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지난 16일 개봉한 ‘히말라야’는 출연 배우조차 왜 생고생을 하며 찍는지를 수없이 자신에게 반문하는 영화다. 배우들은 촬영 기간 동안 ‘영화가 뭐길래’부터 ‘연기를 왜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았다. 배우 김인권도 마찬가지였다. 가깝게는 경기도 양주, 강원도 영원부터 프랑스 몽블랑, 네팔 히말라야의 산을 두 발로 걷고 또 걸으며 배우의 의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김인권은 영화에서 고(故) 박무택 대원의 친구이자 함께 산에 묻힌 박정복 대원을 연기했다. 친구와 동료를 구하려다 안타깝게 사망한 고 백준호 대원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 같았다. 시사 후 소감은.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고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촬영 때 인내하고 고통 받던 순간이 몰려와 다시 느끼는 것조차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제작진들의 노고만큼은 잘 나온 것 같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VIP 시사에 초대한 손님들이 잘 봤다면 덕담을 많이 하셨다. 그것보다 다니는 미용실에서 대우가 달라졌다.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는 곳인데 히말라야를 봤다는 직원들이 선물도 챙겨주고 말도 걸어줬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그런가 했는데 다음에 가니 영화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다. 다른 때랑 다른게 존경심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실존 인물인데 다른 이름으로 연기했다.

“특별한 감동을 위해 만든 캐릭터는 아니다. 이름을 바꾸었지만 등산인들은 누구나 아는 분이셨다. 고인을 연기하는데 조심스러웠다. 유족에게 누를 끼치는 게 아닐까도 고민했다.”

-어떤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나.

“엄홍길 대장을 연기한 황정민 선배가 대중 앞에서 강연하는 장면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목숨을 걸고 산행하는 이야기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데 영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휴먼원정대를 모르는 관객들에게 알려지는 울림이 닮았다.”

-영화가 엄홍길과 고 박무택의 관계에 중점을 뒀는데 분량적으로 서운함을 없었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섭섭함이 좀 있었다. 무택의 시신을 발견하는 얘기 말고도 정복이의 사후 얘기도 나왔으면 했다. 그러나 무택이와 정복이가 한 몸이 아닐까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감동을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이겠구나고 느꼈다. 산에서는 무택이가 곧 정복이었다. 그래서 무택이의 죽음이 정복이의 죽음이고, 무택의 등반 성공은 정복이에게도 성공이라고 봤다. 영화 후반부 엄대장 대사 중에 ‘정복이가 나의 다리가 되어 줄거야’라는 말에 영혼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극중 박무택에게 박정복은 어떤 사람이었나.

“영화가 휴먼원정대 얘기일뿐 아니라 무택과 정복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휴먼원정대의 무모한 도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도 정복이가 아닐까? 반대로 정복이는 무택이를 좋아했고 존경했던 것 같다.”

-몽블랑과 네팔의 산을 직접 오르며 고생했다.

“히말라야를 걸어 올라갈 때 의아했던 지점이 ‘영화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였다. 도대체 영화가 뭐라고 한 장면을 찍기 위해 그 먼 길을 배우들과 제작진들이 짐을 짊어지고 갔을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래서 황점민 선배와 이석훈 감독이 지금도 존경스럽다. 관객들에게 한 시즌 즐겁게 웃고 큰 감동을 주는 작업을 위해 고생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연기 참고는 어디까지 했나.

“휴먼원정대의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인터넷을 통해 박무택, 백준호 대원의 사연을 찾아봤다. IPTV로 산이 나오는 작품을 다 본 것 같다. 참고를 할수록 정리가 더 안됐다. 왜 산에 갈까에 대한 질문에 답이 다 달랐다. 술을 마시는 이유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실제 등산을 좋아하나.

“안 좋아한다. 더욱이 히말라야를 찍으며 고산병을 겪었다. 두통 오한 시야 흐려짐 등 신체적 고통 외에 불면증에 조울증도 왔다. 낮에는 촬영하는데 정신이 쏟아 괜찮은데 밤만 되면 두 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할만큼 고통스러웠다.”

-몽블랑과 히말라야를 직접 다녀왔다.

“몽블랑은 사정이 나았다. 케이블카로 이동했고, 와이파이도 터져서 드문드문 인터넷도 접속했다. 알콜도수 40도짜리 술을 사서 신체적 고통을 잊으려고도 했었다. 오히려 네팔에 가서 고산병이 적응이 됐었다. 네팔에서는 한국음식도 잘 먹었다. 쌈장에 마늘, 고추를 찍어 먹고 반계탕도 먹으며 기운을 보충했다.”

-극중 어떻게 세르파가 됐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전작 방가방가를 의식한 장면인가.

“나도 보고 빵 터졌다. 내 외모를 두고 쓴 대사 같았다.”

-차기작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도 산에 오른다. 어떤 역할인가.

“제작진이 산에 오른다고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했었다. 내가 ‘히말라야 다녀왔어’ 라고 하니 금방 입을 닫았다. ‘고산자’에서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 곁에 있는 판각쟁이 바우를 맡았다. 차승원 선배와는 두 번째 호흡이다.

-‘히말라야’ 촬영 소품은 가지고 있나.

“당시 착용했던 양말, 셔츠, 가방을 여전히 들고 다닌다. 히말라야에 갔다 온 혼자만의 자부심이다.”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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