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 부회장, 승진 후 첫 행보는 미국 통상관계자 미팅
남북정상회담 방북 특별수행단에도 불참…"청와대도 양해할만큼 중요한 일일 것"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되면 국산차 산업 '날벼락'…국산차 산업 '산 증인' 정 부회장 역할 커

[한스경제=김재웅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국내 자동차 산업 구출에 나선다. 남북 정상회담 방북단 대신 미국으로 건너가 통상관계자들에 국산차 관세 부과 예외 조치를 설득하고 나설 예정이다. 총괄 수석으로 임명된 후 첫 행보. 정 부회장이 현대차그룹과 국산차 산업을 지켜낼 수 있을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16일 전용기를 타고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당초 정 부회장은 남북 정상회담에 따른 방북 특별수행단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신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을 명단에 올렸다.

정 부회장은 미국에서 윌버 로스 미 상무부장관 등 관계자들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차에 관세 25%를 부과하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우리나라를 예외로 해달라고 설득하기 위함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총괄 부회장은 승진 후 첫 일정으로 방북 대신 미국행을 선택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청와대도 양해한 미국 관세 부과 위기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 안보에 위협을 주는 물품의 경우, 25%의 고율 관세를 매기고 수입량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부터 철강과 자동차 등 부문에 이 법을 적용하는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7월 공청회를 거쳐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에 국산차와 철강 분야를 예외로 해줄 것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굳건한 동맹 관계인 만큼, 미국 안보에 위협을 주지 않는다는 논리다.

한국무역협회도 지난 6월 국내 자동차 업계 등 관계자들 의견을 모아 미국에 '이해관계자 의견설'을 제출했다. 한국이 미국산 자동차의 유망 잠재 수출시장이며, 국산차 산업이 오히려 미국에서 고용창출 등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대차 노조까지도 7월 미국에 무역확장법 232조 예외를 요청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한미FTA에 이은 '이중 패널티'라며, 현대차가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타격을 입으면 미국 공장 철수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를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탓이다.

아울러 미국이 지난달 멕시코와 새로운 NAFTA 협정을 맺으면서, 자동차 수출 쿼터제에 합의한 것도 부정적인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사정에 밝은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에서 예외로 빠지기 어렵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정의선 부회장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임무라는 방증 아니겠냐"고 추정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생산량 절반 가량이 미국 수출 물량인 닛산 로그다. 르노삼성자동차 제공

◆ 무역확장법 232조, 국내 자동차 산업 여파는

업계 관계자들은 무역확장법 232조가 적용된다면 국산차 산업은 되돌릴 수 없는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산차 업계 대부분이 미국 수출에 적지 않은 무게를 실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대차는 물론이고,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지엠은 생존권 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에서 북미로 수출된 승용차는 104만2709대다. 전체 수출량(241만5948대)의 43.2%에 해당한다. 캐나다로 수출되는 물량은 일부분, 대부분이 미국으로 향한다.

업체별로 봐도 현대차는 연간 수출량 96만3938대 중 40만629대(41.6%), 기아차는 107만5101대 중 28만7401대(26.7%)를 미국으로 보냈다. 한국지엠도 트랙스와 스파크 등 국내 생산물량 중 40% 정도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르노삼성은 회사 명운이 미국의 결정에 달려있는 상황이다. 작년 수출한 14만6244대 중 미국으로 간 닛산 로그가 93.2%(13만6309대)다. 전체 생산량(25만7345대)에서도 절반 이상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높은 생산성으로 르노그룹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닛산 로그가 아닌 다른 생산 물량을 받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로그가 생산 이익이 높은 차종인만큼, 미국 관세 조치가 내려지면 일정부분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엘란트라(아반떼), 쏘나타, 싼타페를 생산하고 있다. 제네시스와 투싼 등 인기 모델 대부분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한다. 현대자동차 제공

◆ 정의선 부회장에 車산업 미래 달렸다

정 부회장 행보에 기대가 쏠리는 가장 큰 이유는, 14일 정 부회장이 그룹 총괄 수석 부회장으로 승진후 첫 행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정 부회장은 현대차그룹에서 여러 굵직한 업적을 남기며 국내 자동차 산업의 주요 인물로 자리잡은 바 있다.

정 부회장은 기아자동차가 어려움을 겪던 2005년 사장으로 취임해, 피터 슈라이어 당시 부사장을 영입하는 등 디자인 경영 전략으로 위기를 벗어나는데 크게 공헌했다. K시리즈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모하비 역시 이 때 출시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으면서 '정의선 차'로 불리고 있다.

현대차가 유럽시장에서 자리를 잡는데도 정 부회장은 큰 역할을 해냈다. 'PYL'이 바로 그것. i30와 i20 등 모델이 유럽과 인도 등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한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최근 벨로스터 N 출시 등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소형 SUV 코나로 능력을 증명해냈다. 작년 론칭 행사에 직접 코나를 소개했으며, 올 들어서만 7월까지 10만1797대, 매달 1만5000대를 수출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의 정확한 방미 일정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무역 제재와 관련한 인사들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룹뿐 아니라 국내 산업 전체에도 중요한 일인 만큼, 청와대와 상의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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