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양인정 기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으로 안창호의 삶이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안창호는 평안남도 강서군 봉상도에서 농부인 안흥국(安興國)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평안남도 대동군 대보면 용인리에서 출생한 봉산 김씨인 김희순(金羲舜)이 세운 한학당에서 수학했다.  

안창호는 1895년 미국 북장로회 계통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설립한 구세학당(救世學堂, 경신학교)에 입학해 처음 신학문을 접했고,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해 민족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듬해 독립협회가 해산하자 곧바로 낙향하여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우고 교육자로 변신했다. 

그는 이후 1904년 의친왕, 정재관 등과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였다. 공립협회는 안창호가 귀국할 무렵인 1907년에는 지방회 7개를 가진 북미 최대의 한인 자치단체로 발전했다. 1908년 안창호는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였고, 1909년 김좌진, 이갑 등과 서북학회를 창립했다.

일제 탄압이 심해지면서 105인 사건이 일어나 서북지역 항일 인사들이 대거 투옥됐다.  이 사건 이후로 안창호는 준비론에 입각하여 실력양성을 주장하게 되었고 이시영, 이동휘, 김좌진과 같은 급진파는 만주로 이동하여 무장항쟁을 준비하게 됐다.

그의 아들 필립안은 헐리우드에서 배우로 활동하기로 했다. 필립 안은 14차례나 한국을 방문하면서 도산 기념 도서관과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애쓰다가 뜻을 펴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양인정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