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이달의 소녀.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흔히 국내 3대 연예 기획사로 꼽히는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등 3사의 시총이 2조 원 대를 넘어 3조 원을 향해 가고 있다. 연초 2조 원이 채 되지 않았던 3사의 시가총액 합계는 29일 종가 기준으로 2조9442억 원이다. 2분기 영업이익도 각각 100억 원, 91억 원, 14억 원에 달한다. K팝의 급격한 성장이 관련 업계를 ‘억소리’, ‘조소리’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성장은 자연스레 K팝 가수들의 몸집도 키우고 있다. 동네에서 유명한 아이들 몇을 모아 그룹을 짜는 주먹구구식 데뷔는 이제 없다. 노래, 춤, 끼 등 잠재력을 갖춘 연습생을 선발해 체계적으로 트레이닝을 시키고, 정확하게 짜인 스케줄에 따라 데뷔를 준비한다. 앨범 하나를 만드는 데도 수많은 인력이 참여한다. 잘 큰 그룹 하나가 수백억 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그야말로 ‘K팝 100억 시대’다.

가수 보아.

■ ‘99억’ 초대형 프로젝트의 탄생

SM엔터테인먼트는 아이돌 그룹을 전문으로 육성해왔다. 1996년 데뷔한 H.O.T.의 큰 성공 이후 신화, S.E.S, 플라이투더스카이 등 많은 인기 그룹이 탄생했다. 보아는 H.O.T.와 S.E.S, 신화 등의 성공을 발판 삼아 나온 가수이자,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SM엔터테인먼트를 글로벌 기획사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다. 보아의 성공 이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등 현재 SM엔터테인먼트는 이끌어가는 굵직한 K팝 스타들이 여럿 탄생할 수 있었다.

당시 보아의 특별한 점으로 꼽혔던 게 바로 ‘연습생 기간’이었다. 지금이야 K팝 스타가 되기 위해 청소년들이 기획사를 오가며 춤과 노래를 트레이닝 받는 풍경이 낯설지 않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아가 가수가 되기 위해 무려 3년 동안이나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런 트레이닝을 거친 보아가 10대 초반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딥한 R&B 창법을 구사할 때, 영어는 물론 일본어에까지 능통함을 보여줄 때 대중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는 이후 보아의 육성은 일명 ‘신비 프로젝트’라 불렸으며, 약 30억 원 가량의 돈이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또 그 때만해도 회사에 30억 원이란 돈이 없어 빌려다녀야 했다고도 털어놨다. 보아가 밀레니엄이 밝자마자 데뷔했으나 약 20년 전 이야기다. 아직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에게 30억 원 가량의 큰 투자를 쏟아 부은 것은 K팝 신의 큰 전환점이라 할 만한 사건이다.

그로부터 약 16년이 뒤인 2016년 10월, 이달의 소녀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그룹이 데뷔 프로모션을 시작했다. 이달의 소녀는 12명이라는 멤버를 순차적으로 공개하면서 ‘완전체’ 데뷔 전까지 솔로와 유닛 활동을 겸했다. 첫 번째 멤버 희진부터 마지막 멤버 올리비아 혜까지 12명의 멤버가 모두 베일을 벗는 데는 542일이 걸렸고, ‘완전체’ 데뷔까지는 684일이 걸렸다. K팝 역사상 가장 긴 기간의 데뷔 프로모션을 가진 걸 그룹의 탄생이었다.

약 2년이란 프로모션 기간 만큼 놀라운 건 이들에게 투자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달의 소녀라는 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가 투자한 금액은 약 99억 원이다. 이달의 소녀는 이달의 소녀 1/3, 오드아이써클, yyxy 등 세 개의 유닛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세 팀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구축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달의 소녀 1/3은 지구, yyxy는 에덴에 속하며 오드아이써클은 지구와 에덴을 오갈 수 있는 중간계를 상징한다. 이런 세계관에 걸맞게 멤버들은 각자 상징색과 국가, 과일, 동물 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보여주기 위해 각 멤버별 솔로 뮤직비디오를 아이슬란드,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 촬영했다. 99억 원을 12명의 멤버 수로 나누면 각 멤버별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약 8억 원의 돈을 들인 셈이다.

20여 년 전 보아가 30억 원 여의 프로젝트였던 점을 감안하면 멤버 개인에게 투자된 비용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형 기획사로 불리는 SM엔터테인먼트조차 30억 원을 갖지 못 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한 팀의 데뷔를 위해 1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 오가게 된 현재 K팝의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

■ 질 높은 K팝을 위한 수십 억 대 투자

물론 큰 비용 투자가 반드시 양질의 결과물과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명확한 계획이 세워진 이후라면, 두둑한 투자금은 목표를 현실로 이루는 주요한 양분이 될 수 있다. 2018년 K팝 업계는 아낌 없는 투자를 통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콘텐츠를 창조하기 위한 움직임에 여념이 없다.

빌보드에서 주목하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설립 초기 밴처캐피털 SV인베스트먼트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약 40억 원을 투자 받았다. 당시만 해도 한류는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방탄소년단은 북미와 남미 등 그 간 한류가 진출하지 못 했던 시장들까지 먹어 삼키며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이 밴드가 됐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이 같은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의 질을 한층 끌어올리고,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 노출 루트를 확보함으로써 도달률을 높였다.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이 방탄소년단을 알 수 있었고,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추정 시가총액 1조 원을 넘어서는 대형사가 될 수 있었다. SV인베스트먼트는 투자 금액의 약 27배인 1088억 원을 회수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7음악산업백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글로벌 음악산업 규모는 약 51조 원이며, 1위는 18조4071억 원 규모인 미국이 차지했다. 2위는 6조4097억 원 규모의 일본이었으며, 한국은 9172억 원 규모로 9위에 랭크됐다. 전년도보다 약 277억 원 가량 상승한 수치며, 순위도 10위에서 한 단계 올라섰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의 메인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트와이스가 일본 오리콘 차트를 호령하는 지금 K팝은 여전히 성장을 지속하며 1조 원 대의 시장규모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이달의 소녀가 기록한 99억 원의 프로모션 비용을 넘어서는 그룹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최초 초대형 프로젝트로 존재감을 알린 이달의 소녀 멤버 현진은 “큰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덕에 퀄리티가 높은 이달의 소녀라는 그룹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대규모 투자가 불러온 효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진=OSEN,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