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제니, 팝스타 두아 리파, 블랙핑크 리사(왼쪽부터).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K팝'이라는 표현이 생겨난 지 불과 10년 여 만에 K팝의 입지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팝의 짝퉁'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옛 말.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쌓은 탄탄한 실력과 잘 짜인 퍼포먼스를 특징으로 하는 K팝은 국경의 벽을 넘어 세계 음악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팝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두아 리파부터 존 레전드까지… K팝에 손내미는 팝

지난 달 말 빌보드가 대서특필한 소식들 가운데는 블랙핑크의 뉴스가 포함돼 있다. 블랙핑크와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가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대표적인 레이블 인터스코프와 글로벌 파트너십을 체결한 내용이 그것.

인터스코프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의 대표 레이블 가운데 하나로 닥터 그레, 투팍, 에미넴, 켄드릭 라마, 셀레나 고메즈, 마돈나, 레이디 가가, 블랙아이드피스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팝스타들과 다수 일하고 있다. 인터스코프와의 계약 체결은 블랙핑크 향후 활동이 미국 시장까지 이어질 것임을 확신시켜주는 사건이었다. 빌보드는 "한국에서 자란 지수와 태국인인 리사,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로제 뉴질랜드에서 자란 제니 등으로 구성된 블랙핑크는 선천적으로 글로벌화된 그룹"이라며 이들의 활동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멤버들로 구성된 다국적 그룹. K팝은 이 같은 방식을 통해 꾸준히 글로벌 시장을 두드려왔다. 태국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2PM의 닉쿤, 갓세븐의 뱀뱀을 비롯해 일본 멤버가 다수 포함된 아이즈원, 중국 멤버들과 함께 데뷔 때부터 중국 시장을 공략한 엑소 등 다국적 그룹의 수는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이 같은 꾸준한 시도를 통해 한류는 그 영역을 동북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로, 또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로 넓혔다.

다문화, 다국가에 소구할 수 있는 K팝은 이제 팝스타들에게도 매혹적인 영역이다. 최근 팝신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로 꼽히는 두아 리파는 블랙핑크에게 러브콜을 먼저 보냈다. 두 팀이 협업한 곡은 '키스 앤드 메이크 업'으로 이 노래는 21개국의 아이튠즈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고, 미국 현지에선 8위에 올랐다. 이 노래 안에는 블랙핑크가 가창한 한국어 가사 부분이 포함돼 있다.

R&B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 존 레전드는 레드벨벳의 웬디와 입을 맞췄다. 레드벨벳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지난 2016년부터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음원 유통 채널인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존 레전드는 스테이션의 스핀오프 버전인 스테이션 영 프로젝트에 협력, 웬디와 '리튼 인 더 스타스'라는 곡을 함께 불렀다. 미국 힙합 그룹인 미고스와 스터 프라이 등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싱 제이 리 감독이 뮤직비디오 연출을 맡아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에 능통한 그룹 투애니원 출신 씨엘은 솔로로 '헬로 비치스', '리프티드' 등 영어로 된 노래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최근엔 팝 혼성 그룹인 블랙아이드피스와 '도프니스'라는 곡을 함께 작업했다. '도프니스'는 블랙아이드피스의 윌아이엠이 프로듀싱한 곡으로 블랙아이드피스의 새 앨범에 실리기도 했다.

글로벌 팬미팅에서 퍼포먼스 펼치는 방탄소년단.

■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200이 시사하는 것

올 상반기를 가장 뜨겁게 달군 K팝 소식을 꼽자면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200 1위를 빼놓을 수 없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 발매한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轉) '티어''로 한국 그룹 사상 최초로 빌보드의 메인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정상에 올랐다. 이후 약 3개월 만인 지난 9월 새 앨범 '러브 유어셀프 결(結) '앤서''로 다시 한 번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빌보드 200은 앨범 판매량과 스트리밍 횟수, 다운로드 횟수 등을 망라한 차트로 그 주 팝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앨범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차트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앨범이 한 해에 두 번이나 정상을 차지하는 건 팝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미국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는 이 일에 대해 "방탄소년단에게뿐만 아니라 2010년대 팝 음악계 전체에 의미 있는 기록"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현지에서는 K팝에 대한 팝 시장의 러브콜이 계속되는 이유에 대해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과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한 K팝의 전략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해 크게 히트한 '데스파시토'를 필두로 한 라틴 음악의 부흥은 팝 리스너들이 얼마나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 있는가를 보여준다. 팝 시장 역시 음반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맞물려 가야 하는 상황. 미국 레코드협회에 따르면 미국 음악 시장의 경우 지난 2014년 음원 시장이 CD 등 음반 시장의 규모를 넘어선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유튜브 및 SNS에서 '리액션 비디오'를 히트시키며 음원 마케팅에 최적화된 상태로 진화된 K팝은 이제 음원으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팝에게 좋은 파트너라는 분석이다.

특히 빌보드 200에서 두 번이나 1위를 차지하며 팝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방탄소년단의 활약은 추후 K팝 스타들의 팝 시장에서의 활약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현지에서 68개의 라디오 스테이션을 소유한 알파 미디어 그룹의 필 베커 부사장은 "누군가는 첫 걸음을 내딛으며 길을 만들어야 한다"며 "방탄소년단이 K팝에 있어서 바로 그러한 존재라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베커 부사장은 그러면서 "6개월 안에 우리는 미국의 유명 팝스타가 K팝 앨범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진=YG엔터테인먼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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