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경제가 흥해야 스포츠도 산다
'외환위기' 기업 도산, 프로·실업 구단 줄줄이 해체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한스경제=변동진 기자]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이른바 1998년 외환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대우를 비롯해 한보, 기아 등 제조·금융 가리지 않고 줄 도산했다.

모기업이 문을 닫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프로스포츠 구단 해체로 이어졌고, 일부선수들은 졸지에 백수가 돼야 했다. 경제가 있어야 스포츠도 산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우선 한국프로야구의 경우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는 모기업이 부도를 맞아 선수를 팔거나 임대로 연명했다.

대표적으로 해태는 1998년 이종범을 연봉 8000만엔(약 8억원), 계약금 5000만엔에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시켰다. 이로 인해 기업이 받은 돈은 4억5000만엔(약 46억769만원)이다.

이종범 당시 KBO리그를 주름잡던 선수로 일본을 대표하는 야구천재 이치로 스즈키와 비교될 정도였다. 1994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타율 0.393 19홈런 77타점 84도루라는 만화에서나 볼법한 성적을 남겼다.

이종범이 2001년 한국 리그에 복귀하면서 받은 연봉이 3억50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인 셈이다. 해태가 이같은 스타를 이적시킨 이유는 경영악화와 외환위기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종범(가운데)과 일본프로야구 구단 주니치 드래곤즈 계약식. /연합뉴스

◆KBO 천재 이종범, 주니치 드래곤즈 트레이드 이면엔…

실제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30대 재벌 중 17개, 은행 26곳 가운데 16곳 등이 퇴출됐다.

부실 덩어리 한보철강이 1997년 초 부도나 이후 11월까지 삼미, 진로, 대농, 한신, 기아, 해태, 뉴코아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특히 7월에 발생한 기아그룹 도산은 10조원에 육박하는 부채를 남겼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갚아야 할 돈은 1500억 달러가 넘었다. 반면 보유한 외화는 40억달러에도 못 미쳤다.

해태의 부도로 타이거즈는 2001년 시즌 중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됐다. 앞서 현대차가 기아를 인수하면서 지금의 기아 타이거즈가 된 것이다.

쌍방울은 팀 자체가 해체됐다. 물론 SK그룹이 자유계약(FA)이 된 선수단 및 지명권을 인계했지만, 실제 레이더스 구단 전체를 인수한 것이 아니어서 삼청태(삼미·청보·태평양) 팬들 간 정통성 논란이 불거졌다.

부산 대우 로얄즈가 1997년 프로스팩스컵에서 우승한 후 촬영한 기념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초호화 군단 부산 로얄즈, 대우그룹 부도 이후 기업구단 최초 2부리그 강등

K리그의 경우 부산 대우 로얄즈가 있다. 이 팀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조광래를 비롯해 이태호, 정용환, 김주성, 변병주 등 초호화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다.

외환위기가 온 1997년이 절정기였다. 샤샤와 마니치, 뚜레로 구성된 외국인 선수를 비롯해 하석주, 정재권, 수비수로 변신한 김주성 등을 앞세워 K리그 우승과 2개의 컵대회 등 모든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도산으로 구단 해체 위기까지 갔다가 간신히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됐고, 이후 투자가 축소되면서 2015년 기업구단 최초로 2부리그로 강등됐다.

대전 지역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창단했던 대전 시티즌도 관련 회사들의 도산으로 완전한 시민구단이 돼버렸다. 물론 계룡건설으로 인해 2005년까진 기업구단이었다. 하지만 시민구단이 된 이후 재정난 등을 이유로 지금은 2부와 1부리그를 들락거리는 신세다.

실업축구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국민은행과 한일은행, 기업은행, 이랜드 푸마가 해체됐다. 다음 해는 할렐루야, 한일생명, 주택은행 등이 사라졌다.

1998년 해체된 고려증권 배구단. /V리그

◆여자농구·배구, 외환위기 이후 팀 반토막…男 전설의 고려증권 해체

여자농구의 경우 1999년 프로화를 추진 한국여자농구연맹 출범을 출번했다. 다만 외환위기 전 13개에 달했던 팀은 5팀으로 쪼그라들었다.

실업리그였지만 사실상 프로였던 배구는 전설의 남자팀 고려증권이 기업의 부도로 1998년 해체했다. 여자배구는 9개에서 5개팀으로 사실상 반토막났다.

아울러 올림픽 출전 종목인 사격과, 역도, 탁구, 마라톤, 아이스하키, 테니스 등 굴지의 기업이 후원하던 팀들도 역사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여파 때문일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평균 10위권보다 낮은 종합순위 12위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재계 관계자는 “스포츠 구단이나 스타선수를 후원하는 것은 엄청난 마케팅 효가가 있다”며 “이 때문에 삼성은 올림픽이나 각종 프로 구단을 운영·스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계열사 중 수익을 내는 곳도 거의 없다”며 “즉, 경제가 살아나야 스포츠 및 지역사회도 투자가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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