 금탄경제개발구 내 최첨단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을 착공했다. 이번에 착공되는 공장은 약 30만㎡(약 9만평) 부지에 전기차(30kWh 전기차 배터리 기준) 연산 25만대 분량인 7.5GWh 규모로 건설된다. 향후 건설 투자비, 운전자본 등 약 50억위안(약 8200억원)이 투입된다. 

이번 중국 배터리 공장 및 헝가리 공장(2022년 완공)이 완공되면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사업의 연간 생산량은 약 20GWh가 된다. 업계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은 2025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3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지난해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은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3조9117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49%를 차지했다. /사진=금융감독원

◆ "안정적이고, 수익성 높은 비정유 사업을 외면할 수 없어"

이처럼 정유업계가 비정유 사업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보다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정유사업은 특성상 환율, 유가 등 시황 변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석유화학 사업은 업황 사이클이 불안정한 정유사업보다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안정적이다. 또한 현실화되고 있는 전기차 시대 역시 정유사들의 탈(脫)정유 작업을 부추기고 있다.  

회사 실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은 비정유 부문 영업이익은 3조9117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49%를 차지했다. 전년(3조1589억원·39%) 대비 10% 상승한 수치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이번 프로젝트(롯데케미칼과 석유화학 공동사업)가 사업다각화를 통한 종합 에너지 기업 비전을 달성하는 데 역사적인 획을 그을 것"이라며 "현대오일뱅크의 비정유부문 영업이익 비중이 2017년 33%에서 2022년 45%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정유 사업에 10조원에 가까운 거금을 투자한 에쓰오일 관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경쟁력 제고, 안정적 수익구조 창출 등을 통해 회사의 지속성장 기반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가장 수익성 있는 종합 에너지 회사로 발돋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업체 매출은 70% 정도가 정유사업에서 나오지만 영업이익 비중은 비정유 부문이 크다"며 "업계 특성상 외부 변동성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수익 안정화를 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비정유 사업을 외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유 사업이 국제 유가, 시황 등에 따라 실적 편차가 크기 때문에 비정유 부문에 많이 집중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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