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연예계에서 빛나는 별로 오랜 시간을 견디기란(혹은 버티기란)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다. 배우 김하늘은 올해로 20년 차다. 김하늘은 이 무게를 이겨내며 한결 같은 자리를 유지했다. 30대의 끝자락에 내놓은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는 멜로퀸의 단단한 입지를 재확인시키고 있다. 김하늘은 이 영화에서 교통사고로 10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남자 석원(정우성)을 위해 헌신하는 여자 진영을 연기했다. 사랑 앞에서는 당당하고 과감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를 보며 흔들리는 모습을 표현하며 20년 차의 연기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5년 만의 영화 컴백인데, 왜 이 영화였나.

“일부러 작품을 찾은 것은 아니다. 어떤 캐릭터를 맡고 싶다는 당장 생각하지 않은 편이다. 액션을 해보고 싶다가도 정통 멜로를 하고 싶다로 마음이 바뀔 때가 많더라. 때에 따라 맞는 작품들을 선택했다.”

-‘나를 잊지 말아요’를 왜 선택했나.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나름대로 이미지를 그려본다. 이 영화는 컬러감을 느끼지 못했다. 흑백의 느낌을 받았다. 촬영을 시작해 인물이 들어가고 화면이 보여지자 색깔이 입혀졌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이야기의 흐름이 친절하지 않다.

“전개방식이 편하지는 않다. 때문에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때 흑백으로 보였던 것 같다. 독특한 구성이라 관객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 이후 컴백인데.

“사실 ‘블라인드’로 상을 받고, ‘너는 펫’ 개봉을 끝난 뒤라 촬영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작품도 인연이고 운명이라 원하는 타이밍에 만나지 못했다. 드라마를 끝낸 뒤 영화를 바로 만났는데 기다림이 길었다. 정우성 선배가 ‘신의 한수’와 ‘마담 뺑덕’을 촬영하느라 기다렸다. 내가 (정우성) 선배한테 겨울에 눈 올때 찍고 싶어요 라고 조른 적도 있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기다려줬나.

“좋아서. 영화 분위기에 매료됐다. 촬영장에 가고 싶은 답답함이 있었지만 놓고 싶지 않았다. 작품이 두어개 더 있었는데 방향이 ‘나를 잊지 말아요’로 흘러갔다. 이게 운명이고 인연이다.”

-극중 첫 장면에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 모습이 색달랐다.

“이윤정 감독이 진영의 눈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상처가 있는 여자이고 삶 자체가 평탄하지 않다는 영화적 의도 같았다. 영화가 미스터리가 가미돼 캐릭터를 소개하는데 있어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기억을 잃은 남자에게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관객에게는 석원이 진영을 첫눈에 보고 반하는 느낌인데,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할까 생각했다. 사실 진영은 석원한테 딱히 매력적으로 보일 의도가 아닌데 말이다. 이 감독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대본 연구는 어떻게 하나.

“머리 속으로 이미지를 그린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나만의 구조를 그린다. 예를 들자면 헤어스타일을 커트를 쳐서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그리거나 입술을 진하게 칠할까 등등 나를 대비해 상상한다. 미리 준비해야 현장에서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나와 달리 감독, 상대 배우와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진영 캐릭터는 어땠나. 감독과 배우 모두 공감했나.

“아니다. 서로 생각하는 지점이 다 달랐다. 나와 감독, 우성 선배 모두 달랐는데 후반 전개 방식에서는 내가 의견을 많이 냈다. 시나리오를 읽다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전화를 하는데 감독은 왠지 밤에 안잘거야라는 믿음이 있어 새벽에 전화를 자주 했다. 다행히 여성 감독이라 편하게 통화했다. 한번은 새벽 3시에 전화했다 밤을 새고 다음날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석원을 위해 헌신하는 진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한 친구가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라면 진영이처럼 못할거야 라고 문자를 했다. 내가 아니 나는 해 라고 답했더니 헐이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영화고, 캐릭터에 빠져있으니 현실에서도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공통의 상처를 가진 남녀의 접근 방식이 다르다.

“상처를 외면하는 사람과 마주하는 사람이 있는데 석원은 전자다. 나도 진영처럼 상처를 마주할 것 같다. 보기 싫고 듣기 싫은게 있지만 어떨 때는 차라리 마주하는 무게감이 가벼울 것 같다. 어쩌면 석원이 외면하지 않았으면 진영이 그러지 않았을 것도 같다.”

-진영은 내면이 강한 여자다, 김하늘은 어떤가.

“석원의 존재가 아기 같을 때가 있었다. 엄마가 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요즘 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는데 어떤 면은 굉장히 발달하고 강해졌지만 한쪽은 약하고 물렁하고 모자란 부분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생각을 해야 하는 시기인 것도 같다.”

▲ 이호형기자 leemario@sporbiz.co.kr

-결혼을 앞뒀기 때문인가.

“그것도 있고 나이 때문인 것도 같다. 여자한테는 숫자가 달라지는 의미가 크다. 새로운 상대를 만나니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집중하는 상대를 만나니 나한테 더 집중하게 되더라.”

-극중 천주교 세례명 세실리아로도 불렸다.

“실제 세례명이다. 프로듀서랑 얘기를 하다 마침 내가 신자이다 보니 실제 세례명을 썼다.”

-극중 기억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추억)이 있나.

“고등학교 때 되게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한번은 친구와 폭우처럼 쏟아지는 소나기를 쫄딱 맞으며 깔깔 웃으며 집까지 뛰어갔었다. 당시 느낌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그 때의 친구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게 행복하다.가끔 친구를 만나러 동네에 가면 학교에 가보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진영이 석원과 옥상에 올라 ‘안녕’하는 장면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대사와 표정으로는 아프지 않게 해야 했다.”

-욕조신도 인상적인데.

“하하하 그 장면은 우성 선배가 제안했다. 나는 오그라드는데 우성 선배는 내가 지워줄게 라는 대사를 좋아했다.”

-멜로퀸 로코퀸이다.

“퀸, 여왕으로 불리는게 좋다. 나만 로코퀸이 아니라 타이틀에 대한 부담도 없다.”

-새해 소망은.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고, 대한민국 최고의 케미 커플 호칭이 욕심난다.”

이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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