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을 찾은 많은 팬들.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팬이 스타를 좋아해서 하는 행위, 소위 ‘덕질’(‘덕후’와 ‘-질’을 합친 말)이 취미에 그치던 시절은 지났다. ‘오빠’, ‘누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노트에 그리던 그림은 ‘비공식 굿즈’가 돼 다른 팬들에게 팔리고, 스타 없이 팬들만 모여 영상회나 팬 콘서트를 여는 풍경도 종종 펼쳐진다. 스타와 함께한 기념일을 축하하고자 기부나 봉사 활동 등 선행을 펼치는 풍경은 이제 익숙하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이 돈이 되는 세상. 생업을 포기하고 ‘덕질’에 뛰어드는 팬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집자 주>

■ 30대도 ‘덕질’에 푹… “돈 아깝지 않아”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 뿐이다)’

최근 2030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비하는 ‘욜로(YOLO)족’들이 확산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부딪힌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미래 대신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즐기는 데 집중하자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되면서 ‘욜로’라는 단어가 사회 전반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욜로’ 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바꾼 건 일상적인 소비행태만이 아니다. 한 때 ‘쓸데없는 짓’ ‘돈 낭비’라 취급 받기 일쑤였던 팬덤 문화에도 변화가 생겼다.

‘덕질’이란 마니아를 의미하는 일본어 ‘오타쿠’가 우리나라 식으로 ‘덕후’라 변형되면서, 덕후의 ‘덕’에 행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결합돼 생긴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굿즈를 사고 공연을 보러 다니는 등의 행위를 통칭한다.

최근 뒤늦게 방탄소년단에 빠졌다는 한 30대 여성은 최근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기 위해 연차 휴가를 냈다. 평소 야근이 잦은 탓에 금요일 오후 공연을 보기 위해선 휴가를 내는 게 마음 편했다는 것. 이 팬은 공연 전에 마음이 맞는 ‘덕친’(덕후와 친구를 합친말)들과 모여 방탄소년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공연 후에는 식사 겸 뒤풀이를 가졌다. 그는 “방탄소년단이 없는 방탄소년단 콘서트 뒤풀이였다”고 웃으면서 “공연 관람객으로서 나 역시 그 날을 기념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콘서트와 뒤풀이, 야광봉 구입에 든 비용만 수십 만 원. 하지만 이 여성은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다. “단조로운 삶을 더 알차게 만들어주는 데 들어간 비용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트와이스 팬인 대학생 남성은 지효의 생일인 지난 2월 1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 파티를 열었다. 대학교 졸업반인 이 남성은 “지금껏 살면서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의 생일 파티를 한 건 처음”이라면서도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욜로족’들은 대부분 소비 능력이 있는 2030 세대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다앙햔 분야에서 과감한 소비 행태를 보인다. 고가의 공연에도 지출을 아끼지 않고 굿즈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 같은 ‘덕질’은 비단 스타에만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영화 파생 상품, 피규어, 게임 등 다양한 분야에까지 이어진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 포스터나 배지, 파일, 엽서 등 굿즈를 함께 제공하는 굿즈 패키지 영화 티켓이 출시되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경기대학교 애니메이션영상학과 권동현 교수는 최근 동아TV ‘욜로라이브’에서 “욜로를 지향하는 ‘혼자 놀기 족’, 일명 ‘혼족’이 ‘키덜트’(아이를 뜻하는 영어 단어 키드와 어른을 뜻하는 영어 단어 어덜트를 합친 말, 아이와 같은 취향과 감성을 가진 어른을 의미함) 열풍에 불을 지피고 이다”면서 “최근에는 30대를 넘어 40대까지도 이런 소비에 합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신 타이거즈 활동 시절 오승환 굿즈. '덕질'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진다.

■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으로서의 ‘덕질’

덕후들 사이에선 ‘일코’라는 말이 종종 쓰인다. ‘일코’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줄임말로 덕후가 아닌 평범한 생활인으로 보이고자 한다는 의미다. 평소 평범한 직장인과 학생으로 살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거나 스타를 따라다닐 때는 ‘일코 해제’를 하는 일도 빈번하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지금 충만하게 살자는 ‘욜로’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일코 해제’를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자는 의미에서다. 몰래 굿즈를 사서 쟁여두던 팬들은 이젠 직접 굿즈를 제작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공연이나 선행을 SNS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마케터를 자처하기도 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지난해 말 미혼남녀 235명을 대상으로 ‘연애와 취미 생활’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는데, 조사 결과 응답자의 78.3%가 어떤 분야에 푹 빠져 ‘덕질’을 한 경험이 있으며, ‘덕질’로 인해 연애를 미룬 경험은 여성 40.8%, 남성 30.9%에 각각 달했다. 이 조사 결과는 ‘덕질’이 그만큼 결혼적령기 연령의 이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화 덕후들을 위한 ‘디쿠 페스티벌’, 슈퍼히어로물의 명가 마블 덕후들을 위한 마블 컬렉션 엔터식스 등 각종 전시와 축제가 마련되고, 여러 팝컬처의 마니아들이 모이는 ‘코믹콘’이 미국뿐 아닌 서울에서도 개최되며, 빅뱅의 홀로그램 공연을 볼 수 있는 서울 상암 MBC 월드는 국내ㆍ외 팬들로 붐빈다. 트와이스의 공연을 못 찾은 이들은 이를 영화 버전으로 극장에서 즐기기도 한다. 그만큼 폭넓고 다양한 ‘덕후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해보다 150% 가량 증가한 문화센터 20~30대 수강생들을 위해 퇴근 시간인 오후 5시 이후 진행하는 강좌 수를 30% 이상 늘렸다. 이 강좌들 가운데는 요가, 피트니스 등 클래식한 것들부터 게임이나 덕후 문화 페스티벌 같은 ‘덕후’들을 위한 과목까지 포함돼 있다. 롯데백화점 박영환 마케팅담당 상무는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접근성이 좋은 문화센터를 이용하는 2030 세대가 늘고 있다”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진=OSEN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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