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배우 손예진이 영화 ‘협상’(19일 개봉)을 통해 ‘로맨스 퀸’이라는 수식어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긴 머리의 청순한 외모, 무르익은 멜로 연기로 늘 대중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손예진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다. 긴 머리 대신 단발머리로, 원피스 대신 경찰제복을 입고 외형적인 변신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냉철한 카리스마를 지닌 하채윤으로 완벽히 분했다. 손예진은 “모든 면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며 만족했다.

- ‘협상’은 국내영화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소재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야기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하채윤이라는 인물 역시 능동적인 여자 경찰이자 협상가다.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없는 작품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충분히 욕심 낼만 한 캐릭터였다. 중요한 건 시나리오의 속도감이 아주 좋았다.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날 몰입하게 했다. 모든 면에서 새로웠다.”

-사실 경찰은 기존의 형사물에서 많이 만날 수 있던 캐릭터다.

“전형적이지 않은 여경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전형성을 너무 벗어나도 안 됐다. 그 간극을 조절하는 게 힘들었다. 특히 이번 역할은 대사에서 캐릭터의 모습이 많이 표현되지 않나. 말투 하나하나 신경을 썼고 눈빛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렇다. 존경했던 사수 정 팀장(이문식)이 민태구(현빈)에게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캐릭터다. 사실 프롤로그 장면에서 하채윤의 트라우마도 나오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태구에게 더 단단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실제로 의사 분들도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못 견디고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모든 직업이 다 고충이 있지 않나.”

-촬영 중에는 현빈과 일부러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던데.

“서로 조언을 하거나 상의를 하지 않았다. 영화 속 하채윤과 민태구의 관계가 아무래도 긴장을 유지해야 하니까. 나도 희한한 경험이었다. 보통 상대배우와 호흡을 맞추면서 애드리브나 방식에 대해 상의하지 않나. 그런데 ‘협상’은 달랐다. 현빈이나 나나 혼자 고민하며 연기해야 했다. 굳이 리허설을 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현빈과 긴장 관계를 유지했지만 화면에서는 호흡이 꽤 안정적이었다.

“우리 둘이 잘 맞은 것 같다. 나도 만족한다. 민태구, 하채윤의 밀당 케미가 마음에 든다. 다음 작품에서는 이원촬영이 아닌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연기하고 싶다.”

-추석 시즌 개봉작인 ‘안시성’ ‘명당’ 협상‘ 중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은 ’협상‘이 유일하다.

“항상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성 중심 영화가 많은 게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남자 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 폭이 넓다. 이전에도 여름 시장을 겨냥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덕혜옹주’(2016년)와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6년)이 유일했다. 여배우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 여자배우들이 얼마나 연기 잘하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올해 신인 김다미를 내세운 ‘마녀’가 잘 됐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다. 굳이 남자, 여자를 구분 짓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 안에서 여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표현됐으면 한다.

-경쟁작 ‘명당’ ‘안시성’의 주인공인 조승우, 조인성은 ‘클래식’(2003년)에서 호흡을 맞췄다. 세 사람이 추석대전에서 경쟁작으로 만난 것을 두고 ‘클래식 매치’라고도 불리는데.

“벌써 15년이 됐다. ‘클래식’은 나나 그분들이나 정말 남다른 의미의 작품일 것이다. 아직까지 관객에게 사랑 받는 영화이기도 하고. 이런 운명적인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세 작품이 다 잘됐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피땀을 흘리며 만든 영화인가. 물론 (관객 수) 계속 신경은 쓰인다. (웃음)”

-세월이 흐르면서 더 여유로워진 것 같다.

“20대 때보단 확실히 그렇다. 세월이 가면서 어떤 게 중요한 삶인지 점점 깨닫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나를 보며 ‘좋아 보인다’ ‘여유가 생겼다’ 등의 말을 많이 한다. 사실 ‘덕혜옹주’때는 경쟁작들 속에서 부담을 느꼈고 ‘비밀은 없다’ 때는 처음으로 강한 캐릭터에 도전해 힘들었다. 그런 작품들을 하나씩 끝내면서 더 단단해진 것 같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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