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위기 감지 'J노믹스'에 반기든 국토부, 현대차 GBC 나홀로 반대
김현미 국토부 장관 "GBC 강남구 부동산 가격 흔든다"
다음 달 수도권정비심의위서 GBC 운명 결정
현대차, 눈덩이 처럼 쌓이는 유무형의 손실
정부의 적극적 개입 촉구 목소리 커져
현대자동차의 숙원 사업인 GBC 건립 사업이 국토교통부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숙원 사업인 서울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이하 GBC) 건립 사업이 정부 부처 간 이견으로 삐걱 거리고 있다. 사실상 연내 착공은 물 건너간 상황에서 GBC 사업의 심의·의결권을 쥐고 있는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GBC 지원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등 유관 부처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 GBC 사업은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가 2014년 10조5500억 원의 현금을 들여 옛 한국전력 부지를 매입하며 시작됐다. 현대차는 부지매입 이듬해인 2015년 건립계획안을 내놓은 뒤 2016년 12월 인허가를 받아 지난해 1월부터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과 인근 봉은사와 일조권 침해 분쟁 등 뜻하지 않은 돌발변수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게 GBC 사업은 4년 째 표류하고 있다. 현대차의 숙원인 GBC 사업을 둘러싼 저간의 사정들을 살펴봤다.

◆위기 감지 'J노믹스'에 반기든 국토부

지난달 24일 문재인 정부의 경제 관련 장관들이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다.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이라는 주제로 18개 정부 부처 장·차관 및 청와대 수석 3명이 자리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의 핵심은 단연 경기 회복이었다.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는 최근의 경기 불황의 원인으로 '지속되고 있는 투자 부진'을 꼽았다. 정부는 '수출·소비 등은 견조하나 투자가 예상보다 급속히 위축되면서 경제활력이 떨어지고 고용창출력이 저하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1월 10%대였던 설비·건설투자 추이는 올 상반기 마이너스대로 추락했다. 특히 설비투자 부문은 마이너스 20%대에 육박할 정도로 곤두박질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고용 창출과 직결된 투자 활성화를 위해 이날 회의에서 105층 규모의 현대차 GBC 지원 안건을 상정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 함께 J노믹스 부동산 관련 정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역시 찬성 의견을 밝혔다.

순탄할 거 같았던 GBC 지원안은 국토부라는 예상치 못했던 암초에 걸려 좌초됐다. 김 장관은 GBC 사업이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 불안을 조장한다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반면 김 수석은 현재 부동산 가격에 GBC 개발 효과가 반영돼 있다고 맞불을 놨다. J노믹스 부동산 정책의 쌍두마차인 김 장관과 김 수석이 GBC 지원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GBC 지원안은 다음 달(12월) 열리는 국토부 산하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에서 결론을 낸다는 절충안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경제 관련 장관 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된 현대차의 GBC 건립 지원안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현대차 vs 국토부, 이견 큰 GBC 연내 결론날까

GBC 사업 추진에 있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국토부다. 국토부는 GBC 사업 승인에 있어 인구유입 저감대책 및 설계변경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국토부는 현재 계획대로 GBC 사업이 진행될 경우 지나치게 많은 인구유입과 그에 따른 부동산 시장 교란을 우려하고 있다.

인구 유입을 낮추고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국토부는 GBC 내 전시 및 상업시설을 축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전시 및 상업시설이 줄어들면 강남구 일대 부동산과 인구유입에 미치는 파장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국토부의 계산이다. 사실상의 설계변경인 셈이다.

현대차는 공사비 규모만 3조 원이 넘는 105층짜리 GBC 사업을 추진하면 256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122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GBC 사업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위축된 건설 및 설비 투자가 살아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지만 민감한 시기인 만큼 조심스러운 행보다. 현대차 관계자는 "GBC 사업과 관련해 회사 차원의 견해를 밝히기 어렵다"면서 "정부가 인·허가 문제와 관련해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이제 공은 다음 달 열리는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로 넘어갔다. GBC 건립은 수도권정비위원회 허가를 받은 뒤 6개월 이내에 서울시 건축허가를 받아야 추진할 수 있다. 관계부처 장관 회의에서 연내 해결이라는 절충안을 마련한 만큼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 결과가 주목 된다.

