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최지윤 기자] “돈 주고도 못 사는 연륜이 있다.”

데뷔 35년 차 배우 채시라에게 내공이 가득 느껴졌다. 인터뷰 전 소속사에서 건넨 프로필에는 3페이지가 넘어갈 정도로 작품 수가 빼곡했다. 30여 개의 작품을 했지만 아직도 “못해본 역할이 많다”는 채시라. 3년만의 복귀작인 MBC 종영극 ‘이별이 떠났다’에서는 세상과 단절한 주부 서영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과도 멀리하며 캐릭터에 몰입했다고. 빠르게 변한 드라마 시장에 대해선 “우리 딸부터 웹드라마를 본다”며 “이번 작품도 웹소설이 원작이라서 끌렸다. 보석 같은 작품만 만날 수 있다면 매개체는 상관없다”고 짚었다. 곧 채시라가 웹드라마에 출연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오랜만의 복귀 떨리지 않았나.
“경험과 연륜은 비례한다. 연기를 잠시 쉬어도 내공을 무시할 수 없다.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 쉬었다가 나와도 충분히 극복해서 할 수 있다. 신인 때처럼 긴장하지 않고 여유 있게 하려고 한다. 편안해야 연기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게 많다. 이 작품 할 때도 기대감이 컸다. 시청자들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이번 작품 하면서 아이들을 멀리 했다. 대중들과 약속인데, 정에 이끌려서 아이들을 돌보면 두 마리 토끼 다 못 잡을 것 같았다. ‘스스로 공부해’라고 했는데, ‘언제 와?’ 연락 와서 울기도 하고…. 이런 부분이 가장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우로서 나이 드는 장점도 있지 않나. 
“연륜은 돈 주고도 못 산다(웃음). 경험은 큰 재산이고, 갖고 싶다고 가져지는 것도 아니다. 자주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내가 익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끌리는 작품을 만났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끄집어내서 표현해내고, 시청자들은 감동과 위안을 받지 않냐. 그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세상과 단절된 역할 맡아 감정 소모 컸을 텐데.
“실제로 3년 동안 집밖에 안 나온 경험은 없지만, 나도 전업주부이자 아내이고 엄마다.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나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영희는 ‘이러한 감정을 3년 동안 느꼈겠구나’ 싶더라. 세상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스스로 목숨 내려놓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발머리로 파격 변신했다.
“처음 머리를 자르고 반응이 좋았다. 인스타그램에도 올려서 화제가 됐는데, 남편 김태욱씨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중에 ‘괘안네~’ 한마디 하더라. 경상도 남자한테 ‘괘안네’는 ‘진짜 괜찮네. 예쁘다’라는 뜻이다(웃음). 헤어 디자이너한테 가르마도 일자가 아닌 사선으로 타 달라고 해 세련된 느낌을 냈다. 머리도 목 길이에 맞춰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잘랐다. 서영희는 3년 동안 집밖에서 나오지 않았으니까 긴 머리로 시작해 단발로 자르는 게 임팩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슬립을 입고 담배 든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담배를 필 수 없어서 들고 폼만 잡았다. 검정색 슬립을 입고 화장실 변기 변기에 앉아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대본에 옷차림 설명은 없었는데, 읽는 순간 슬립이 떠올랐다. 오히려 감독님이 ‘괜찮겠냐?’고 걱정하더라. 서영희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장면이라서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신 찍고 감독님이 시원하게 OK를 외치더라. 슬립은 4~5번 정도 입었는데 디자인, 촉감 모두 달랐다. 서영희는 엄마 티가 안 나는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해 슬립을 선택했다. ‘이별이 떠났다’는 주말극이지만 미니시리즈 형태를 띠어서 이런 부분도 녹여내고 싶었다.”

-남편 한상진(이성재)은 무능력하면서 얄미웠다.
“성재와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인데, ‘시라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다. 성재가 이 역할을 어떻게 소화하든 분명히 잘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재도 내가 서영희를 연기한다고 했어도 반갑지 않았을까? 서로 믿음이 있다. 현장에서 정웅인씨랑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줬다. 둘이 콤비로 뭐하나 했으면 좋겠다. 정말 재미있다.”
 
-극중 아들 민수(유키스 이준영)는 엄청 속을 썩였는데.
“오히려 우리 아들은 ‘엄마, 우리는 저렇게 나쁜 사이가 되지 말자’ ‘사이 좋게 지내자’라고 하더라.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이고, 극중 민수는 스물 한 살이다. ‘엄마랑 저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묻길래 ‘대화를 많이 해야 된다’고 했다.”
 
-극중처럼 아들의 여자 친구가 혼전 임신해서 찾아온다면.
“깜짝 놀랄 일이다(웃음). 큰 일 날일 아니냐.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들, 딸 교육을 잘 시키겠다. ‘이별이 떠났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니까 아주 교육적인 드라마 같다.영희를 연기하기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말도 안 돼!’라고 했을 텐데, 극중이지만 경험하고 나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어떻게 해결할까?’에 초점을 맞춰서 소통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아이들과 얘기할 때도 ‘왜?’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많이 물어본다.”

-조보아, 이준영과 호흡은 어땠나.
“서로 마음을 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서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이끌고 싶어도 후배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되고. 후배가 다가가고 싶은데 선배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안 되지 않냐. 소통이 중요한데 잘 통했다. 선배들 보면서 뭐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고 눈빛이 반짝반짝 하는 모습이 참 예뻤다. 굉장히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다.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준영이도 기본자세가 돼 있다. 가수, 배우 양쪽 다 활동해서 바쁜데 어떻게든 잘 해보려고 노력했고, 이 작품으로 많이 성장한 게 보였다. 쉽지 않은데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알아서 기특하더라.”
 
-드라마 시장 생태계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 딸만 해도 웹드라마를 본다. 다양한 매체에서 많은 작품이 쏟아지지 않냐. 진짜 좋은 작품만 살아남는 것 같다. 김태우씨도 항상 ‘변화에 예의주시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별이 떠났다’도 웹소설이 원작이라서 호기심이 갔다. 댓글 1000개 중에 나쁜 말은 2개뿐이더라. ‘얼마나 재미있길래?’ 하고 봤는데 시나리오 보는 느낌이 들었고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다. 보석 같은 작품이 있다면, 매개체가 어떻든 간에 도전하고 싶다.”
 
-김민식 PD가 열혈 팬을 자청했는데.
“배우를 존중하고 믿어준다. 감독님이 오랜만에 연출을 맡았는데, 내가 표현하는 서영희에 대해 믿어줬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인정하면서 의견을 물어보고 현명하게 해나가더라. 스태프들이 ‘감독님 모니터 할 때 항상 눈이 하트’라고 말해줬다. ‘언제 또 이런 감독님을 만나서 사랑 받을 수 있을까?” 싶다. 이성재씨와 정웅인씨까지 세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작업했다.“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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