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사용설명서] 지긋지긋한 회식..."이 잔이 날 지나칠 수만 있다면..."
[회사 사용설명서] 지긋지긋한 회식..."이 잔이 날 지나칠 수만 있다면..."
  • 박재형 기자
  • 승인 2018.11.27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말 연시 술자리 '봇물'...빠져 나가는 나만의 노하우는
직장인 회식 싫은 이유 1위 '퇴근 후 여가 즐기고 싶어서'

[한스경제=박재형 기자]

취업시즌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입사한 사회초년생들은 회사에서도 높은 문턱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사회생활'이라는 신세계다. 그중 회사내 생활은 직장인으로 안착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 된다. 신입사원들이 실제 회사 내에서 부딪치는 상황들과 그에 맞는 대처 방안, 방향을 제시해 그들의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 줄 수 있는 일종의 ‘회사 사용 설명서’를 권하고자 한다.[편집자주]

‘글 쓰는 판사’로 유명한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해 모 일간지에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칼럼에서 문 판사는 “저녁 회식 하지마라”며 “젊은 직원들도 밥 먹고 술 먹을 돈이 있고 친구도 있지만 없는 건 당신이 뺏고 있는 시간뿐이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 또는 모임’을 뜻하는 ‘회식’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정규 근무 시간 이후에 음주를 동반한 강제성이 추가된 식사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단합과 친목, 사기 고양이 목적인 회식은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상사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또 다른 업무시간으로 변질돼 모두가 기피하고 싶은 직장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이제 곧 연말연시다. 팀 회식, 부서 회식, 전체 회식 등 하루가 멀다하고 술자리가 만들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잘 준비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되는 자리이지만 개인의지와 무관하게 시간을 뺏긴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피하고 싶은' 순간일 수도 있다.

직장인들이 다들 회식을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취업포털 파인드잡이 지난 2015년 전국 직장인 5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들은 회식이 싫은 이유 1위로 ‘퇴근 후 여가를 즐기고 싶어서’(45.7%)를 꼽았다. 뒤를 이어 ‘상사 비위 맞추기 싫어서’(17.9%), ‘너무 늦은 시간까지 이어져서’(16.8%), ‘술을 지나치게 권해서’(10.3%) 등을 회식을 꺼리는 이유로 답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우리나라 남녀직장인 총 2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3.5%(169명)이 ‘회식이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껴진다’고 답하기도 했다.

4년차 직장인 A씨는 “퇴근 이후에 회사 사람이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다”며 “퇴근하면 바로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다”고 회식에 대한 감상을 밝혔다.

B씨는 “우리는 회식 때마다 ‘빨간뚜껑’ 소주를 마신다”며 “음식점에 팔지 않으면 편의점에서 사 가서 마신적도 있다”고 말했다. B씨는 독한 소주를 마시는 회식문화 때문에 번번이 숙취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회식을 빠질 수 있는 '노하우'는

그렇다면 직장생활에서 이렇게 끔찍한 회식을 거절하거나 빠져 나가는 직장인들만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직장인들이 일반적으로 내세우는 핑계는 ’가족’, ‘와이프’, ‘부모님 상경’, ‘사촌 결혼’, ‘할머니 팔순잔치’, ‘집안 제사’, ‘약 복용’ 등 이었다. 몇몇 직장인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원을 핑계로 내세운다고도 했다. 대학원 시험이나 발표 등을 핑계로 회식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이 거듭되면 ‘특별’이 되고 ‘경험’이 쌓이면 ‘기술’이 되는 법이다. 일부 직장인들은 점차 자기만의 노하우를 개발하기도 한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5년차 직장인 C씨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그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 적이 있다”며 “또 한달 기다린 병원 예약을 핑계로 빠진 적도 있는데 대학병원은 미리 예약해야 된다는 것을 다들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기업을 다니는 D씨는 “회사가 지방에 있어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다 보니 직원들이 출퇴근 시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회식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운전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술을 안 마시는 방법이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E씨가 종종 사용하는 수단은 과감했다. E씨는 “도망을 못 간다면 아예 확 먹어버리고 먼저 뻗어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며 “내가 누군가를 치우느니 누군가 나를 치우게 해버리는 것이다”고 방법을 소개했다.

F씨(여) 또한 거듭되는 회식이 싫어 신입사원 때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회식이 너무 싫어서 술을 있는 대로 마셔 버리고 완전 취해 ‘진상’을 피운 적이 있다”며 “다음부터 상사와 동료들이 나에게 ‘회식가자’는 요구를 강하게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과장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는 G씨는 “우리 회사는 회식 날짜를 바꾸면 바꿨지 취소는 없다”며 “회식을 빠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1차가 끝나고 대부분 집에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만을 기대한다”며 “그나마 술을 강권하는 문화가 아니라서 다행이다”고 밝혔다.

◆회식 장소 섭외도 '괴로워'

‘회식을 가는 것’도 괴롭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야 되는 문제도 항상 고통이다.

H씨(여)는 매번 회식때마다 회식 장소를 정하는 일을 도맡고 있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회식 장소를 정하라고 해서 잡았는데 팀장이나 다른 상사들의 마음에 안 들면 별소리를 다 듣는다”며 “‘비싸기만 하다’, ‘맛없다’, ‘시끄럽다’, ‘돈 아깝다’같은 얘기들을 회식 내내 듣고 있으면 내가 식당 사장이 된 것 마냥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회식 자리를 고심 끝에 예약했던 그녀는 가게가 시끄럽고 고기가 가격에 비해 맛이 없다는 이유로 다음 날까지 욕을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사진=pixabay
사진=pixabay

I씨는 “상사들이 먹고 싶은 메뉴가 있으면 속 시원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며 “직원들이 뭐 먹고 싶은지 취합해보라 해서 의견을 모아서 가면 이런 저런 이유로 자꾸 퇴짜를 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 여자친구도 이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며 “일도 아니고 회식 메뉴까지 그들 ‘마음’속에 있는 답을 맞혀야 되는 것이냐”면서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즐기는 회식 자리는 없나

회식이 즐거운 직장인은 없을까. 모두가 불편한 회식이 아니라 모두가 즐거운 회식은 없는 것일까.

J씨는 “그냥 회삿돈으로 다 같이 맛있는 걸 먹는 건 좋다”며 “우리 회사는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라 점심 때 다 같이 맛있는 걸 먹는 식으로 회식을 한다”고 말했다. J씨네 회사는 가끔 회식 대신 영화관람 등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 회사에 입사한 K씨는 “아직 회식을 몇 번 안 해봤지만 재밌는 것 같다”며 “학생 때는 먹기 힘들었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점이 좋고 직원들과 계속 웃으면서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K씨네 회사는 회식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눈치를 주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직장생활 4년차인 L씨는 “회식을 할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너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재밌는 경우가 있다”며 “그럴 때 아니면 내가 언제 전무님이랑 어깨동무를 하고 놀겠나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대기업을 다니는 M씨는 “우리 회사는 공식 회식이 없다”며 “친한 부서사람들끼리만 즐겁게 회식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는 “같이 전시를 보거나 볼링장을 가고 밥이나 술도 격의 없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먹고 마신다”며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 또래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심장전문의 로버트 엘리엇은 그의 저서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를 통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회식도 진정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마지막으로 H씨는 회식을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팁을 알려줬다. 그는 “3가지만 기억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바로 ‘자리는 가장 구석’, ‘먹는 건 되도록 많이’, ‘술은 최대한 조금’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