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삼성 "완성차 사업 진출 안 한다"
전장부품 관련 삼성-현대차 협업 분위기 조성
정의선 현대차 총괄수석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협업 가능성이 주목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6개월 내 삼성전자와 협력방안을 마련하겠다."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CES)에서 삼성전자 출신 지영조 현대자동차 전략기술본부 사장은 삼성전자와 협력을 공언했다.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와 협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던 상황에서 나온 지 사장의 발언은 재계의 '뜨거운 감자'로 기대감을 키우기 충분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현대차와 협력하느냐'는 물음에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고 말해 양사의 '동맹'은 초읽기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협력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동맹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모두 전례 없던 우호관계를 뽐내며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단적으로 현대차는 27일 서울시 중구 신라호텔에서 출범 3년을 맞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플래그십 기함 G90의 언론 공개 행사를 진행했다. 그동안 워커힐호텔이나 W호텔에서 신차 공개 행사를 진행했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례적이다. 이 보다 앞서 8월에는 기아차가 삼성전자와 처음으로 공동 마케팅을 했다. 'K7 갤럭시 스마트폰'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과거의 앙금을 생각하면 삼성가(家)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에서 현대차의 중요 신차를 공개한 건 의미가 남다르다는 게 재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대차와 삼성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1980년대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며 재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이어 10년여의 준비 끝에 삼성은 외환위기 직후 프랑스의 르노(Renault),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과 함께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현대차의 아성을 위협했다. 삼성자동차는 1998년 첫 모델인 SM5를 출시하며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채 2년도 버티지 못하고 1999년 6월30일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이어 이듬해인 2000년 지분을 르노에 매각하며 완성차 부문에서 손을 털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재계 안팎에서는 현대차 내부에 삼성에 대한 특유의 견제심리와 앙금이 남았다는 설(說)이 정설처럼 통용됐다.

현대차는 27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플래그십 기함 G90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현대차와 삼성 모두 3세 경영 체제로 접어들면서 서로를 견제하던 과거의 관계는 '협력 모드'로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2016년 9조 원을 들여 글로벌 차량 전장부품 업체 하만(Harman international)을 인수하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또다시 완성차 업계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일축하며 "연결성을 극대화하는 솔루션에 집중할 것"이라며 "파워트레인 등 자동차 보디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줄기차게 완성차 진출 가능성을 부인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로부터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를 받았을 때도 삼성전자는 "자율주행차 초기의 선행연구 단계일 뿐 완성차 진출 계획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지난 8월에도 삼성전자는 완성차 진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삼성SDI, 삼성전기 등 계열사에서 모터, 배터리 등 전기차 관련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만큼 삼성의 완성차 시장 진출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삼성은 "완성차사업을 할 계획이 없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재계는 삼성의 이런 행보가 현대차를 향한 '러브콜'이라고 보고 있다. '완성차 부문에서 현대차와 경쟁할 뜻이 없으니 배터리, 반도체 등 전장부품을 써달라'는 주문이라는 해석이다.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는 현대차와 삼성이 손을 맞잡는다면 파급력은 상당하다. 양사는 전기차용 배터리, 차량용 반도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접점을 갖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삼성의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면서 "물꼬가 트인다면 양사의 협력은 속도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와 삼성의 동맹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과 삼성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 시급한 현안의 향배가 주목 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장밋빛 청사진만을 그리기에는 아직 이른감이 있다. 현대차와 삼성 모두 당장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하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다시 마련해 정 총괄부회장의 입지를 강화하는 게 가장 큰 현안이다. 한 차례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만큼 투자자들을 안심시킬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여기에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글로벌 판매와 수입차의 거센 공세, 미국 시장에서의 관세 이슈와 세타2 엔진 결함 리콜 관련 미국 검찰의 조사 결과, 미중 무역전쟁, 신흥국 통화위기 등 대내외 상황은 좋지 않은 게 현실이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펼치고 있는 규제 정책의 칼 끝이 대부분 삼성을 향하고 있다. 공익재단을 통한 계열사 지배 금지와 금융그룹 통합감독 체제, 보험업법 개정안 등 신규규제 등이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심 결과다. 특히 금융 당국의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고의 분식회계' 결정으로 이 부회장 재판은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을 중심에 둔 경영권 승계 작업은 없었다'는 이유로 이 부회장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관련 조사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주도로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가 이뤄졌다고 판단하면서 3심 재판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최순실 사태'에 이어 '분식 회계'까지 삼성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3심 재판부 마저 이 부회장을 외면한다면 현대차와 삼성의 동맹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적 악재에도 불구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현대차와 삼성 나아가 한국 경제 모두에게 있어 '윈-윈(win-win)'이 될 양사의 동맹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재계 안팎의 시선이 현대차와 삼성의 선택에 쏠리고 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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