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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이승훈 기자] 부적격자를 채용하는 등 채용비리가 불거진 금융감독원이 탈락한 지원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2부(오성우 부장판사)는 A씨가 금감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씨에게 손해배상금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채용비리를 저지른 기관·기업을 상대로 한 첫 배상 판결이다.

필기·면접 점수로는 탈락 대상이었던 B씨는 최고점을 받은 A씨와 차점자를 제치고 최종합격했다. A씨는 채용비리로 탈락했다며 금감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청년실업이 만연해 있는 현재 채용비리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채용 절차가 객관성·공정성을 상실한 채 자의적으로 운영될 경우 불이익을 받은 지원자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은 금전적 배상으로도 쉽게 회복하기 어렵다”고 질타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금감원의 금융공학 분야 신입 공채에서 필기시험과 2차례의 면접을 지원자 중 최고 점수로 통과했으나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반면 최종면접에 오른 3명 중 필기시험과 1·2차 면접 합산 점수가 가장 낮았던 B씨는 합격했다.

이후 감사원이 금감원의 채용비리 의혹을 감사하면서 A씨의 탈락과 B씨의 합격을 둘러싼 배경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지난해 9월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금감원은 당초 면접 계획에도 없던 지원자들의 평판(세평)을 조회해 이를 최종 평가에 반영했다. A씨를 비롯해 다른 직장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들에 대해 평판을 조회한 것이다. 하지만 A씨의 해당 직장은 재판 과정에서 “금감원 평판조회에 회신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반면 B씨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지방 학교를 졸업했다고 지원서에 기재해 합격에 유리한 '지방 인재'로 분류됐던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최종 합격했다. 채용공고에 의하면 지원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합격이 취소되는데도 금감원이 이를 무시한 것이다.

재판부는 “금감원은 공적인 성격이 강한 감독기관으로서 선망받는 직장이다. 채용 절차에 있어서 기대되는 객관성 및 공정성의 수준 또한 상대적으로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가 객관성·합리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려운 평판조회 결과만으로 자신의 노력에 대해 공정한 평가 기회를 박탈당해 느꼈을 상실감과 좌절감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의 채용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채용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됐다 해도 신체검사 등 추가 절차가 남아 있어 당연히 최종합격됐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이 나왔지만 금감원은 피해자 구제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송 결과를 살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고만 했다. B씨에 대해선 “감찰을 통해 부정채용자에 대한 징계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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