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을 끝내면 배우들과 동지가 된다.”

영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촬영 현장을 떠올리며 꺼낸 말이다. 그렇게 우 감독은 이병헌 백윤식 조승우 등과 동지가 됐다. 특히 이병헌에 대한 마음은 더 애틋했다. 시시비비를 떠나 배우가 가장 심적으로 고통이 컸을 무렵 촬영이 진행됐고 이병헌은 묵묵히 자기 역할을 소화했다.

그런 배우를 두고 우 감독은 “프로 중에 프로, 대한민국이 놓쳐선 안 될 배우”라고 극찬했다. 하루 아침에 바닥을 친 한류 스타의 이미지 그리고 뼈를 깎는 연기 변신,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는 기록적인 흥행 성적표로 이어졌다.

‘내부자들’은 70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하며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흥행 2위를 기록했다. ‘친구’의 818만 기록은 배급사 집계 기준 비공식인 점을 감안하면 ‘내부자들’이 최고 흥행작이나 다름 없다. 여기에 감독판인 ‘내부자들:디 오리지널’이 개봉 4일 만에 8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중인 영화가 감독판으로 또 나오는 경우는 처음이지 않나.
“참으로 고마운 기회가 주어졌다. 흥행을 떠나서 우리들이 원래 찍었던 영화가 이렇다고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 상업영화로 풀어 가야 하기 때문에 편집됐던 30~40분이 추가됐다. 배우나 제작사나 오리지널을 좋아했다.”
 
-7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감독판 관객까지 어느 정도 예상하나.
“사실 모르겠다. 700만 자체를 정말 상상도 못했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최다 관객 기록은 ‘친구’인데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으로는 또 조승우와 백윤식의 ‘타짜’라고 한다. ‘타짜’의 두 사람이 다시 뭉쳐 기록을 깼다(웃음).”
 
-‘친구’ 기록도 깨지기 직전이다.
“안 된다. 바라지도 않는다. 어마어마한 기록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호해야 된다.”

 
-이병헌이 사생활 문제로 ‘협녀’ 흥행에 실패했었다. ‘내부자들’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했다.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뚫고 나갔다. 배우 이병헌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 천만다행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이 놓쳐선 안 될 배우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만들어준 부분도 있다.
“영화 한 편 찍으면 배우와 동지가 된다. 난국을 뚫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본인이 잘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촬영이 한창이었다. 무척 안쓰러웠다. 심적 부담과 고통이 분명 있는데 떠안고 연기했다. 안 할 수도 없지 않나. 프로답게 잘 해준 덕분에 사람들도 진가를 알아주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이병헌과 친분은 이전부터 있었나.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 2012년 ‘간첩’이란 영화를 찍었을 때 이병헌의 ‘광해, 왕이 된 남자’에게 짓밟혔다. 악연이었다. 한이 맺혀서 저 배우랑 해보자고 했는데 잘 돼서 다행이다. ‘타짜’ 대사 중에 ‘이 판에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있다. 서로 주고 받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깡패 역할이라 많이 망가져야 하는데 이병헌이 안 할 줄 알았다.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이병헌이 흥행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

 
-감독판은 무엇이 다른가.
“이강희의 엔딩신이다. 이 장면을 두고 조승우도 이병헌도 그 장면에서 소름 끼쳤다고 했을만큼 파워풀하다. 본편에서 걷어낸 이유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회의와 절망감을 느끼지 않길 바랐다. 그 장면이 들어가면서 조금 더 경각심을 갖자,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 끝까지 주시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떻게 받아들일 지 평가를 봐야 할 일이다.”
 
-영화 속 언론인의 모습을 실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꽤 많다.
“실은 나도 잘 모른다. 특별한 조사는 안 했다. 원작을 잘 살리자는 의도만 있었다. 본편에는 없지만 신문사 편집회의, 논설주간과 국장의 관계 모두 고스란히 원작을 살렸다. 사실 그런 논설주간이 어디 있나, 상징적 인물일 뿐이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같은 편에 서서 펜을 굴릴 때 이 사회에서 어떻게 흘러가나 정도로 봤다.”
 

-속편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갑자기 궁금해지긴 한다(웃음). 조승우가 맡은 우장훈이 국회로 들어갔을까. 과연 우장훈은 나비가 됐을까, 나방이 됐을까. 나비에서 나방이 되는 과정인가. 안상구도 저대로 끝나지 않을텐데….”
 
-감독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내게는 큰 기회가 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천만다행이다’정도? 어찌됐건 이번 작품이 잘 안 됐으면 마지막이 됐을텐데 다음은 찍을 수 있겠구나 싶다. 절박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절박했나.
“잘 되면 다들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못할 수 도 있겠다 싶으면 그 때부터 고통이다. 다음이 보장된 선물이 주어지면 덜 고통스러운 것이다. 감독은 참 직접적으로, 실시간으로 평가 받는 직업이다.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상상 이상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인데 계속하는 이유는.
“감독 데뷔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리고 고통스러운 것을 알았다면 안 했다. 그만 해야 되지 않을까 싶으면 그 때 영화가 들어오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자격지심이 좋게 작용했다.”
 
-성공의 욕구, 가로막힌 현실, 영화 속 조승우의 자격지심과 많이 닮은 건가.
“그렇다. 실패가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실패에 대한 자격지심, 그게 나에게는 세 번째 영화까지 오게 된 힘이었다. 결과가 나빴다면 네 번까지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다. 시나리오는 쓰니 작가로 먹고 살지 않았을까.”
 
-다소 이르지만 차기작으로 염두한 작품이 있나.
“‘내부자들’속 인물은 별나다. 이상하고 과장되기도 했다. 다음에는 특화된 인물 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심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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