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김승규, 호주전 불안한 공 처리
벤투호, '골키퍼 빌드업' 숙제
17일 호주와 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한 골키퍼 김승규가 불안한 빌드업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스포츠경제=심재희 기자] 축구는 '진화의 스포츠'다. 흔히 말하는 전형과 전술이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 3-5-2나 4-4-2 등 숫자로 표현된 전형 싸움은 이제 아주 작은 공간까지 지배하기 위한 전쟁으로 바뀌었다. 선수들은 더 많이 뛰고 쫓으면서 유리한 공간을 잡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흔히 말하는 '미친 전방 압박'이 재미를 보자 탈압박이 강조됐다. 그래서 더 중요해진 개념이 '빌드업'이다. 수비쪽부터 패스를 활용해 상대 압박을 잘 피하면서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이 강팀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는 집을 지어 올라나가는 시작점, 즉 '빌드업'의 출발을 골키퍼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 후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빌드업'이다. 현재까진 절반의 성공으로 비친다. 기본기가 좋은 젊은 선수들이 빌드업 개념을 잘 알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압박의 속도와 호흡이 완벽에 가까운 강팀들을 상대로도 깔끔한 빌드업을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남미 강호' 칠레의 압박에 꽤 고전했던 모습이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벤투호의 빌드업이 여전히 불안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골키퍼에 있다. 골키퍼의 공 처리나 패스가 부정확해 공격의 기본 틀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걷어내기 급급한 부정확한 롱 킥과 불안한 퍼스트 터치 등이 여러 차례 나왔다. 17일(한국 시각) 호주 브리즈번에서 치른 호주와 평가전에서도 골키퍼 빌드업은 낙제점이었다.

이날 골키퍼 장갑을 낀 김승규는 발 밑에 공을 두면 뭔가 자신감이 떨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기본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넓게 잡지 못해 심리적으로 쫓기는 것 같은 인상을 자주 줬다. 마음이 급해지니 불안하게 공을 처리했고, 부정확한 킥으로 빌드업의 흐름을 끊었다. 이런 약점을 노출하자 호주 공격수들은 더 강한 압박으로 한국의 공격 전개의 시작점을 흔들어놨다.

김승규 개인때문에 나온 문제가 아니다. 물론 김승규가 좀 더 쉽게 공을 처리하고 발 밑까지 부드러웠다면 좋겠지만, 전체 호흡 불일치 속에서 안정된 빌드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골키퍼가 공을 잡고 공격 전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선수들이 함께 도와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이 김승규와 공간을 효율적으로 나누지 못했다. 수비수들은 옆으로 일정 간격을 잘 벌려 골키퍼가 상대 공격수의 압박 범위를 사전에 벗어나게 해야 했다. 미드필더들은 골키퍼 앞쪽에서 패스를 받을 공간을 먼저 점유해 상대 공격수들이 전방 압박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골키퍼가 빌드업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들의 정확한 호흡이 필요했다.

결국 중원과 수비까지 빌드업 중심을 잘 잡아주는 기성용의 공백이 골키퍼 빌드업 실패로 이어졌다. 기본적인 공 간수와 패스 줄기를 확실히 알고 있는 기성용의 부재로 후방에서 공이 살아나오기 어려웠다. 기성용의 파트너로 낙점받은 정우영까지 빠지면서 전체적인 후방 빌드업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김승규가 그 시작점에 서면서 부담이 더 커지고 말았다.

이제 다섯 경기를 치렀다. 강팀의 색깔을 덧칠하기 위해 선택한 '빌드업' 강화에 대해 성패를 단정짓기는 이르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한가지. 강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골키퍼부터 시작되는 빌드업의 안정감을 대폭 끌어올려야 한다. 벤투호의 빌드업 시작은 골키퍼다.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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