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우리·기업은행, 신입행원 뽑는다면서 일부 분야선 경력 있어야 지원 가능

[한스경제=김서연 기자] “근무경험자만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 대놓고 '중고신입' 뽑겠다는 말 아닌가요? 그것도 관련업종 인턴도 안 되고 계약직도 안 되고 관련업종에서 6개월 이상 일한 정규직만 된대요. 인턴 경험이 있는 지원자만 지원할 수 있다고 해도 진짜 ‘신입행원’을 뽑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데 정규직만 지원할 수 있다니요. 솔직히 신입행원 채용에 지원한 20대 중반 지원자들 나이에 인턴 경험은 많을지 몰라도 정규직 경험은 얼마나 있겠어요. 그나마 일반직에 지원 조건이 없으니 다 그쪽으로 몰릴 듯 하네요.”

우리은행의 하반기 채용 공고에 지원했다는 한 지원자의 푸념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일반직 신입행원 채용 절차를 시작했는데, 서류전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지원분야에 ‘6개월 이상 관련업종에서 근무경험자만 지원이 가능하다’고 명시하며 지원자를 제한한 데에 따른 비판이 나오고 있다. 타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입사한 '중고신입'을 뽑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다.

IT/디지털 부문과 IB 부문에서 필수 지원자격을 내건 우리은행. 사진=우리은행 채용 홈페이지

지난 14일 하반기 신입행원 서류 접수를 마친 기업은행 역시 디지털 분야 채용에서 이공계 및 자연계열 관련 전공자 또는 IT 정규직 근무 경험자로 응시자격을 한정했다. 여기서 관련 전공은 주전공 및 복수전공으로, 부전공자는 지원이 불가능하다.

기업은행은 디지털 분야 지원에서 이공계 및 자연계열 관련 전공자 또는 IT 근무 경험자일 경우에만 응시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기업은행 채용 홈페이지

두 은행 모두 지원자격부터 한정했지만 차이점은 우리은행은 전공과 관련 근무 경험 등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만족해야 지원서를 쓸 수 있고, 기업은행은 두 조건 중 하나만 만족하면 지원서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은행의 경우 이런 필수 지원조건은 찾아볼 수 없고, 관련 전공도 필수 지원조건이 아닌 단순히 ‘우대’를 해주는 수준이라 은행권 채용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들을 중심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이같은 지원요건이 ‘특화된 인재를 뽑겠다’는 지원분야별 채용의 그림자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단순히 우대를 해주는 조건이 아닌, 처음부터 숙련돼 있는 지원자를 뽑는 방향으로 채용절차가 변질됐다는 얘기다.

사진=각 사 채용 홈페이지

◆ IT 전공자이면서 6개월 이상 관련업종에서 근무해야 ‘우리은행 지원 가능’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 18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일반직 신입행원 채용을 위한 서류 접수를 받는다. 지원부문은 ▲일반 ▲지역인재 ▲IT/디지털 ▲IB(투자금융) ▲WM(자산관리) ▲리스크/자금 등 6개다.

이중 논란이 되는 부문은 IT/디지털 부문과 IB 부문이다.

IT/디지털 부문은 IT·이공·자연계열 관련 전공자이면서, 6개월 이상 관련업종에서 근무경험자 또는 관련 전공 석사 이상 학위보유자만 지원이 가능하다. IB 부문은 상경계열 관련 전공자이면서, 6개월 이상 관련 업종 근무경험자 또는 관련 전공 석사 이상 학위 보유자만 지원이 가능하다.

학력과 연령, 성별에 제한이 없다고 명시했으나, 두 부문 지원자의 경우 전공과 경력사항에 지원 제한을 둔 것이다. 리스크/자금 부문의 경우 상경·이공·자연계열 관련 전공자만 지원이 가능하다. 근무 경험은 필수가 아니다.

IT/디지털 부문과 IB 부문 지원 요건에서 정의한 ‘근무경험자’의 범위도 제한적이다. 인턴직도 아니고, 계약직도 아니고 정규직이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은행 2018 일반직 신입행원 채용에서 IT/디지털 부문을 선택해 입행지원서를 작성하다보면 경력사항 입력란에 ‘정규직’만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IT/디지털 부문 입행지원서에서 경력사항 입력란에 ‘정규직’만 선택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사진=우리은행 채용 홈페이지

이에 대해 우리은행은 IT/디지털 부문과 IB 부문은 해당업무의 전문적인 특성상 관련 근무경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원자격 제한이 없는 일반부문과 지역인재부문이 전체 채용인원의 대다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IT/디지털 부문과 IB 부문의 경우 (전공 등을) 단순 우대만 할 경우보다 지원 부문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 역량 있는 지원자들을 선별하기 위한 차별화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명확한 지원 조건을 제시해 지원자들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기업은행은 채용의 기회를 오히려 넓힌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이공계 및 자연계열 관련 전공자 또는 IT 근무 경험자로 지원 자격을 둔 것은 대학을 가지 않고 IT 계열에 입사했다가 행원이 되고자 하는 지원자를 위해 문호를 열어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 타행, 전공 여부·자격증 유무는 단순히 ‘우대사항’

타행의 경우 전공 여부와 자격증 유무는 필수사항이 아닌 우대사항일 뿐이다.

오는 30일까지 하반기 일반직 채용 서류를 접수하는 신한은행은 일반직군에서 분야를 ▲기업/WM ▲리스크/빅데이터 ▲IB/자금운용/금융공학 ▲디지털/ICT로 나눠 채용하지만 지원 대상을 한정하지 않았다. 직무관련 자격증 보유자를 우대하는 수준이다. 지난 10일 공채 서류 접수를 마친 국민은행도 신입행원 분야를 ▲일반 ▲ICT로 나눴지만 지원조건이 따로 명시돼 있지 않다. 정보관리기술사, 정보처리기사 등 ICT 관련 자격증 등 해당 분야 관련 자격증 보유자를 우대할 뿐이다.

다음 달 8일까지 신입행원을 채용하는 KEB하나은행은 분야를 따로 나누지 않고 일반직에서 500명가량을 뽑는다. KEB하나은행 역시 이공계열 전공자를 우대하는 정도다. 이날까지 하반기 6급 신규직원 채용 서류를 접수한 농협은행도 일반 분야에서만 채용을 진행하며 금융전문자격증 소지자를 우대사항에 넣었다.

IT 관련 분야를 전공했으나 근무경험을 충족하지 못해 우리은행 채용을 포기했다는 취업준비생 A씨는 "신입행원 채용이라면서 6개월 이상 근무경험을, 그것도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분야를 나눠서 채용을 한다고 해서 이공계를 우대할 수는 있지만 근무경험이 신입 행원 채용을 위한 필요조건이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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