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일부 주민들 매물 확인 후 전화로 "매매가 올리라" 요구
카카오톡 대화방에 모여 대책논의하거나 가격 조정
담항행위가 행동으로 이어져 중개사무소 '영업방해' 수준까지

[한스경제=박재형 기자] “매물을 등록하면 일부 주민들이 인터넷 호가를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걸어 가격을 조정하라고 해요.” (위례신도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최근 아파트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 위해 아파트 입주민이 주축이 된 '호가 담합'이 부동산 시장을 제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다. 중개업소에 손님인 척 전화해 매물을 확인하고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등 수법도 더 치밀해지고 있다.

기자가 11일 찾은 경기 성남시 위례신도시의 중개사무소들은 이번주 발표될 부동산 종합대책을 앞두고 납작 엎드린 모습이었다. 활기가 느껴지는 거리 풍경과 달리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주민들의 집값 담합에 대한 질문에 몇몇 공인중개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위례신도시. 사진=박재형 기자

D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수차례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거래를 원하는 분들의 입장에 맞춰 집값을 정하고 등록하면 왜 이렇게 저렴하게 등록했냐고 바로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중개사무소 대표들은 집값담합 행위가 ‘영업방해’ 수준에 이르렀다고 푸념했다. 위례의 몇몇 주민들은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등록되는 매물이 있으면 즉시 허위매물로 신고를 하고 있다. 매매뿐만 아니라 전·월세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A중개사무소 대표는 “일부 주민이 손님인척 전화해 매물을 확인하기도 한다”며 “한명의 주민이 중개사무소들이 등록해놓은 집값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수의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을 높여 받아야겠다는 담합행위로 위례의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셧다운’ 상태에 들어갔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매도인들로 인해 “여기가 강남인줄 아냐”며 발길을 돌리는 매수자들도 많다고 했다.

매물이 상당수 줄어든 위례신도시 아파트 매매 현황./사진=네이버부동산 캡처

E중개사무소 대표는 “돈이 급해 11억5000만원에 집을 내놨던 손님이 거래가 안되자 11억원 이하로 금액을 낮추겠다고 하고선 갑자기 거래를 취소한 경우도 있었다”며 “다른 주민들과 얘기해보니 14억원은 받아야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담합행위에 대한 피해는 사정이 급해 집을 처분해야하는 일부 거주자를 포함한 실거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집을 하루라도 빨리 팔기 위해서 시세보다 조금 낮은 가격에 거래를 하려고 하면 방해를 받고, 높은 가격에 내놓으면 매수자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일부 주민들이 가격이 낮은 매물이 올라오면 해당 매도자에게 직접 전화해 압박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우선 손님인척 중개사무소에 전화해 해당 동·호수를 알아내고 관리사무소를 통해 전화번호를 얻는다.

주민들이 가격담합으로 ‘중개사 길들이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M공인중개사 대표는 “주민들이 매물을 다 거둬들여 중개사무소를 ‘말려 죽이자’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며 “그런 식으로 중개사를 길들여 당장은 원하는 가격에 집을 거래하고 나아가 부동산 수수료까지 조정하려 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담합행위는 주로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주민들은 대화방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가격에 매물을 등록해주는 ‘착한부동산’을 지정해 거래를 몰아주자는 등 집값을 올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대화를 나눈다. 대화방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집 동·호수, 신분증, 재산세내역, 관리비내역,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파트 거주자 중에는 중개사무소 대표·직원들도 있다. 대화방 주민들은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화방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강퇴’시키거나 나가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대화방에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심한 모욕이 섞인 대화도 오간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몇몇 공인중개사는 법적 대응도 검토하고 있지만 쉽사리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말한다. 공인중개사 업무는 주민과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위례신도시 주민 카톡 대화방./사진=박재형 기자

R중개사무소 대표는 “화도나고 모욕감도 느끼지만 당위성을 떠나 주민을 고소한다는 것이 앞으로 관계 유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망설여진다”고 밝혔다.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고려해 주민담합 행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모른다고 대답하는 중개사무소도 있었다. 해당 중개사무소들은 담합행위에 관해 묻는 질문에 “우리는 사무소는 매물 가격 관련 항의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대답하거나 “주민 담합과 관련해 들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N중개사무소 대표는 “규제나 법적조치에 앞서 공인중개사들과 주민들이 대화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다”며 “공인중개사와 주민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이기에 화합을 이뤄내는 것이 우선이고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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