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LG화학, 창립 이래 첫 외부 CEO 영입
기초소재 중심에서 탈피...자동차 경량화 소재 사업·회사 혁신 이끌 것
6인 전문경영인 부회장체제에서 벗어나 '구광모 직할 체제' 구축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LG그룹의 모태 기업인 LG화학이 1947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외부 CEO를 영입했다. 업계 '산증인'이라 불리는 박진수 부회장을 물러나게 하고 글로벌 혁신기업으로 꼽히는 3M의 신학철 수석 부회장에 경영을 맡긴 것이다. 업계 안팎의 평가는 '파격'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구광모 회장의 승부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박 부회장 체제하의 LG화학 성적은 준수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영업이익 2조9285억원)을 달성했고 국내 기업중 처음으로 글로벌 '톱10'에 진입했다.

만족할 수도 있는 성과지만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신 부회장의 영입은 LG화학 뿐만 아니라 LG그룹 전체가 '글로벌 사업 운영 체계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이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구광모 회장이 그룹 혁신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것 같다" "LG화학이 최근 사업 다각화에 큰 비중을 두면서 안정보단 혁신을 택한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LG화학이 지난 9일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에 글로벌 혁신기업인 3M의 신학철 수석 부회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사진=LG화학 

◆ 3M의 혁신 DNA에 거는 기대

LG화학은 신 부회장을 통해 혁신 DNA와 소재·부품 사업의 풍부한 경험을 기대하고 있다. 신 부회장이 몸담았던 3M은 대표적인 혁신 기업으로 꼽힌다. 설립 초기 광산 업체였던 3M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구개발로 연결해 혁신 제품을 출시하며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3M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은 사무용품의 대명사가 됐다. 포스트잇은 AP통신 선정 '20세기 세계 10대 히트 상품'이다. 3M은 매년 300여 가지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며 혁신과 변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부즈앤드컴퍼니는 3M을 구글, 애플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기도 했다.
 
LG화학은 대외 환경에 취약한 기초소재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지, 정보전자소재, 생명과학 등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초 소재사업은 전형적인 장치산업으로 대외 변수만 없다면 실적은 장치(공장) 설치 규모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실적이 크게 유의미하다고는 볼 수 없다. LG화학이 혁신에 목마른 이유이기도 하다. 

◆ 전통 화학사업과 연결고리 없는 신 부회장 

신 부회장 영입이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중 하나는 그가 전통 화학 사업과 크게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 화학업계 CEO가 화학공학과 출신인 반면, 신 부회장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그는 3M에서도 전통 석유·화학 부문에서의 경력은 전무하다. 소비자사업본부장, 필리핀 지사 사장, 산업용 비즈니스 총괄 수석부사장, 산업 및 운송비즈니스 수석부회장, 해외사업부문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화학업계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이번 인사가 있기 전까지 솔직히 신 부회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면서 "인사 발표 이후 과거 인터뷰를 통해 '혁신 리더'라는 정보만 들었을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LG화학은 이번 인사 배경에 대해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 '혁신기업으로 도약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과 연관성에 대해선 크게 강조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 부회장·3M과 LG화학의 연결고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자동차 경량화 사업이라는 교집합이 있다. 

전기차 배터리로 대변되는 친환경 자동차 실현을 위해서는 차량 경량화가 필수적이다. 강성은 기존 재료와 비교해 떨어지지 않으면서 저중량 소재를 사용해 차량 연비는 물론 환경 규제에 따른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자동차 경량화 소재 시장 역시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연구개발특구기술 글로벌 시장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자동차 경량화 소재 시장은 2015년 708억2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성장률 8.57%로 증가해 2020년에는 1068억4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3M-LG화학 교집합은 '자동차 경량화'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LG화학은 3M 출신 신 부회장을 앞세워 자동차 경량화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기존 전기차 배터리에 이어 최근에는 '자동차용 접착제' 전문 업체 미국 유니실 인수를 통해 또 하나의 자동차 소재 사업을 추가하며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와 양극재 그리고 차량 경량화 핵심 부품인 자동차 내외장재로 사용되는 고기능성 소재인 'ABS(합성)'와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및 전기차 배터리용 접착테이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신 부회장이 몸담았던 3M 역시 자동차 시장에서 풍부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자동차 관련 제품이 총 1356가지고, 테이프 및 접착제 등 자동차 경량화 제품만 995가지에 달한다.

