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아직도 인스타그램 안해요? 다들 하는데 당연히 해야지”

자주 듣는 얘기다. 소통의 창구가 되니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기도 하지만 뭔가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전시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시작하기도 전에 회의감부터 든다. 내게 그럴싸한 포장 능력은 없기에 이 또한 스트레스 유발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여전히 해야 하나 하는 고민만 현재진행형이다.

사람들은 자랑할 가치가 있다 싶은 모든 것들을 SNS를 통해 공유한다. 그 가운데 이른바 #럽스타그램이라 불리는 ‘사랑’이 있다. 연인에게서 받은 선물과 각종 이벤트, 데이트 장면, 꿀 떨어질 것 같은 두 사람의 셀카까지, 때로는 상대의 직업이나 경제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을 전시함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도 한다.

익숙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 심리가 여기에서도 나타나는데 대개의 경우 특별할 것 없는 연출법으로 사랑은 포장돼 있다. 주인공은 다른데 거의 비슷한 모습의 사진들로 럽스타그램은 도배돼 있다. 적어도 SNS에서 사랑은 스스로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메인 테마다. ‘좋아요’를 누르며 부러움의 댓글을 달고, '러브위너'를 탄생시킨다.

엘제이(왼쪽)-류화영. /사진=엘제이 인스타그램

지난 한 주 방송인 엘제이(LJ·이주연, 41)와 배우 류화영(25)의 폭로전이 뜨거웠다. 류화영과 연인이었다며 엘제이가 갑작스레 쏟아낸 많은 사진과 동영상, 그 후에 벌어진 두 사람의 설전은 팩트가 무엇이든 간에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이들의 행태에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두 사람 스스로에게 악용되는 모양새다. 사진으로 미루어 한때 좋았던 관계였음이 추측되는 과거형 럽스타그램이 폭로전에 불을 붙인 도구가 됐다. 비공개 사진들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둘의 행복했던 모습은 가혹한 ‘리벤지’가 되고 말았다. 언제 좋았냐는 듯 서로를 할퀴는 인터뷰들이 계속됐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기사에 대중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둘의 사생활에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내밀한 문제를 왜 스스로 공론화시키는가.

‘사랑’이라는 테마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것이다. 그런데 SNS상에 공개되는 순간 원하든 그렇지 않든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된다. SNS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 확대, 재생산이 얼마든지 가능한 공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전시된 사랑으로 부러움을 사는 동안 위너가 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별을 맞이하는 순간 그 많은 사랑의 흔적들은 '순삭'(순식간에 삭제됨)해야만 하는 거추장스러운 과거가 되고 만다.

SNS는 만나서 이별해야 하는 불편한 순간을 삭제해줬다. 대신 사랑도, 이별도 공론화시키는 불편함을 만들어줬다.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사생활에 관찰자들이 끼어들면서 다수의 동정심을 구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연출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일은 그들만이 아는 법. 그런 이유로 럽스타그램에도 '신경 끄기의 기술'이 필요하다.

소음처럼 느껴지는 일련의 사건과 많은 이들의 러브 전시장, SNS를 보면서 비밀이 가득했던 오래 전 일기장을 펼쳐 본다. 그곳엔 전시하고 삭제된 사랑과 이별은 없다. 오롯이 나만의 옛사랑과 이별이 남아있을 뿐.

●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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