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움직이는 풍경화를 본 것 같다. 100여분 남짓 ‘타샤 튜더’의 삶에 동화돼 대리만족 한 느낌이랄까.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MSG 전혀 없는 그녀의 무공해 삶, 솔직히 부러웠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하고 개척해 후회 없이 본인의 행복을 일구고 노년을 맞이한 평온함, 그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 테니까.

첫 작품인 ‘호박 달빛’과 코기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한 ‘코기빌’ 시리즈 등 그녀의 대표작들이 스크린을 통해 살아 움직인다. 타샤 튜더가 그린 동화책들과 사계절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정원 모두 동심의 세계로 기꺼이 관객들을 인도한다. 그녀가 꿈꾸고 가꿔 나갔던 것들로 눈호강 하는 순간, 전쟁터 같은 현실은 '순삭'(순간 삭제의 줄임말) 된다. 늘 긴장의 연속인 삶이기에 불필요한 무언가로 가득 찼던 머릿속과 맘을 잠시 비우고 여백을 만들어 본다.

영화는 흔히 모든 드라마 구조를 갖춘 작품들이 보여주는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뻔한 절정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위기의 순간도 없다. 그러나 어떤 인생도 물 흐르듯 그렇게 평온하기만 한 삶은 없으리라.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도시의 사교계가 아닌 전원생활을 고집하는 타샤 튜더의 선택을 못마땅해 하는 엄마,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남편, 어쩌면 그녀의 삶을 힘들게 했을 고통의 시간들을 영화는 애써 세밀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외화면 영역(스크린 밖의 영역) 속에서 상상할 수 있을 뿐.

. /사진=네이버 영화

현재 그녀의 평온한 모습을 마주하기까지 4남매의 엄마로서 가정을 책임지고, 농장을 가꾸고, 동화작가로서 끊임없이 창작의 나래를 펴야 했던 스크린 너머의 삶은 철의 여인으로서의 인생이 아니었을까. 타샤 튜더의 모습은 한없이 부드럽지만 그녀의 삶은 외유내강(外柔內剛) 이었을 것 같다. 시종일관 잔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지루하지 않은 까닭은 이런 상상력이 함께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미국의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사는 라이프 스타일 역시 그녀가 고수한 독특한 삶의 방식이다. 그 시대의 드레스를 입고, 그 시대의 물건들을 사용하고,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하는 모습은 시대와 맞지 않는 올드함이 아닌 타샤 튜더식 개성이자, 따뜻함이고 디지털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아날로그 철학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 없이 살아요. 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차 한 잔을 앞에 놓고도 카톡에, 새로 업데이트 된 정보에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바쁜 손과 머리. 아날로그 감성으로 디지털 시대를 쫓아가기 급급한 내 모습과 사뭇 다른 그녀의 여유로움이 부럽다.

화자(話者)로서 자신의 히스토리를 말하는 그녀는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확신에 찬 이야기들을 전한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고 그런 인생을 살았기에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그녀다.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욕망을 부채질하는 뉴스들을 연일 접하며 욕망충족이 행복이라고 믿는 헛된 믿음 속에 힐링 할 곳을 찾는 갈급함,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우울하게 살기에 인생은 너무 짧아요. 좋아하는 걸 해야 해요” 늘 꿈꾸지만 꿈꾸는 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혹시 출렁거리는 욕망을 꿈으로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닌지, 그 욕망 때문에 우울한 건 아닌지, 타샤 튜더의 삶 속에서 잠시 나를 돌아본다.

●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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