3M 홈페이지에는 '100년 가까운 자동차 산업에서 자동차 설계, 제조 및 수리의 모든 측면에 대한 지식을 쌓아왔다. OEM에서 경량 솔루션을 사용해 연비를 개선하는 것부터 차체 전문가가 도장 공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까지 모든 부분에서 경험을 쌓았다'고 소개돼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회사 실적을 보면 기초소재 비중이 가장 높지만, 최근에는 전기차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경량화와 연비 개선"이라며 "신 부회장이 근무했던 3M과 LG화학의 공통점을 꼽자면 두 회사 모두 자동차 경량화 소재를 생산하고 지향점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사업보고회를 통해 각 계열사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찾고 혁신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인적쇄신으로 혁신 꿈꾸는 구광모 회장

"업(業)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개최한 사업보고회에서 각 계열사 CEO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올해 사업보고회는 경영진의 실적 발표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주력사업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미래 신사업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는 자리였다. 

업계에 길게는 40년 이상 경험을 쌓아온 경영진들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운 질문이었다. 구 회장의 '돌직구 질문'에 적지 않은 CEO들이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생소한 접근법이 냉철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고 인적쇄신을 통해 변화와 혁신을 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아니겠냐고 해석한다. 주요 계열사에 6명의 전문경영인이 부회장으로 포진해 있는 현시스템에 균열이 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가장 먼저 사업보고회를 마친 LG화학에서 파격적인 경영진 교체가 이루어졌다. 

LG그룹, LG화학 모두 이번 인사에 구광모 회장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됐다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LG화학 관계자 "박 부회장의 퇴진은 기존 계획에는 없었던 일로 본인도 인사 발표 며칠을 앞두고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세대교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박 부회장(1952년생)과 신 부회장(1957년생) 모두 60대로 나이차도 5살에 불과하다. LG화학 관계자는 "신 부회장 영입은 자동차 소재 부문 강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다소 보수적인 화학 업계에서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는 부분이 가장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3M에는 자동차 제품이 총 1356가지고, 테이프 및 접착제 등 경량화 제품만 995가지에 달한다. /사진=3M 홈페이지

◆ 하루 15분 쪼개 미팅…글로벌 인맥, LG화학이 원하던 경쟁력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신 부회장은 유학이나 어학연수 없이 글로벌 기업 2인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84년 한국 3M 평사원으로 입사해 7년 만에 소비자 사업본부장을 지냈고, 이후 필리핀 지사장과 3M 미국 본사 비즈니스 그룹 부사장을 거쳐 한국인 최초로 3M 해외사업 총괄 수석 부회장까지 올랐다. 말 그대로 노력 하나로 '흙수저의 신화'를 써내려 간 것이다.

신 부회장은 하루를 15분 단위로 쪼개 미팅을 진행할 정도로 직원·고객과 소통에 주력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좌우명인 '치기언이과기행(恥其言而過其行·자신의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을 앞세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3M에서 인연을 맺은 글로벌 인맥은 신 부회장 만의 경쟁력으로 볼 수 있다. 사업 다각화와 함께 글로벌 사업 운영 체계가 필요한 LG화학으로선 신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 어게인(Again) 차석용 효과?

일부에선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의 영입 성공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P&G 출신인 차 부회장은 매년 실적이 급락하며 침몰 직전에 몰렸던 LG생활건강을 단숨에 주력 계열사로 성장시켰다. 2005년 대표이사로 취임해 코카콜라, 다이아몬드샘물, 해태음료, 더페이스샵, 바이올렛 드림 등 18건의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회사 성장을 이끌었다.

2004년 544억원에 불과했던 LG생활건강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9303억원까지 상승했다. 2005년 1분기부터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 없이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주가 역시 상승곡선을 그렸다. 차 부회장 취임 당시 2만8000원대에 불과했던 주가는 지난 16일 기준으로는 115만원대다. 14년 동안 무려 40배 이상이 뛴 것이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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