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최지윤 기자] “미국에 그레고리 펙, 프랑스에 알랭 들롱이 있다면 우리에겐 배우 신성일이 있다.”

부산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신성일 회고전을 맞아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서 박찬욱 감독은 고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신성일은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960년 ‘로맨스 빠빠’(감독 신상옥)로 데뷔 후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1960년대 최고의 스타로 인기를 누렸다. 2013년 ‘야관문: 욕망의 꽃’(감독 임경수)의 주연을 맡았으며, 폐암 투병 중에도 지난달 제23회 부산국제 영화제에 참석 “내년에 인생작을 올릴 것”이라며 의지를 드러냈다. 신성일의 숨은 명작을 살펴봤다.

‘안개’(1967)
신성일과 가장 많은 작품을 한 여배우는 윤정희다. 무려 99편에 함께 출연했다. 영화 ‘안개’에서는 신성일과 윤정희의 아름다우면서 파격적인 러브신을 엿볼 수 있다.  ‘안개’는 서울에서 제약회사 사장 딸과 결혼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남자가 고향 무진을 방문, 자신을 서울로 데려다 달라는 여자를 만나 갈등하는 이야기.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것으로 김수용 감독의 대표작이다. 과거와 현재 혹은 회상과 현실의 장면을 유연하게 교차한 점이 인상적이다.
 
‘여’(1968)
영화 ‘여’는 신성일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신성일은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땐 너무 바빠서 내가 주연을 맡은 영화도 못 볼 정도였다”며 “지난주에는 ‘여’를 봤다. 이번 주는 요양병원에서 ‘가로수의 합창’(감독 강대진)을, 다음 주는 ‘가버린 사랑’(감독 김기)을 틀어준다”고 밝혔다. 신성일은 1960~70년대를 대표하는 미남 배우다. 당시 174cm의 큰 키에 또렷한 이목구비와 강렬한 눈빛으로 많은 여성들을 설레게 했다. 김기영 유현목 정진우 감독이 옴니버스식으로 제작한 ‘여’(女)는 신성일이 최은희, 김지미, 문희 등 세 여인과 겪는 기묘한 이야기를 담았다. 신성일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세 명과 차례로 호흡을 맞추며 정사신 등도 소화했다.
 
‘휴일’(1968)
‘휴일’은 일요일에 만난 가난한 젊은 연인의 하루 이야기. 제작 당시 개봉을 하지 못해 잊혀 졌지만, 후일 발견 돼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신성일은 혁명의 좌절 이후 정치적 냉소의 분위기에서 무기력한 중년이 돼 가는 인텔리 허욱 역을 맡아 열연했다. 신성일이 연기한 빈털터리 청년 허욱을 통해 당대의 허무와 절망을 대표했다. 나른한 표정과 결단성 결여를 섬세하게 표현해 호평 받았다.
 
‘태양을 닮은 소녀’(1974)
이만희 감독의 ‘태양을 닮은 소녀’는 우연히 만난 살인자와 재수생 여인이 함께 보내는 하루를 그린 멜로 영화. 제목처럼 밝고 순수한 소녀로 인해 깊은 죄의식으로부터 구원받는 중년남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문숙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신중현이 작사 작곡한 ‘미인’이 영화 주제가로 사용됐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문숙은 이 작품으로 제1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신성일은 3년 전부터 준비한 영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ㆍ가제)에서 “문숙의 자연주의적인 이미지가 참 마음에 든다”며 다시 호흡 맞추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길소뜸’(1985)
‘길소뜸’에서는 중년의 신성일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살게 된 남자와 여자는 TV 프로그램 ‘이산가족 찾기’를 통해 잃어버린 아들을 찾지만 그들이 살아야 할 현실은 아들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신성일과 김지미가 자신들의 목소리로 연기했으며, 임권택 감독은 분단이 낳은 비극을 잘 보여줬다. 호평과 함께 10만 4796명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제3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제22회 시카고 영화제에서 게츠세계영화상을 받았다.

최지윤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