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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양인정 기자] 가치가 없어 처분 안 되는 재산을 보유한 채무자에 대해서도 구제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공기업 등이 가치 없는 재산을 압류한 채 수년 동안 방치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시 중랑구 사는 김씨(48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시작장애 1급의 장애인이다. 그는 지난 2016년 한 장의 빚 독촉장을 받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김씨는 활동도우미의 도움으로 독촉장 속 채무내용을 알게 됐다. 김씨에게 청구된 채무는 약 2000만원. 캠코와 대부업체가 채권자였다. 20년 전 김씨의 동생이 형의 명의를 도용해 카드를 발급하고 대출을 받아 생긴 채무다.

김씨는 최근 캠코에 장기소액연체 채무에 대한 채무조정을 상담했다가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채무조정을 받지 못했다. 흑산도 인근 외딴 섬에 김씨 이름으로 된 땅이 캠코에 의해 압류된 상태였다. 김씨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땅을 상속했던 것. 김씨는 “땅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캠코가 압류한 땅의 공시지가는 약 180만원. 캠코는 김씨의 토지가 재산 가치가 없어 10년 전에 압류만 하고 경매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토지 가치보다 경매절차 비용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 경매를 진행하지 않는 이유였다.

체납채무자에 대한 상담을 하는 세무방송(대표 남우진)에 따르면 2017년 8월 말 기준 캠코가 경매를 중지한 채무자 수는 13만 4823명이다. 대부분 압류한 재산이 가치가 적어 경매비용 조차 회수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토지라고 해 봤자 주로 맹지이거나 하천부지다. 일부는 기획부동산으로부터 쓸모없는 땅을 매수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상환능력 없는 채무자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상환능력과 별개로 채무조정을 받기 쉽지 않다.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조건에 따르면 재산가치가 없어도 땅이 있으면 채무는 탕감되지 않는다.

더러는 개인워크아웃에서도 불이익이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규약에 따르면 김씨와 같이 기초생활 수급자이면서 중증 장애인인 경우 채무의 90%를 탕감할 수 있다. 다만 채권액 2분의 1에 해당하는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김씨는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신청을 했지만 채권자들이 흑산도 땅을 이유로 채무탕감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압류만 하고 경매를 하지 않으면 시효로 채무가 소멸하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채무자들은 사실상 상환능력 없는 취약계층이면서 채무조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조세체납 영역에도 마찬가지다. 세무방송은 체납세액으로 압류 후 공매가 진행되지 않는 사람들이 약 2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역시 공매비용 조차 회수 할 수 없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남우진 세무방송 대표는 “조세채무도 결손 처리가 되고 5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되는데 압류만 하고 공매가 중지된 경우 평생 조세채무자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상환능력 없는 채무자가 자산가치가 없어 처분이 안 되는 재산 때문에 채무조정이 안 되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대책을 내 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채권소각과 채무상담을 하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 관계자는 “정부 공기관이나 세무당국이 쓸모없는 재산에 대해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관리하는 것도 일종의 세금낭비인 반면 채무자는 경제활동의 제약으로 경제 활력 제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법원은 파산절차에서 채무자의 재산이 가치가 없는 경우 ‘환가포기’ 후 채무를 면책해 준다”며 “정부 공기관이나 세무 당국도 이 같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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