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로 사랑 받은 그룹 방탄소년단.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자신을 사랑하지 못 하면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는 고민에서 시작된 앨범이에요. 아직 해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이 시리즈를 진행하며 답을 찾길 바라요.”

방탄소년단의 멤버 RM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까지 약 2년 동안 이어온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의 포문을 열 당시 이 같이 설명했다. 이후 ‘DNA’와 ‘페이크 러브’, ‘아이돌’을 이어나가며 방탄소년단은 타인이 주는 달콤한 시선에 ‘아파도 강한 척’ (‘페이크 러브’) 하고 ‘모든 약점들은 다 숨겨지길’ 바라다가 결국 ‘내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르게’ 돼 버린 상황부터, 치열한 고민 끝에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누가 손가락질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이돌’)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노래했다.

'건축학개론' 출연 이후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사랑 받은 수지.

획일화된 미의 기준, ‘러브 유어셀프’는 가능한가

오랜 시간 미디어는 ‘아름다운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특정한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들을 계속해서 소개함으로써 이를 사회에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해사한 얼굴에 다소 엉뚱하고 냉정한 심성,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잡힐 듯 잡히지 않게 멀어져 가는 여성을 ‘첫사랑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이를 충실히 표현한 영화 ‘건축학개론’ 속 수지를 ‘국민 첫사랑’이라 부르며 띄웠다.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여성에게 ‘베이글녀’라는 별명을 달고, 애써 근육을 키우고 빚어야만 가능한 몸에 ‘11자 복근’, ‘초콜릿 복근’이라는 별명을 붙여 이 같은 몸을 공개하도록 유도했다. 가슴과 엉덩이는 나오고 허리는 잘록하다는 의미의 ‘S라인’, 가슴과 엉덩이가 더 큰 사람들에게 붙여온 ‘대문자 S라인’, 임신했지만 배만 나오고 다른 곳은 날씬한 몸매를 묘사하는 ‘D라인’ 등등 무슨 무슨 라인도 참 많다.

특정한 기준을 충족시켜야만 데뷔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세상. 스타들이 외모와 몸매 관리에 쏟는 비용과 시간, 노력은 어마어마하다. 각종 성형수술과 시술, 전문 트레이너 고용, 철저한 식단 관리,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의 손길. 이들의 외양은 타고난 것 이상의 관리와 노력에 의해 탄생한다.

이 같은 과정을 모르는, 혹은 알더라도 시행할 여력이 없는 비연예인들의 입장에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지난한 과정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허리춤에 삐져나온 옆구리 살과 여드름이 올라온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긴 쉽지 않다. 또 아마 누군가는 이런 그들을 보며 “자기관리 하지 않는 사람의 합리화” 내지는 “정신 승리”라 조롱할 것이다.

데뷔 초기부터 ‘힙합 아이돌’이라는 생소한 포지셔닝과 개성 있는 스타일링으로 박수보다는 의아하다는 평을 더 많이 받았던 방탄소년단. ‘아이돌이 무슨 앨범으로 서사를 쓰면서 뮤지션인 척 하느냐’는 비아냥을 감내하며 성장한 방탄소년단이 던지는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메시지에 이토록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성형설'을 촉발시킨 구혜선 사진.

CL-구혜선, 불필요한 논란

그룹 투애니원 출신 가수 CL과 배우 구혜선은 최근 많은 이들 앞에 섰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CL과 구혜선을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각각 ‘CL 몸매’, ‘구혜선 살’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나온다. 두 사람이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건 다름 아닌 ‘살이 쪘다’는 이유에서였다.

씨엘은 지난 달 초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이 때 공항에 등장한 씨엘을 찍은 사진들이 SNS 등을 통해 퍼져나가며 “살이 너무 찐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일부에서는 “CL이 아니라 XL(엑스라지)이다”는 조롱까지 하기 시작했다.
구혜선도 마찬가지 경우다. 지난 7월 12일 구혜선은 ‘제 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 ‘미스터리 핑크’의 감독 자격으로 영화제에 참석한 것이지만 남은 건 ‘임신설’, ‘성형설’ 뿐이었다. 외모가 달라졌다는 지적에 구혜선은 “밥을 많이 먹어서 살이 10kg 찐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운동하는 사진까지 올리며 다이어트 과정에 있음을 인증하기도 했다. 과거 ‘인터넷 얼짱’ 출신으로 데뷔해 한결 같은 외모를 보여줬던 배우 조차 살이 찌면 ‘성형설’에 시달리고, 다이어트를 인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연예인은 무조건 마르고 날씬해야 한다는 것조차 편견”이라면서 특정 미의 기준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하지 말자는 자정 노력이 일어났다.

이영자와 #bodypositive

방송인 이영자는 이 같은 트렌드에 불을 지핀 인물이다. 방탄소년단이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거대한 메시지를 던졌다면, 이영자는 보다 소소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몸소 보여줬다.

케이블 채널 올리브의 예능 프로그램 ‘밥블레스유’에 출연하고 있는 이영자는 최화정, 송은이, 김숙 등과 함께 떠난 단합대회에서 수영복을 입은 몸매를 공개했다. 수영복은 어떤 체형을 가진 이들이나 입을 수 있지만, 이영자의 수영복은 일대 사건으로 번졌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는 ‘이영자 수영복’이 자리했고, ‘밥블레스유’의 PD는 이와 관련해 인터뷰도 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미디어가 수영복을 ‘섹시함’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 날씬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소개해왔다는 방증이다.

이영자는 이후 이에 대해 “몸매에 자신은 없지만 그냥 벗었다”며 “내 몸이니까 사회적 편견에 버텨보고자 그냥 벗은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가진 내 몸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해시태그 운동 #bodypositive(보디포지티브)가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건 이 즈음이다.

인스타그램에 보디포지티브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은 무려 700만 여 개. 수영복을 입기 위해 몸매 관리를 해야 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팔이나 다리 등에 난 털을 제거해야 하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 거라고 얘기하는 세상을 향해 보디포지티브 캠페인 참여자들은 이 같이 말한다. “내 몸인 것으로 충분하니, 여기에 어떤 설명과 수식어도 달지 말라.”

사진=OSEN, '건축학개론' 스틸, 올리브 '밥블레스유'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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