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엘리엇, 2014년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유도

엘리엇, 삼성그룹 해체 시도

엘리엇,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 압박 강도 높여

현대차 '무대응' 원칙 고수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은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이 높다. 폴 싱어 파운데이션 화면 캡처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썩어가는 시체나 쪼아 먹는 독수리.(vulture·벌처)"

2014년 7월, 국가부도 사태를 앞둔 아르헨티나 경제 관료들은 채무 조정 협상을 위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간부들과 만났다. 협상 결렬 후 아르헨티나 관료들은 울분을 토하며 엘리엇을 향해 '인간쓰레기(scum)'라고 칭했다. 반면 엘리엇의 창업자이자 수장인 폴 싱어 회장은 동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아르헨티나를 향해 "시장 규칙도 거부하는 '돌팔이(charlatans·샬라탄스)"라고 무시했다. 기업을 넘어 국가까지 사냥하는 엘리엇의 민낯은 2014년 8월7일자 '블룸버그 비즈니스'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후 엘리엇은 '시체를 뜯어 먹는 탐욕스러운 독수리'라는 뜻의 '벌처'로 불리기도 한다.

2014년 국가부도 당시 엘리엇은 아르헨티나의 채무조정 요구를 거절했다. pixabay.com

◆아르헨티나를 국가 부도로 몰아 넣은 엘리엇

아르헨티나는 2014년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가 사들인 아르헨티나 국채가 문제가 됐다. 국채는 국가가 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증서다. 예컨데 5만 원짜리 국채에 만기 10년, 10만 원이라고 표시돼 있다면 국가는 국채를 매입한 개인이나 기관에게 10년 뒤에 10만 원을 갚는다. 한 마디로 국가가 개인이나 기관을 상대로 돈을 빌리면서 내주는 일종의 차용증이라 할 수 있다.

국채의 가격은 발행 국가의 재정이 악화돼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 급락한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950억 달러(한화 약 108조 원) 규모의 국가부도를 냈다. 당연히 국채 가격은 바닥을 쳤다. 아르헨티나는 자국의 채권을 매입한 뒤 국외 투자자들과 국제 협상을 벌여 채무의 70% 내외를 탕감 받았다. 10만 원을 받아야 하는 채권자가 3만 원으로 빚을 깎아 준 셈이다.

하지만 엘리엇은 달랐다. 엘리엇을 비롯한 헤지펀드는 아르헨티나 국가부도 전후로 폭락한 국채를 대거 매입했다. 엘리엇이 매입한 아르헨티나 국채의 액면가는 6억3000만 달러(약 7200억 원)다. 국채에 적힌 만기일에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6억3000만 달러를 받는다. 엘리엇은 액면가 6억3000만 달러의 아르헨티나 국채를 단돈 4800만 달러(약 540억 원)라는 헐값에 샀다. 그럼에도 엘리엇은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여기에 미국 법원에 소송도 제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엘리엇 등이 포함된 헤지펀드들이 요구하는 15억 달러(약 1700억 원)를 갚기 전에 채무 조정된 다른 빚을 상환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일종의 '알박기'다. 2014년 6월 미국 대법원은 엘리엇 등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줬다. 아르헨티나로서는 난감한 판결이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에게 액면가대로 돈을 돌려주면 다른 채무자들에게도 그래야 한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2001년 이후 13년 만에 또다시 국가부도를 맞았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보다 더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국가를 상대로도 똑같은 방법을 썼다. 콩고와 페루가 좋은 예다. 엘리엇은 국가부도 상태인 나라의 국채를 싸게 사들인 후 해당 국가가 국제기구나 강대국의 원조금(혹은 물품)을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국제사회의 원조가 도착하면 엘리엇은 국채를 내밀어 전액 상환을 요구하고 관련 소송을 제기한다. 가난한 나라가 이를 거부하면 채권자 자격으로 그 나라의 무역 및 금융거래를 동결한다. 한 국가의 경제시스템 전체를 '볼모'로 잡고 흔드는 셈이다. 동결을 풀어주는 댓가는 전액 상환이다. 엘리엇은 이런 방법으로 수백 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0년대 말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탈출 계획을 짰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대통령 전용기가 엘리엇에 압류된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페루를 떠나며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명령을 내린다. "엘리엇에 5800만 달러(약 657억 원)를 상환하라." 엘리엇은 페루 국채를 1140만 달러(약 129억 원)에 매입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미국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거액의 대출금 지원을 결정했다. 연합뉴스

