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0일 국회의장·여야 5당 대표 등 9명을 대상으로 평양정상회담 초청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현준 기자]문재인 정부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국회의장단과 5당 대표에게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동행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국회의장단은 물론 야당 대표 다수가 즉각 거절했으며 요청 방식과 태도와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여야 5당 대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등 9명에게 정치 분야 특별대표단 자격으로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가 야당 대표들은 물론 국회의장단에게도 거부당했다. 논의와 조율도 없이 갑작스레 제안한 것이 거절의 주 이유였다.

특히 문희상 국회의장은 “입법부 수장으로서 마치 들러리로 보이는 행동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며 이례적인 반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열린 국무회의서 “우리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다시 한 번 큰 걸음을 내딛는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처럼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같은날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만나 정상회담에 동행해달라고 재차 요청했지만 또 한 번 거절당하면서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오만인가 미숙인가”, “남북문제마저 일방통행인가” 등 靑 요청 및 태도 지적

한겨레·경향일보 등 진보신문은 청와대의 방북 요청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언론들은 청와대 측의 요청이 일방적이었으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12일 “청와대의 對野(대야) 정치, 오만인가 미숙인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먼저 “사전에 아무 조율 없이 공론화(公論化)된 협치는 결국 공론(空論)이 됐다”며 협조보다 명분을 앞세운 정상회담 동행 제안이 대단히 오만하고 미숙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압박으로 비춰진다면서 비판적 정치세력인 야당과 신뢰를 구축하는게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일보도 “청와대, 남북문제마저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정상회담서 국회의장단과 여야 대표가 함께 가는 ‘역사적 동행’을 성사시키려 했으면 추진 방식은 최대한 신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북문제는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닌 만큼 문희상 국회의장 측이 “자존심이 상했다”라고 발언할 정도로 일방적인 일 처리는 삼가고,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기를 촉구했다.

동아일보도 같은날 기사에 청와대의 동행 제안을 두고 “공개압박”이라는 표현을 쓰며 야당 대표들의 반대 입장을 중심으로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 방북 요청을 수락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국회의장단과 정당 대표의 동행 방북의 중대성을 감안해 충분한 사전 조율이 필요했다”고 지적한 부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어 여당 관계자가 “판문점선언 비준을 위해선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우린 할 일 다했다’고 국회를 몰아붙이는 듯 한 태도는 아쉽다”고 언급한 부분을 들며 이번 제안이 다소 무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나 같아도 안가겠다” vs “안하면 안한다고 트집, 하면 한다고 트집”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번 방북 요청을 두고 설전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를 비판하는 측은 “발표 전에 사전협의를 해야지, 나 같아도 안가겠다”, “야당 대표인데 죄소한의 자존심은 있어야지”, “경우에도 맞지 않고 실익도 없고 안 간다는 것이 당연지사” 등 일방적인 통보는 야당 등의 입장에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렇게 무리하게 방북을 추진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당연히 안하면 안한다고, 트집 하면 트집한다고 그러니 청와대는 할 도리를 다 할 뿐”, “야당들이여 순수하게 조국과 국민을 위하여 그냥 다녀오세요” 등 꼬투리 잡는 식의 야당의 태도를 지적하는 의견과 함께 대승적인 차원에서라도 참여하라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북미관계는 비핵화 실행과 종전 선언 등을 두고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2차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도 예정된 만큼 많은 공을 들여 북한 측으로부터 ‘판문점 선언’ 보다 더 실질적인 약속을 받아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구체적으로 실현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나친 과욕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충분해도 의욕만 앞서 일방적인 요청만 한다면 상대방이 반발하는 일은 당연지사다. 청와대와 여당도 맞불을 놓기 보다는 ‘대의’를 위해 부드럽고 섬세한 태도로 나서야 한다.

김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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