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향후 90일간 협상 진행...'기술' 둘러싼 난항 예상
'종전' 아닌 한시적 '휴전'...협상 파기되면 '파국' 올지도

[한스경제=허지은 기자] 세계 1, 2위 무역대국 미국과 중국이 내년 초 추가 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로 한 가운데 한국 수출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합의 결과를 두고 전문가들은 안도와 불안이 여전히 교차한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변동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향후 미·중 갈등의 초점이 관세에서 기술 다툼 패권으로 옮겨갈 경우 향후 협상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합의로 한숨을 돌린 우리 기업들에 직접적인 수혜가 돌아가기에는 상당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 美·中, 90일간 관세 상향 유예…협상 계속하기로

미중 정상회담, 향후 90일간 추가 관세 중단키로 1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동을 갖고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추가 관세 부과를 향후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사진=연합뉴스

1일(이하 현지시간) AFP, CCTV 등 외신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이날 오후 5시 30분부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동을 갖고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추가 관세 부과를 향후 90일간 유예하고 협상을 진행하는 데 합의했다. 올 1분기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사실상 ‘휴전’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미국은 내년 초로 예정된 중국산 수입품 2000억달러 규모에 신규 관세부과 계획을 중단하고 기존 10%에서 25%로 관세율을 상향 조정하는 것도 향후 90일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즉각 재개하고 에너지, 산업재 뿐 아니라 미국산 품목 수입을 확대하고 양국간 무역 불균형을 줄여나가는 데 합의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 글로벌 변동성이 잦아들며 내년 경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되리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관세 압박의 직격탄을 맞은 중국 경기 완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승훈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내년 1분기 중국 침체 현실화 우려가 경감됐다”며 “중기 자금난 등 내수하방 위험까지 완화될 경우 내년 중국 성장률 상향 조정 요인이며, 협상 진전 과정에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도 점진적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 1년만에 만난 G2의 ‘동상이몽’…향후 협상 난항 예상

미국과 중국의 ‘휴전’ 선언에 한국 기업들도 한숨을 돌리고 있다. 특히 대(對) 중국 수출 비중이 40%를 넘는 반도체 업계나 중국으로 중간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전자 업계, 중국 경기 침체로 수익 감소에 시달린 자동차 업계 등을 중심으로 수혜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당장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향후 긍정적인 기대는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 결과를 낙관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중 정상회담 결과가 구체적 합의 없이 조건부 휴전 선택에 그친데다 90일 간 진행되는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경우 이전보다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회담 이후 양 정상이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지 않은 채 회의 결과에 대해서조차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중 정상회담은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성격이 강하다”며 “미국은 25% 관세율 인상이 향후 90일 간의 한시적 합의임을 강조한 반면 중국은 새로운 관세 부과가 없다는 점만을 발표했다. 시장개방 역시 미국은 중국이 미국 농산물 등에 대한 수입을 확대한다고 발표했지만 중국은 양국이 모두 상대방에게 시장을 개방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 미중 무역전쟁, 이제는 ‘관세’ 아닌 ‘기술’ 다툼?

이런 가운데 향후 미중 무역전쟁의 중심이 관세에서 기술 패권 다툼으로 옮아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일 ‘반도체 전쟁 : 중국과 미국의 실리콘 패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간 가장 중요한 무역분쟁은 기술에 대한 싸움이며 그 전장은 반도체 산업이라고 지목했다.

미중 무역갈등 이전에 기술갈등이 있었고, 이번 합의를 통해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유보하면서 향후 협상의 주요 주제는 지적재산권 보호, 핵심 기술 이전 등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 기술갈등’은 지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커창 중국 총리는 제조업 기반 육성과 기술 혁신 등의 내용을 담은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e 2025)’를 발표하고 정국 정부의 핵심 산업 전략을 공개했다. 핵심 부품과 자재를 중국 내에서 자체 수급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그 비율을 2020년까지 40%, 2025년까지 75%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미국은 중국제조 2025가 발표되자마자 즉각 대응에 나섰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인텔사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이듬해 중국의 푸젠그랜드칩사의 독일 아익스트론사 산하 미국 반도체 기업 인수도 방해했다. 또 중국제조 2025의 핵심 품목 1300개를 추려낸 뒤 이들 품목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미중 무역갈등은 최악의 상황은 단기적으로 피했지만 리스크가 여전히 잠재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지적재산권 보호 및 중국제조 2025에 대한 미국 측의 요구 사항을 중국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 지가 미지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90일 이후 미중 무역갈등이 다시 격화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허지은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