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기념, 우리가 몰랐던 그 때 그 시절 세종대왕
[카드뉴스]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기념, 우리가 몰랐던 그 때 그 시절 세종대왕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10.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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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스포츠경제=김민경 기자] 세종대왕은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민정음을 창조하고 정치·경제·문화 다방면에서 백성들을 위한 어진 정치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왕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위인이다. 

2018년은 세종대왕이 즉위하신지 600주년이 되는 해로 뜻깊은 해에 한글날을 맞이해 우리가 몰랐던 세종대왕에 대해 소개한다. 

◇ 우리는 세종대왕 얼굴을 모른다?

만원권의 지폐 속 혹은 광화문에 우뚝 선 세종대왕 동상의 얼굴은 진짜 세종대왕의 얼굴이 아니다. 세종대왕의 어진은 다수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임진왜란 등의 전란을 겪으며 전부 소실 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종대왕의 얼굴은 1973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은 화가 운보 김기창이 역사학자들의 의견과 기록,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그린 것이다.

◇ 세종대왕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세종대왕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신체활동보다는 글 읽기에 몰두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책을 읽자 아버지 태종이 독서를 금지했는데 병풍 뒤에 숨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결국 세종대왕은 지나치게 높은 학구열과 격무로 시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어 재위기간 32년 중 20년 동안 시각 장애를 가졌고 정사를 살피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독서광인데다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발생해 시력이 상실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노비에게 육아휴직을?

원래 관노비의 출산 휴가는 7일 정도였는데 세종대왕이 이를 터무니없이 짧다고 여겨 백일 간의 휴가를 줄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더러 출산이 가까워 일했다가 몸이 지쳐 집에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자 출산 전 30일부터는 일손을 놓도록 해주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종대왕은 남자 노비를 대상으로도 30일의 육아 휴직을 주었다. 이를 신하들이 반대하자 "그대의 집에는 그대를 대신해 부인을 보살펴줄 다른 이가 많지 아니한가"라며 꾸짖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세종대왕은 장애인, 아이, 노인 등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선진적인 복지 제도를 실시했다. 

◇ 신하들에게는 가혹했던 왕

독서광이었던 세종대왕은 토론의 달인이었으며 정책 회의를 할 때 준비를 안해 온 신하들을 하나하나 꾸짖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주요 관직의 공무원들은 부모상을 당해도 3년이 아니라 딱 100일간만 상을 지내고 바로 복직하라고 명하였고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황희가 수차례 고령을 이유로 사직서를 올렸으나 87세의 나이에 이를 때까지 사표를 절대 수락하지 않았다.

◇ 세종대왕은 뚱뚱했다?

세종대왕은 활쏘기와 말타기 대신 고기를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 했다. 그래서 비만과 당뇨에 시달렸다고 한다. 원래 예법에 따르면 상중에는 고기를 먹을 수 없는데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태종이 눈을 감기 전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이 3년 동안 고기를 끊으면 건강이 악화될까싶어 상중에도 꼭 고기를 먹도록 하라며 유언을 남겼다. 효심이 깊었던 세종대왕은 고기를 끊고 예를 갖췄으나 불과 두 달만에 금단현상으로 몸이 허약해져 어쩔 수 없이 다시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 세종대왕은 초가집에서 살았었다?

세종대왕은 가뭄이 계속되어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자 이를 자신의 부덕으로 여겨 신하들의 만류에도 경복궁 경회루 동쪽에 주춧돌을 쓰지 않고 억새풀로 지붕을 덮은 평범한 초가집을 세웠다. 세종대왕은 그 초가집에서 무려 2년 4개월 동안 기거하며 집무를 보고 잠을 잤다고 한다. 이를 염려한 신하들이 세종대왕 몰래 초가집 바닥에 짚더미를 깔았다가 이를 알고 크게 꾸짖었을 정도로 세종대왕은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