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경상·충청 매매가 하락…전세·대출금 높은 '깡통주택' 증가
'역전세난' 수도권서도 나타나…대응책 세워야
부동산/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지영 기자] 경상·충청 등 일부 지역에서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주세’, ‘깡통전세’가 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2일 부동산업계와 국토교통부, 한국감정원 등에 따르면 최근 경상·충청을 중심으로 매매가격이 떨어져 전세와 대출금이 매매 시세보다 높은 깡통주택이 속출하고 있다. 전세 계약금이 최근 매매가격보다 높아 재계약을 하거나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세입자가 전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도 증가하고 있다.

경남 김해 장유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를 살고 있는 김모(50)씨는 전세 만기가 지나도록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2015년 1억5000만원에 전세를 들었는데 집주인이 "현재 집값이 전세 보증금보다 낮아서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며 버티고 있어서다. 이 아파트의 현재 매매가격은 1억2500만원 선으로 2년 전 김씨가 계약한 전세금보다 2500만원이 낮다. 집주인이 당장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상황인 것.

김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현재 전세가인 1억1000만원에 전세 재계약을 하려고 해도 집주인이 4000만원을 내줘야 하는데 돈이 없다며 못 준다고 한다"며 "집주인은 소송을 하던지 알아서 하라며 막무가내"라며 답답해하고 있다.

창원시도 현재 매매가격이 2년 전 전셋값 밑으로 떨어지면서 재계약 분쟁이 늘고 있다.

성산구 대방동 S아파트 전용면적 84.9㎡는 2년 전 전세가 2억∼2억2000만원에 계약됐는데 현재 매매가격이 이보다 평균 4000만원 낮은 1억6000만∼1억8000만원으로 하락했다. 2년 전 매매가격이 2억3000만∼2억6000만원 선이었는데 그간 8000만∼1억원 이상 떨어지면서 전셋값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주택형의 전셋값도 현재 1억4000만∼1억5000만원으로 2년 전보다 내려 집주인이 집을 팔지 않고 전세를 재계약하려면 6000만∼7000만원을 세입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전용 48㎡도 2년 전 전세계약이 7500만∼9000만원에 계약됐는데 현재 매매가는 6000∼7000만원에 불과하다. 현재 전셋값도 매매가와 비슷한 6000만∼7000만원 선이어서, 2년 전 맺은 전세를 재계약하려면 집주인이 1500만∼2000만원 이상 내줘야 한다.

최근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내린 경남 거제시는 지난 2년간 아파트값이 28.32% 떨어지는 동안 전셋값은 33.31%나 급락해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이 더 심각하다.

거제시 고현동 D아파트 전용 59.76㎡는 2년 전 전셋값이 1억3000만∼1억4000만원인데 현재 매매가는 8000만∼1억원에 불과하다.

현재 전셋값도 6000만∼7000만원으로 2년 전 대비 절반 수준이다. 전세 만기가 된 집주인은 집을 팔지 않으면 7000만원, 집을 팔아도 4000만원 이상의 전세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거제시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그나마 자금 여유가 있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내주고 있지만, 돈이 없는 경우는 집을 팔아도 2년 전 전세금을 충당할 수 없어 문제"라며 "최근 집이 잘 안팔리면서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법적 분쟁도 늘어나는 등 고통이 크다"고 말했다.

경북과 충청권 곳곳에서도 역전세난 문제가 심각하다.

구미 옥계동 K아파트 전용 59.85㎡는 2년 전 전셋값이 6100만∼7100만원 선이었는데 최근 실거래 매매가는 4000만∼5000만원 선에 그친다.

청주 상당구 용암동 F아파트 전용 51.9㎡는 2년 전 전셋값이 1억3500만∼1억4000만원인데, 현재 매매가격은 1억2800만∼1억3000만원으로 2년 전 전셋값보다 내렸다.

이처럼 지방의 깡통주택, 깡통 전세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입주물량 증가에 있다. 2010년 이후 지속된 수도권 주택시장 침체로 2014~2016년에 걸쳐 지방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 분양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부터 이들 지역의 입주 물량이 급격하게 늘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114 조사 결과 경상남도의 경우 지난해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4만여 가구로 2010년대 초반 연평균 6000~2만 세대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큰 폭으로 증가했다.

충청지역 역시 '물량폭탄'이 이어졌다. 충남의 경우 새아파트 입주 물량이 2015년까지 연평균 5000~1만2000가구였으나 지난 2016년에는 2만2500가구가 새로 들어섰다. 이후 2017년 2만4500가구, 2018년 2만6000가구가 새로 분양됐다. 충북 역시 2010년 초반 연평균 5000가구 미만이던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올해 2만2000여가구로 급증했다.

입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데 비해 수요는 많지 않다보니 새 아파트에 입주 하려 해도 기존 아파트값이 하락하거나 팔리지 않아 갈 수 없어 미분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수자가 이런 상황을 악용할 경우, 전세금을 떼이거나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세입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지방 역전세난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이지만 그간 많이 올랐던 집값이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부가 손 쓸 방법이 별로 없다”며 “아직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특례제도 외 다른 지원방안은 고려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 역전세난이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은행 부동사투자자문센터 안명숙 부장은 “과도한 집값 하락 지역은 세입자 등 선의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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