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편집자]  숨쉬고, 먹고, 걷고, 말하고... 공기의 존재처럼 일상적인 것이기에 당연한 거라고 믿는 행위들. 그러나 아파 본 사람들은 안다. 그런 행위들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충분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것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사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비교우위에 섰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 ‘스텝 바이 스텝’은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벤(파블로 폴리)의 재활과정을 그린다. 세상과 단절된 재활원에서의 삶,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능함이 불가능함으로 역전된 상황을 카메라는 벤의 시선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눈만 깜박인 채로 천장만 응시하는 모습, 손가락을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클로즈업 등 마비 장애인들의 현실을 디테일하게 그려나감으로써 관객들의 시선 역시 이들의 삶을 간접경험하게 만든다. 피상적으로 알았던 불편함은 단지 스크린을 통한 시각적 체험일 뿐인데도 상상 이상의 불행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재활원에서 만난 벤과 그의 친구들은 괴로워하거나 아파하지만은 않는다. 간호사가 대소변을 받아가길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농담을 건넨다. 잃어버린 몸의 균형감각 대신 소소한 유머러스함이 그들이 지탱하는 삶의 균형 감각이라도 되는 듯 영화는 모든 이들이 어둡고 우울한 공간일거라고 생각하는 재활원을 비관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또한 중간 중간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장면의 삽입은 색다른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처음엔 다소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재활원이라는 제한된 공간, 장애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제한된 신체감각을 음악을 도구로 하여 무한 확장시켜놓는다.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는 재활원 삶에 익숙해지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섞이며 재활 치료를 받는 벤의 일상을 묵묵히 따라간다. 뭔가 관객의 예상을 비틀어놓은 것 같은 스토리다. 장애를 조금씩 딛고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나 눈물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적인 문제에 보다 더 포커스를 맞춘다. 재활원 밖의 삶을 두려워하는 장애인들의 고민은 영화 속에서도 픽션이 아니다. 그런 과정을 겪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발화한 ‘그랜드 콥스 마라드’ 감독은 세상으로 나가는 장애인들을 편견 없이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감동과 눈물을 배제한 담백한 연출을 선보인 게 아닐까. 어쩌면 장애인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기대하는 건 감동 없이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의 불필요한 클리셰일지도 모른다. 

벤은 휠체어가 아닌 목발을 짚고 다시 농구장을 찾는다. 그렇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는 기대와 희망 역시 소란스럽게 그리지 않는다. 그 역시 담담하고 자연스럽다. 마지막 장면에서 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끝이 나는데, 그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들이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을 때 유난스런 시선과 응원이 아닌 그저 따뜻한 손 내밀어주기라면 어떨까? 티내지 않는 한결같은 관심 말이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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