◆표류하는 GBC, 불어나는 유무형의 손실

GBC 사업이 4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현대차의 유무형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먼저 금융비용 측면에서 재계와 금융계는 현대차가 2015년부터 3년 동안 매년 2000억~3000억 원씩 1조 원에 가까운 금융이자를 날렸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2014년 현금 10조5500억 원을 들여 옛 한국전력 부지를 낙찰받았다. 땅값은 현대차가 55%, 현대모비스 25%, 기아차 20%의 비율로 분담했다. 여기에 취득세 4%, 농어촌특별세(농특세)와 교육세 0.6%, 지방세 등 세금만 수천억 원을 냈다. 또 서울시가 한국전력 부지의 미래가치를 반영해 요구한 공공기여금 1조7000억 원을 냈다.

무형의 손실은 이 보다 더 크다. 현대차는 GBC 입주에 맞춰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을 연구개발(R&D) 거점으로 재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2020년까지 연구원 3000명을 더 채용해 1만2000명으로 늘리고, 미래차 시대를 대비한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2021년 입주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R&D 거점 계획도 꼬이고 있다.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산재된 15개 계열사를 한 곳으로 모아 시너지 효과를 누리겠다는 청사진도 빛이 바래고 있다.

지지부진한 GBC 사업과 올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한 부진한 실적 그리고 녹록지 않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그룹 지배구조 개편 등 산적한 악재에 현대차를 바라보는 재계 안팎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차에 대해 매도까지는 아니지만 쉽사리 매수 의견을 전하지도 않는다"라면서 "현대차의 실적 부진과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 마무리 되지 못한 점 그리고 답보 상태인 GBC 건설이 등이 발목을 잡는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가 추진 중인 GBC(사진) 건립 사업이 국토교통부의 반대 속에 난항에 빠졌다. 연합뉴스

◆GBC 인·허가 난맥, 정부가 풀어야

GBC 인·허가 문제에 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7월20일 수도권정비위원회의 GBC 승인 보류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속한 GBC 인·허가를 촉구하는 청원이 게시됐다. 'GBC 허가 빨리 내주세요'라는 제하의 청원에서 게시자는 '자금 손실까지 감수하며 GBC 승인에 사활을 건 건설사들의 하청업체 그리고 주변 상권 상인들이 수 만명"이라고읍소했다. 이어 8월31일 'GBC 조속한 착공을 요청드립니다'라는 청원 글의 게시자는 "강남집값 걱정하는 사이 200만 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현대·기아차의 실적은 참담한 수준까지 떨어졌다"면서 "GBC 착공으로 건설업, 철강 등 관련 산업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는 것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GBC의 빠른 승인을 청원했다.

한전부지 매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정부가 결자해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현대차의 10조5500억 원을 수혈 받은 '공룡 공기업' 한전은 이 자금을 종자돈으로 활용해 경영 부실에서 벗어나 투자를 단행할 여력을 확보했다. 한전부지 매각 대금으로 한전은 전남 나주에 투자를 단행하고 친환경 에너지 관련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며 지역 경제를 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전은 전남 나주혁신도시를 에너지 특화지역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경영 부실에 처한 공기업에 자금이 이전돼 사회적 확산 효과가 컸던 것에 비해 투자 4년이 넘도록 건물 착공에 대한 허가조차 내주지 않는 정부 처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집값 상승에 대한 염려가 큰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 기업의 사운이 달리 사업의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끌 일은 아니다"라면서 "현대차그룹이 여러모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GBC로 숨통을 틔어 줘야 돈이 돌아가는 구조로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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