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자유연기 15초 5000원?”

오디션은 소위 말하는 ‘톱배우’가 아닌 신인배우 발굴의 장이다. 배우와 감독, 제작진이 새 작품을 꾸려가기 위해 적합한 배우를 찾는 현장이다. 대부분의 신인 배우들이 몇 장면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몸을 던져가며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최근 영화 ‘님의 침묵’이 오디션 비용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의 공분을 자아냈다.

■ 오디션 비용이 관행? 유료 오디션 없다

배우 민지혁은 지난 2일 SNS를 통해 후배 배우로부터 받은 영화 ‘님의 침묵’ 오디션 관련 공지 문자메시지를 캡처한 사진과 해당 문자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올렸다. 해당 문자에는 자유연기 15초와 자기소개 비용으로 5000원을 지급하라는 제작사 측의 요구사항이 적혀 있었다. 민지혁은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들, 참 말로 표현하기 그렇지만 연기로만 1년에 300~400만원 도 못 버는 배우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며 오디션 비용 요구에 분노했다.

이에 대해 ‘님의 침묵’ 한명구 감독은 “오디션 비용을 받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다. 외국에서도 받고 국내에서도 영화사마다 다르지만 더러 있다”고 해명했으나 논란은 쉽게 식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감독의 말처럼 실제로 오디션 비용을 받는 제작사는 찾기 힘들다. 엔터업계 종사자들은 “배우들이 오디션을 볼 때 돈을 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런 관행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기가 막힌다”고 덧붙였다.

■ 캐스팅 디렉터와 인맥 덕?

물론 예외의 경우는 있다. 무명배우들을 상대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하는 캐스팅 디렉터들이 매니지먼트나 배우들을 상대로 일정 금액을 받고 오디션장에서 ‘우선순위’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 현재 진행 중인 오디션을 배우나 소속사 측에 먼저 알려주는 식이다. 제작사 역시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진행 예정인 오디션을 알리기도 한다.

한 영화 제작사 PD는 “배우가 오디션장에서 돈을 내는 경우는 없다. 다만 배우가 캐스팅 디렉터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경우는 꽤 있다. 다른 배우들보다 오디션을 좀 더 수월하게 보기 위함이다”라고 귀띔했다.

영화 제작사의 경우 친분이 있는 매니저나 지인 측근인 배우의 오디션 프로필에 빨간 줄을 긋거나 중요 표시를 한다. “이 배우 좀 잘 봐달라”는 당부가 있기 때문이다. 오디션 합격 유무를 결정짓는 데 인맥이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최근 개봉한 모 영화에는 인맥으로 인해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할 장면을 뽑은 오디션에 한 신인배우는 합격 통보를 받고 기뻐했다. 기쁨도 잠시, 해당 오디션을 보지 않았던 다른 신인배우가 제작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따로 오디션을 봤다. 결국 그 역할은 제작사 대표와 친분이 있는 신인배우에게 돌아갔다. 이에 대해 소속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오디션에서 떨어진 배우는 속상함을 감추지 못하고 울며불며 통곡했다. 매니저와 관계도 틀어졌고 이후 소속사를 나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돈도 인맥도 없으면 오디션에 붙기도 힘들다”며 “악착같이 연기하는 것은 기본이고 돈, 인맥도 뒷받침해야 되는 형국”이라며 한탄했다.

■ 각박한 오디션 숨 틔워준 ‘친애하는 판사님께’ ‘흉부외과’

아직까지 신인배우들이 설 곳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일부 훈훈한 오디션 현장이 뭇 배우들을 미소 짓게 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중인 SBS ‘친애하는 판사님께’와 첫 방송을 앞둔 ‘흉부외과: 심장을 훔친 의사들’은 각각 200명, 300명의 참가자에게 편지와 수고비 차원의 금액을 제공했다.

배우 윤주와 이시유는 지난 5월과 6월 자신의 SNS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친애하는 판사님께’ 오디션에 응했던 윤주는 “이 작은 배려가 큰 행복과 감사함으로 내 안에 가득 찼다”며 편지와 오디션비 3만원을 사진으로 게재했다. 이시유 역시 “데뷔 이래 이런 감동은 처음 느껴본다. ‘흉부외과’ 대박나길”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같은 훈훈한 미담은 ‘님의 침묵’ 사례와 대비되며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꿈을 좇아 노력하는 무명배우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무명배우들에게는 오디션 하나하나가 굉장히 소중하다. 한 신이라도 따내기 위해 상상 이상으로 노력한다”며 “영화 제작사와 방송가에서도 이들을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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