◆"미국 자동차 산업 살리고 싶으면 혈세를 바쳐라"는 엘리엇

엘리엇은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이다.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는 좋은 사례다. GM과 크라이슬러 등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델파이는 2005년 '파산 보호' 신청을 한다. 이 무렵 엘리엇 등 헤지펀드는 델파이의 회사채를 싼값으로 매집했다. 회사채는 회사가 돈을 빌려 오면서 발행하는 채권이다. 국채와 마찬가지로 회사채 역시 회사의 재정이 나빠지고 상환 가능성이 낮아지면 가격이 폭락한다. 엘리엇은 델파이의 회사채 중 대부분을 액면가의 20% 수준으로 사들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렸다. 2009년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거액의 '혈세'를 대출금 형식으로 지원했다. GM과 크라이슬러를 살리려면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델파이도 살려야 했다. 파산 위기에 몰렸던 델파이의 회사채를 대량 매집한 엘리엇은 미국 정부의 이런 약점을 파고 들었다. 델파이를 살리기 위해 미국 정부는 채권자로 경영진까지 장악했던 헤지펀드들과 협상을 벌였다. 미국 정부를 대신해 협상에 나섰던 사모펀드 운영자 스티븐 레트너는 이후 회고록에서 당시를 이렇게 서술했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이 미국 자동차 산업을 인질로 수억 달러 규모의 공공자금을 요구했고, 나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엘리엇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델파이를 통째로 집어 삼켰다. 엘리엇 등 헤지펀드는 자신들이 가진 델파이 회사채를 주식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회사채의 가치를 높게 산정하는 반면 델파이 주식 발행가를 낮게 책정한 뒤 교환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헤지펀드들은 델파이 주식을 1주당 67센트의 공짜와 다름 없는 가격으로 사들였다. 이렇게 엘리엇 등 헤지펀드는 종전 채권자에서 주인인 대주주로 변신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삼성과 현대차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을 향해 검은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자동차·반도체로 향하는 엘리엇의 '검은 발톱'

엘리엇은 '검은 발톱'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근간인 자동차와 반도체 및 전자. 대표기업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이 먹엇감이다. 엘리엇은 13일(한국시간)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이하 현대차그룹) 이사진에게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초과 자본금의 주주 환원 등을 요구했다. 엘리엇은 "과거 잉여현금흐름의 불투명한 운용으로 상당한 자본이 비영업용 자산에 묶여 있다"며 "주주환원 수준이 업계 기준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의 사업으로 발생한 실제 현금 흐름이 왜곡되거나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엘리엇은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이 철회되고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업구조 개편을 진전하기 위한 어떤 실질적 소통도 하고 있지 않다"며 "각 계열사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추가 선임하고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협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초과자본금을 환원하고 낮게 평가된 현재 가치를 고려해 자사주 매입방안을 우선 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엘리엇은 13조 원 규모의 초과자본을 주주 이익을 위해 환원하라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무대응을 원칙으로 삼았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주주 이익을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고 앞으로도 시행할 것"이라면서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 요구에 일일이 대응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삼성을 타깃으로 삼은 바 있다. 2015년 5월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을 선언했다. 합병 비율은 '1대 0.35'다. 제일모직 주주는 주식 100주를 신생 합병회사 주식 100주로 바꾸게 되며 삼성물산 주주는 100주로 합병회사 주식 35주를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제일모직의 절대적 대주주인 삼성 일가(합병 전 기준 42%·계열사까지 합치면 50.7%)는 합병회사와 합병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결국 합병의 목적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이룰 수 있게 된다.

2015년 6월4일 복병이 나타났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했다고 통보했다. 이후 엘리엇은 '합병 비율'을 이유로 딴지를 걸었다. '합병 조건이 공정하지 않아 주주 이익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자산'으로 시비를 걸었다. 자산총액(기업이 보유한 토지, 공장, 시설 등의 가치)으로 보면 삼성물산이 29조5000억 원으로 9조5000억 원인 제일모직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합병 비율 0.35는 불공정하며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했다. 동시에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현물배당(현금이 아닌 삼성전자 주식 등 주식으로 주주에게 지급)하자며 정관 개정도 요구했다. 사실상 삼성그룹을 해체하려는 시도다.

엘리엇의 주장이 얼핏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주주에게 가장 중요한 건 회사가 자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산을 활용해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리고 이를 주주에게 돌려주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자산이 많아도 수익을 못 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적은 자산으로도 큰 수익을 내는 기업도 있다. 기업평가에서 주가가 중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산 규모가 다른 회사의 합병 과정에서 주가나 시세 등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엘리엇의 주장에는 삼성그룹의 미래나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 엘리엇의 수익 극대화를 위한 그럴듯한 '구실'만 가득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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