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경제 기자가 본 영화 '국가부도의 날'
무능과 불신의 상징된 정부...21년이 지났어도 여전
IMF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시현(김혜수)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이제 내 손을 떠난 내 돌 반지. 금모으기 운동이 이렇게 시작됐다니 ㅠㅠ” (20대 A씨)

“그때나 지금이나 관료나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다” (30대 B씨)

“실제로는 영화보다 더 심했다. 당시만 해도 미래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거든” (50대 C씨)

28일 개봉하는 <국가부도의 날>은 이처럼 누군가에겐 남의 일로, 누군가에겐 나의 일로, 누군가에겐 우리의 일로 다가오는 영화다. 시계는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대우, 한보, 고려증권 등 지금은 사라진 수 많은 기업들의 이름이 희미한 기억속에 떠오른다.

‘환율 2000원’, ‘이자율 30%’. 지금 세대에겐 현실감 이야기로 느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자랑스런 'OECD 가입국'에서 졸지에 '망한 나라'의 국민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은 어떤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절망감의 절정기'였다. 당시로선 낯설기만 했던 구조조정, 비정규직, 대량해고, 시장경제, 지배구조 개선, 자본시장 자유화 같은 경제용어들이 일상화된 것은 그만큼 우리에게도 '면역력'이 생긴 덕분일 것이다.

/사진=CJ 엔터테인먼트

◆ 대우·한보·고려증권…21년 전 기억을 소환하다

영화의 가장 큰 줄기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국가부도를 대처하는 정책당국의 대책회의다. 미리 이상 신호를 감지한 한시현(김혜수)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은 총장(권해효)에게 몇 번이나 보고서를 올렸지만 번번이 묵살당한다. 국가부도 직전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총장은 뒤늦게 경제관료들을 한자리에 모으지만 대책회의는 겉돌기만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꿰뚫고 있는 한 팀장의 의견 따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컨트롤타워임을 자처하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자신들의 과실을 숨기는 데 급급할 뿐 국가와 국민을 살리는 데는 뒷전이다. 통화정책 전문가인 한 팀장을 ‘은행원’이라고 폄하하고 윽박지르며 입을 틀어막기에 급급하다.

21년 전  실제 역사 속 그 당시는 더 암담했을 것이다. 영화 속 대책회의에서는 금융당국이 실상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하도록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최악'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1997년 당시 상황은 훨씬 더 혼란스러웠다. 명문대 출신에 고시를 패스한 것 빼곤 국제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던 고위 관료들은 환경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고 당연히 사태수습에 버벅댔다. 국가부도라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했던 이도 몇 안됐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부도 허둥대는 마당에 중소기업이나 일반인들은 물론 대기업도 다를 바 없었다. 영화가 정보의 비대칭을 그렸지만 실제 역사는 정보의 ‘부재’였다는 데 한표를 던진다. 어쩌면 IMF 구제금융이라는 선택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시의 김영삼 정부는 오늘날까지 무능한 정권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나랏일을 좀 한다는 공무원들의 지적 수준이나 도덕적 의식이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것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윤정학(유아인)은 국가 부도를 기회로 삼기 위해 잘 다니던 증권사에 사표를 던진다. /사진=CJ 엔터테인먼트

◆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당시 가장 유행한 단어는 ‘적자생존(適者生存)’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이었다. 각자 알아서 급변하는 흐름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윤정학(유아인)은 이를 철저히 간파하고 행동에 옮긴 인물로 그려진다. 위기를 기회 삼아 막대한 부를 축적한 그는 오직 돈에 사로잡혀 있다. 윤정학이 새로 산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존 집주인을 목격하고도 “내가 왜 나가. 이제 내 집이다”라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욕망 앞에 인간성을 잃어가는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그릇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허준호)는 윤정학과 달리 국가부도의 직격탄을 맞은 인물로 그려진다. 부도가 난 미도파백화점 납품 계약을 따내면서 현금 대신 어음을 받은 그가 단꿈에 빠졌던 건 잠시일 뿐. 백화점이 부도처리 되면서 어음은 휴지조각이 되고 공장은 문을 닫는다. 늦은밤 자신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던 그는 아이들이 잠든 방을 보며 절망감에 울부짖는다. 그의 선택은 대금납입을 몇 번이고 미뤄주던 '선한' 협력업체 대표에게 부도난 어음을 돌리는 것이었다. 

◆ 연줄은 살아있다?...끈질긴 '끈끈함의 힘'

영화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연줄'의 끈끈함을 놓치지 않는다. 갑수가 부도나 구속같은 '최악'을 면하고 기업을 되살려 아들을 번듯하게 키울 수 있었던 건 금융당국에서 근무하는 피붙이를 찾아가 은행 대출을 청탁한 덕분이었다. 구체적인 과정까지 묘사되진 않았으나 길바닥으로 쫓겨날 지경에 이른 가족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극적으로 회생한 갑수는 양심적인 소시민의 모습을 버린 채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다그치는 '그저그런' 경영자로 전락했다.

학벌주의도 빠지지 않는다. 정책을 결정하는 핵심라인은 '동문'이라는 공통분모로 채워진다. 재정국 차관은 국가부도 직전의 와중에도 일성그룹 2세를 만나 핵심 정보를 건네 주며 자신의 퇴임 이후를 보장받는다. 왜 잘해주냐는 질문에 “하버드대학교 동문 아닙니까”라고 답하는 장면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건 '학연(學緣)'의 뿌리가 그만큼 깊다는 것일 게다.

작은 그릇 공장을 운영하는 갑수(허준호)는 납품이 예정돼있던 미도파 백화점의 부도로 파산 직전에 몰린다. /사진=CJ 엔터테인먼트

◆ 오늘날 뭐가 달라졌을까…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신’

이전에도 그랬지만 IMF 사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일반화되는 계기가 됐다. 21년전의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부를 믿는다”고 말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실체가 까발려지면서 이러한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현 정부의 행보도 민심의 바닥에 깔려 있는 냉소를 걷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부동산에 투자하면 손해를 본다’ '강한 중소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겠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차별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 같은 정책발표에 귀기울이는 국민이 몇이나 될까. 영화 속 1997년 11월처럼 ‘경제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 ‘조만간 회복될 것’, ‘턴 어라운드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당시 정부 발표의 데쟈부(deja vu)일 뿐이다.

갑수는 입사 면접을 보러가는 장성한 아들에게 “누구도 믿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 한다. 확실하게 '팔자를 고친' 윤정학 역시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정부 말은 절대 믿지 않아"라고 외친다. 우리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아무도 믿지 못해 각자도생을 꿈꾼다. 정치나 사회 각 분야에서 협업이나 협치가 요원한 것도 어찌 보면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그때의 상흔 때문은 아닐까.

김솔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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