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2018년 고교졸업생 10명 중 7명 대학진학
대학생 36% "졸업장 필요해서" 진학

[한스경제=양인정·박재형 기자]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된 국어 영역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높은 난이도를 보였던 이번 수능에 많은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향후 입시 전략을 어떻게 수립해야할지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수능’은 지나갔지만 ‘입시’는 계속 된다. 수능이 끝난 첫 주말이었던 17~18일 양일간 서울 시내 주요 대학 곳곳에서는 논술전형 시험이 치러졌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18년 고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은 69.7%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16년 온라인 채용포털 서비스업체 인크루트가 MBC다큐스페셜팀과 함께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학생 36%가 ‘취업 등의 이유로 대학 졸업장이 필요해서’ 대학에 진학했다고 답했다.

대다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으로 향하지만 ‘지성의 요람’이라 불리던 대학은 본래 목적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잘먹고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기능과 자격을 갖추려 대학으로 가고 명목상으로는 선택인 대학교육은 현실적으로 필수가 됐다. 그렇다면 꼭 대학을 졸업해야지만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것일까.

서울의 모 대학 입시설명회에 참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모습./사진=연합뉴스

◆재계부터 정계까지...다양한 ‘고졸신화’

서울 용산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무려 36년 동안 세탁기에 인생을 걸며 이른바 '세탁기 박사'로 통하는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은 재계 고졸 신화의 '대명사'로 통한다. 조 부사장은 용산공고 출신으로 LG전자 부회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적 인물이자 세계 1등 세탁기 신화를 만든 업계 최고의 전문가로 예우 받고 있다.

1976년 9월 우수장학생 자격으로 LG에 입사한 조 부회장은 당시만 해도 가장 인기가 높았던 선풍기 대신 세탁기 설계실을 택하며 세탁기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LG전자의 세탁기 사업에 몸담으며 혁신적인 제품들을 잇따라 내놓아 국내 세탁기 발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3년에는 사장 승진과 함께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장을 맡으며 세탁기를 포함한 냉장고, 에어컨 등 생활가전 사업 전반을 책임졌고 2016년에는 국외 진출을 위해 미국의 프리미엄 빌트인 시장을 겨냥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며 오랜 기간 LG전자의 도약을 이끌어 왔다.

재계뿐만이 아니다. 정계에서도 학벌주의를 뚫고 이름을 떨친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정치인이 고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목포 상업고등학교와 부산 상업고등학교가 이들의 최종학력이었다.

이들은 학력 문제로 정치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 언론사가 “김대중 대통령이 학력 콤플렉스가 있어 책 자랑을 했다”고 보도한 것이나 지난 2003년 검사들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노 대통령이 83학번이다. 저도 83학번인데 동기생이 대통령이 되셨다”라고 한 말도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그것은 모두 대학을 가지 않은 대통령을 학벌주의 시각으로 재단한 말이었다.

두 전 대통령이 실제로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학을 안 간 이들의 정치적 업적이 작다고 그 누구도 폄훼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이들은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고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꼽혔다. 두 대통령은 한국 정치의 민주화와 남북평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학벌주의에 함몰되지 않았던 이들의 정치적 이력에는 명문대를 나온 다른 정치인들과 구분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뚜렷한 목표 의식과 신념이었다. 그 목표 의식과 신념에 한국사회의 명문대 출신 지성인들과 엘리트들이 이들 곁으로 집결했다.

오늘날 대학이라는 학벌과 연계해 두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평가하는 이들은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은 학벌을 뛰어넘는 큰 목표 의식과 신념만을 기록할 뿐이다.

◆ 대학 나오지 않아도...학벌보단 실력이 우선인 직업들

지난 1999년 프로게이머라는 명칭이 생기고 스타크래프트 게이머 '쌈장' 이기석이 CF에 출연하는 등 게임업계에 큰 붐이 일었다. 이후 임요한, 이윤열, 홍진호, 기욤 패트리, 김정민 등 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인기를 끌었다.

2001년 초등학교 남학생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위가 프로게이머였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아서'가 프로게이머를 선택한 이유였다.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은 그 시대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1인 크리에이터, 일명 유튜버가 장래희망 직업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유튜버에게 학력은 중요하지 않다. 카메라가 있는 곳이 바로 직장이다. 인기 유튜버 '대도서관'(본명 나동현)은 고졸이다. 1인 미디어의 선구자라 불리는 대도서관은 지난 7월에만 약 64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지난해 연봉은 17억 원이었다. 대도서관은 O tvN '어쩌다 어른'에서 "재능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재능을 누구에게 어떻게 팔지가 중요하다“라며 "1인 미디어는 지구 반대편까지 재능을 알릴 수 있는 유통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인기 유튜버 '대도서관'은 고졸이지만 지난해 1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O tvN '어쩌다 어른'에서 밝혔다./사진= O tvN '어쩌다 어른' 방송 캡처

유튜버 JM(본명 유제민)도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다. JM은 유튜브에서 IT기기 등 제품리뷰를 올리거나 여행 등 다양한 분야를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JM의 이 영상들은 24만 9400여명(18일 기준)의 구독자가 시청하며 유익한 정보나 즐거움을 얻고 있다.

리뷰왕 '김리뷰'는 페이스북 팔로워만 46만 여명이다. 김리뷰는 대학을 중퇴하고 취미로 쓴 글이 이슈가 되면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됐다.

◆대학이 진정 의미있는 곳이 되려면

지난해 11월10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글이 게재돼 논란이 됐다. 게시자는 "학벌주의가 심해져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더 대접받았으면 좋겠다"며 "아예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군이 분류되면 더 좋겠다"고 주장했다.

해당 게시물은 학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과 함께 성공을 위한 통행증으로 굳어진 '학벌지상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학벌은 정말로 실력을 넘어설 수 있을까. 결론은 '아니다'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학이란 최고의 지성인이 모인 곳이다. 국가장래를 위한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필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대학은 ‘상아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기초과학, 인문학 등 연구와 교육을 통해 지속적인 사회 발전을 이끈다.

이런 대학이 학생 개개인에게 진정 의미 있는 곳이 되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이 유익한지 무익한지는 대학에 진학하고 다니는 당사자에게 달려있다. 대학에서 ‘진정한 실력’을 쌓는 것은 뚜렷한 목적과 자기 결정을 통한 진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대학 생활을 통해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은 학생들 본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이 ‘좋은 실력을 가진 것’으로 대변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지난 2016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새내기 오리엔테이션에서 새내기들이 활짝 웃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시대의 지성들 또한 대학에 목 멘 기형적인 사회구조를 바로 잡아야 제2, 제3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대학의 존재와 의의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6일 현 한국교원교육학회 회장이자 광주 교육대 총장을 역임한 박남기 교수는 ‘안민정책포럼’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학벌주의 타파를 역설했다.

'학벌=노력'이라는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 박 교수는 대입전쟁과 교육 대물림 심화, 중·고등학교의 입시 위주 교육, 이와 관련한 사교육비 과다 지출, 학생들의 행복도 저하, 학교 폭력 증가 등 교육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국가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교수는 대입전쟁으로 불리는 학벌지상주의 아래에서는 4차산업 혁명시대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내기 어려우며 학벌주의, 더 나아가 실력주의라는 '허상'에서 벗어난 인간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실력(학벌)과 직업 배분 사이의 연결고리를 유지하되 직업과 보상 사이의 연결 고리를 느슨하게 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사회문화적 보완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양인정기자 박대웅기자 권혁기기자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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