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희의 컬쳐 로드맵] 눈물 나게 빛나는 해피엔딩 로드무비 ‘나의 마지막 수트’
[권상희의 컬쳐 로드맵] 눈물 나게 빛나는 해피엔딩 로드무비 ‘나의 마지막 수트’
  • 이정인 기자
  • 승인 2018.09.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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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이정인 기자]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화목한 가족’을 연출한 것에 불과하다. 카메라 너머 아브라함(미구엘 앙헬 솔라 분)에게는 사진 찍는 일조차 스마트폰을 두고 할아버지와 흥정을 하는 영악한 손녀와 그를 짐짝 취급하며 요양원에 보내려는 딸들이 있을 뿐이다.

글로벌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먼 나라 아르헨티나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영화는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현실을 리얼하게 오버랩 시킨다. 그를 고집 센 ‘앵그리 올드’ 쯤으로 여기는 자식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아브라함의 깊이 패인 주름은 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쓸쓸함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가족이 존재하나 불행히도 가족애는 실종됐다.

영화 ‘나의 마지막 수트’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노년의 처연함이 아닌 단호함을 선택한다. 아브라함이 우연히 발견한 70년 묶은 수트, 그것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떠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눈물 머금은 추억을 붙잡고 있는 대신 택한 힘든 여정은 아브라함의 무모할지도 모를 ‘마지막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멋진 시니어를 꿈꾸며 즐겨 본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의 낭만은 그의 여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숙소 침대에 간신히 누운 아브라함의 노구(老軀)는 온몸으로 세월을 살아낸 공로를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기에 참으로 외롭다. 장면에 어울릴 마땅한 대사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그의 늙고 불편한 몸은 온통 슬픔으로 아려온다.

영화 '나의 마지막 수트'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나의 마지막 수트' 스틸 이미지. /사진=네이버 영화

좌충우돌이 예상됐던 아브라함의 무작정 여행기는 용감한 도전을 그린 시니어 로드무비일거라는 예상을 빗나간다. 수트의 발견으로 시작된 여정에는 망각했던, 어쩌면 망각하려고 애써왔을지 모를 고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소환된다. 금기어였던 ‘폴란드’에는 자신의 눈앞에서 죽어간 가족의 아픔이, 나치 독일에 의해 짓밟힌 청춘이 ‘홀로코스트’라는 역사로 봉인돼 있다.

하지만 유대인이었던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친구에게 전해 줄 한 벌의 수트로 인해 비로소 봉인이 해제 된 것이다. 폴란드로 향하는 기차 시퀀스는 플래시백(회상장면)을 통해 독일군과 그들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청년 아브라함을 보여주며 참혹했던 과거는 분노로 몸부림치는 현실로 연결된다. 그에게는 과거, 현재가 모두 비극이다.

하지만 영화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고통은 증오와 분노로 표출되며 '봉인해제' 되지만 역시나 치유의 힘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여행길 위에서 만난 낯선 이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위태롭기만 했던 여정은 지속 될 수 있었고, 그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준 독일인 인류학자의 마음이 아브라함에게 전해지면서 증오는 누그러진다. 그리고 폴란드에서 만난 간호사는 그를 간호해주기도 하고 기꺼이 아브라함과 마지막 수트가 향해야 할 곳까지 동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이 보여준 ‘인간애’는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살아 볼 만하다는 믿음을 실현시킨다.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소재를 시각화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탄탄한 내러티브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정서를 구현해 내기에 충분하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눈물 나게 빛나는 해피엔딩을 선사한다. 이제는 나와 닮은 모습으로 늙어버린 친구와의 재회, 살아있음이 말로는 차마 형언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되는 순간, 비극은 희극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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