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내년 1월1일,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적립 마일리지 소멸

마일리지 활용 일감몰아주기 의혹도

마일리지, 항공사 부채의 5% 이상 차지
내년 1월1일부로 적립된 항공마일리지가 순차적으로 소멸된다. pixabay.com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결국 항공사 로고 상품하고, 빵 사먹었어요."

서울에서 사는 직장인 A(36)씨는 '소멸예정 마일리지에 대해 안내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은 내년 1월1일부터 보유한 마일리지가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A씨가 적립한 마일리지는 대한항공 9500마일, 아시아나항공 5000마일이다.

A씨는 그냥 버리기 아까운 마일리지로 1만 마일짜리 제주도 항공권을 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 이내 포기했다. 공제 마일리지 이외에도 세금과 제반요금, 숙박비와 렌트카 등 비용이 더 컸다. A씨는 잔여 마일리지로 항공사 로고가 박힌 캐릭터 열쇠고리, 텀블러 등을 구매했다.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로는 인근 이마트에서 장을 보며 빵과 식료품 등을 사는데 소진했다. A씨는 "애써 모은 마일리지를 시간에 쫓겨 허무하게 쓴 거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국내 2대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2008년 7월과 10월, 항공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10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약관을 개정했다. 내년 1월1일부터 순차적으로 마일리지가 소멸된다. 전체 마일리지 적립액 중 30%가 올해가 지나면 사라진다. A씨처럼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일리지를 처분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이며 관련 분쟁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 자산↓·항공사 수익↑…마일리지를 보는 엇갈린 시선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에 적립된 마일리지 액수는 2조982억 원으로 대한항공의 총 부채 22조1500억 원의 약 9.8%에 해당한다. 아시아나항공의 적립 마일리지액 5500억 원 역시 총 부채 7조4500억 원의 7%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상당하다.

마일리지는 어쩌다 항공사의 부채 중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을까. 항공사는 약관 개정으로 2008년을 기준년도로 10년의 유효기간을 설정했다. 2008년이 기준이 된 건 국제회계기준 도입 영향이 크다. 과거 회계기준에서 마일리지는 항공권 판매시점의 수익으로 보고 예상비용을 추정해 충당부채로 인식했다. 반면 2010년 1월1일 도입된 국제회계기준은 항공권 판매대가 중 마일리지의 공정가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사용시점 또는 유효기간 종료까지 이연했다가 수익으로 인식했다. 소비자들이 마일리지를 쓰지 않으면 계속 부채로 잡히는 셈이다. 때문에 항공사의 부채는 2~3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회계기준은 적립포인트를 제공하는 모든 회사에 똑같이 적용된다.

마일리지 자동소멸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산인 마일리지가 없어지는 반편 항공사 편에서는 부채를 더는 것과 동시에 소멸된 몫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마일리지 소모는 곧 항공사에게 이익인 상황에서 항공사들은 소비자들의 마일리지 소모를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좌석 승급과 적립마일리지를 이용한 항공권 구입이다.

1만 마일리지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제휴사를 통한 마일리지 판매 가격(롯데 L포인트 카드 판매가 1마일당 22원)으로 환산하면 소비자는 22만 원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항공사의 마일리지 차감 방식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좌석 승급시 1마일리 가격은 40~60원의 가치를 가지며 적립마일리지를 활용한 항공권 구입 때는 1마일 당 약 20원 수준이다. 하지만 항공마일리를 통한 좌석 승급과 항공권 구입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마일리지를 이용한 항공권의 경우 전체 좌석의 5% 정도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활용률은 1~3% 수준이라는 게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설명이다.

좌석 승급과 보너스 항공권을 제외하면 나머지 상품 구입에서 1마일리지는 10원이 되지 않는다. 가령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빌린다면 대한항공의 경우 소형차 6500마일, 중형차 8000마일, 대형차 1만3000마일을 차감한다. 반면 제주지역 렌터카를 직접 빌릴 경우 소·중형은 2만5000원~3만 원 사이다. 현지에서 2만원대에 빌릴 수 있는 렌터카를 한진그룹 계열사인 한진렌터카에서 대여할 경우 최소 8000마일, 약 17만6000원(L포인트 판매가 적용)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대한항공이 계열사인 렌터카 회사에 차감한 마일리지 만큼 현금을 지불한다"며 "일감몰아주기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항공권 구매 및 승급 이외 다양한 항공마일리지 소진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pixabay.com

◆마일리지 판매만 집중하는 항공사 vs 소진처 없는 소비자

항공사들은 카드사를 비롯해 각종 제휴사를 활용해 마일리지를 판매하는 마일리지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항공사들은 국내외 주요 은행 및 카드사와 제휴해 카드 사용과 환전, 외화 송금 때 액수에 따라 마일리지를 판매한다. 제휴 은행을 통해 500달러 이상 환전하거나 송금할 때 2~10달러 당 1~3마일 정도 적립해주고 있다. 신용카드의 경우도 100~1500원을 쓸 때마다 0.8마일에서 최대 5마일까지 적립해 준다. 적립 비용은 은행이나 카드사가 항공사에 지불한다. 항공사로서는 마일리지 판매가 곧 수익이다.

항공사 마일리지 판매는 금융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항공은 OK캐시백, 롯데멤버스, S-오일, 한진관광, 한진택배, 현대백화점 등 다양한 업종과 마일리지 거래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KAL호텔(제주,서귀포), 롯데호텔, 신라호텔 등 국내호텔은 물론, 호텔스닷컴, 아르코 호텔, 인터콘티넨탈 호텔그룹, 메리어트 호텔 등 국외호텔과 제휴로 항공 마일리지를 판매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항공사 수익에서 마일리지 마케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 '2018년 12월31일'이라는 자동소멸 시기는 다가오는데 소비자는 마일리지를 쓸 곳이 없다. A씨의 사례와 같이 마일리지를 소비하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 소비자 편에서 보면 마일리지를 활용한 항공권 구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소진처도 충분하지 않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항공권 구입 이외 다른 소진처가 있다고 하더라도 항공권 구입에 비해 그 가치가 확연하게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일리지 소진을 적극 유도하는 다른 업종과 비교해 항공사들의 마일리지 사용 유도와 소진처는 미미한 수준이다.

◆외국항공사의 마일리지 소진 방법은?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국외 항공사의 마일리지 소진처는 매우 다양하다고 강조했다. 온·오프라인 면세점은 물론이고 호텔과 가전제품, 여행, 패션, 주류 등 전 세계 어디서든 적립한 항공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에어프랑스와 KLM네덜란드항공 홈페이지를 분석한 결과 항공마일리지는 항공권 구입이나 좌석 승급 뿐만 아니라 현금처럼 다양한 소진처에서 쓸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이나 애플사의 스마트폰 등 가전제품도 마일리지로 구입할 수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호텔의 경우도 적립한 마일리지로 호텔 바우처를 구입해 세계 각국 호텔을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에어프랑스나 KLM의 경우 소비자가 적립한 마일리지를 자선단체나 스타트업 기업에 기부할 수 있었으며 부족한 마일리지에 대해서는 구매가 가능하고 증여 및 양도 또한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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