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인텔 CPU 공급 부족 현상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PC 시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스경제=팽동현 기자] 지난 8월부터 시작된 인텔 CPU 가격 상승이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상화폐 붐으로 일어났던 그래픽카드 대란에 이어 이번에는 CPU 대란이다.

4일 다나와 가격비교를 살펴보면 일반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인텔 8세대(커피레이크) 코어 i5-8400은 약 32만원, 하이엔드 PC용 i7-8700K는 약 48만원 정도에 최저가가 형성돼 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각각 20만원, 37만원 수준에 거래되던 상품들이다.

시간이 지나면 보다 저렴해지는 게 일반적인 CPU 제품이 외려 10만원이 넘는 웃돈이 붙으며 거래되고 있는 이유는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은 3개월 사이에 크게 바뀌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인텔의 14나노미터(nm) 공정에서 제조되고 있다.

◆ CPU 공급 부족, 과연 수요 증가만 이유일까

인텔은 이러한 CPU 공급 부족 현상에 대해 줄곧 수요 증가만을 이유로 들고 있다. 지난달 말 밥 스완(Bob Swan) CFO 겸 임시 CEO도 공개서한을 통해 공급에 차질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그 배경으로는 모두 외부적인 요인만을 나열했다.

이 공개서한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클라우드 및 빅데이터 분야의 지속 성장으로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용 제품 수요가 급증했고 ▲갈수록 침체돼가던 PC시장이 2011년 이래 처음으로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PC용 제품 공급도 빡빡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가트너 조사에서도 올해 2분기 전세계 PC 출하량이 전년동기 대비 1.4% 증가한 6210만대를 기록했다. 현재 PC시장의 반전을 견인하고 있는 주역은 게이밍 분야다. 보다 원활한 게임 플레이를 위해 주로 고급형 인텔 CPU 제품이 선호된다. 14나노 공정 기반의 커피레이크 제품군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 증가폭은 훨씬 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재의 공급 부족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8세대 등장 이후 판매가 부진한 이전 세대 제품들의 재고 처리를 위해 물량을 조절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인텔이 아마존이나 구글과 같은 클라우드 사업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서버용 제품 물량 확보를 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PC용 제품의 공정 일부를 전환하면서 벌어진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인텔은 서버용 CPU 시장에서도 90% 이상의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 10nm 공정 본격 가동될 내년에나 풀릴 전망

이달 들어 미국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CPU 가격 급등에 대해 인텔은 기존 제조 공정의 생산량을 늘려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오리건·애리조나, 아일랜드, 이스라엘 등에 위치한 14나노 공정에 총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PC용 CPU 제품의 공급 부족이 해결되고 가격이 안정화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텔 측에서 PC용 CPU 제품의 공급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여전히 서버용 제품의 생산부터 우선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PC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물량을 확보해가는 상황이라, 한동안 일반 소비자들의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의 10나노 공정 전환 지연도 이번 공급 부족 현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지난해로 예정됐던 10나노 공정 기반의 캐논레이크 출시는 올해도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계속된 출시 연기는 낮은 수율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이 현재 계획대로 내년부터 10나노 공정 칩의 대량 생산에 돌입한다면 이를 기점으로 CPU 공급난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인텔 CPU 대란이 반도체 업계에는 긍정적인 신호라는 분석도 나왔다. NH투자증권 측은 “수율 문제가 아니라 양호한 수요 때문이어서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 “인텔 사례처럼 의외의 PC 수요 개선이 계속된다면 PC향 메모리 역시 공급 부족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해석했다.

팽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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