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출산 장려 위주 정책→모든 세대 삶의 질 높이는 정책
‘결혼·출산해도 삶의 질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게 중요’
출산·양육비 부담 최소화…돌봄체계 구축 집중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 발표하는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사진 제공= 연합뉴스

[한스경제=홍성익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산 장려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저출산·고령화 정책 패러다임 전환에 나선다.

그간 출산율 올리기에 급급했던 정부의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이 '삶의 질 개선'과 '성 평등 확립'으로 바뀐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출산.양육비' 대책/제공=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위원회를 열어 이런 내용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확정·발표했다.

이번 로드맵은 저출산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큰 의미를 가진다. 그 동안에는 출산을 장려하는 데 몰두했다면, 이제는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젊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아이 낳기를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이창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조정관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대책은 나오기 어렵다”며,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당사자에 따라서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단번에 해결하는 정책을 내놓기는 어렵고 결혼을 하거나 출산을 하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출산율 목표도 따로 제시하지 않았다. 출산율 목표치를 정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기존 정부 방식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7월 3차 기본계획에 제시했던 ‘2020년 합계출산율 1.5명’ 목표도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고 정부는 인정했다.

이 조정관은 “3차 기본계획에서 (합계출산율 목표를) 1.5명으로 잡았는데 실현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며, “1971년 102만명 출산을 정점으로 해서 지금 35만8000명으로 떨어졌고 올해 말에는 32만2000명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이는데 30만명 밑으로 떨어지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30만명 출생아 수를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에 새롭게 제시한 정책 목표는 2040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희망을 주고, 남녀 평등한 일터와 가정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같은 목표 실천을 위해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저출산 분야) △함께 만들어가는 행보한 노후(고령화 분야) △인구변화 적극 대비 등 3대 분야로 정하고 세부 과제 12개를 설정했다.

◇ ‘출산율 1.5명’ 목표 ‘집착 안 해’…출생아 수 30만명대 유지 초점

계속되는 출산율 하락세에 그간 정부는 이대로 가다간 생산가능인력 부족과 소비위축 등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져 국가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경고해 왔다.

특히, 3차 기본계획(2016∼2020년)에서는 ‘저출산 극복의 골든타임’을 강조하며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 1.5명’을 달성하겠다며 단호한 저출산 극복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는 7일 이번 로드맵에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사회'를 만든다는 비전을 담았다고 설명했다./제공=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하지만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미끄러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인구감소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3년간 5년 단위로 3차례에 걸쳐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으면서 갖가지 출산장려책을 쏟아내며 출산율 제고에 힘썼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유아시설이 부족한 데다, 청년세대가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환경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였던 셈이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8년 9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출생아 수는 집계 이래 가장 적은 8만400명으로 작년 같은 분기보다 9200명(10.3%) 줄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보이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3분기 0.95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0.10명 낮아졌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 1.68명을 크게 밑돌면서 꼴찌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다. 합계출산율이 1.1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5년(1.08명) 이후 12년 만이었다. 정부는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추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감소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정부는 푼돈 쥐어주며 출산율을 높이려던 정책에서 탈피, 저출산 정책의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를 결정했다. 부족한 보육·유아시설,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환경 등을 외면한 저출산 대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지난 10월 만 19∼69세 국민 1000명 대상의 ‘저출산·고령사회 관련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있다. 조사 대상자 93.0%가 기존의 출산율 목표 달성의 ‘출산장려’ 정책에서 국민의 ‘삶의 질 제고’ 정책으로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에 찬성 의견(매우 33.7%, 찬성하는 편 59.4%)을 나타냈다. 반대 의견은 7.0%에 불과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이창준 기획조정관은 “출생아 수 30만명을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의료비와 양육비 부담을 최대한 낮춰서 각 가정이 2자녀를 기본적으로 낳아서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저출산 추진과제·예산…선택과 집중

정부는 아동과 2040세대, 은퇴세대 등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했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해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남녀 평등한 일터와 가정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키로 한 것이다.

청년세대에게는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 지원을 통해 결혼할 수 있게 해주고, 아이를 낳고 키우길 원하는 세대는 일하면서 아이 키우더라도 경력단절 등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힘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3차 기본계획에서 추진 중인 총 194개에 달하는 정책과제를 역량집중과제 35개(저출산 분야 18개, 고령사회 분야 17개)와 계획관리과제 65개, 부처 자율과제 94개 등으로 나눠서 정비하고 역량집중과제를 중점으로 이행실적과 성과를 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보육교육, 신혼부부 맞춤형 임대주택 공급 확대, 남성 육아 참여 활성화, 아동수당 지급, 지역사회 내 돌봄여건 확충, 직장어린이집 설치 지원 등이 포함됐다. 정부는 이들 핵심과제 추진에 10조6139억원이 투입된다.

◇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의료비 제로화 추진…2040 부담 최소화

정부가 아이를 키우는 2040세대의 양육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의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1세 미만 아동의 의료비를 사실상 0원으로 만드는 데 이어 2025년까지 취학 전 모든 아동에게 같은 혜택을 줄 계획이다. 내년에는 먼저 1세 미만의 외래진료비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줄여주고, 나머지 의료비는 임산부에게 일괄 지급되는 국민행복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한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 강화하고 지방정부가 아동의 본인부담금을 대납하는 방식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에 대한 ‘의료비 제로화’를 추진한다. 조산아와 미숙아, 중증질환에 걸린 아동의 의료비도 줄여준다. 의료비 본인부담률을 10%에서 5%로 줄이고, 왕진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만혼 추세를 고려해 45세 이상 여성에게도 난임 시술을 지원하고, 출생신고 시 혼외자를 구별하지 않는 등 비혼 출산에 대한 차별적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난임시술비 본인부담률(현행 30%)을 더 낮추고, 건강보험 적용 연령(만 45세 미만)도 높인다.

젊은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지 않도록 아동수당 지급액과 대상을 크게 확대한다. 현재 상위 10% 고소득층 자녀를 제외한 채 지급되고 있는 아동수당은 2021년 이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적정한 수준을 결정할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전날 예산안 합의를 통해 내년부터 만 5세 이하 아동 전원에게 월 1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내년 9월부터는 지급대상을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다자녀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준을 ‘3자녀 이상’에서 ‘2자녀 이상’으로 변경하고, 자녀를 낳으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출산크레딧’ 혜택을 첫째아부터 주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지금은 둘째아부터 인정되고 있다.

◇ 남성휴직자 비율 20% 목표

내년 하반기부터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을 1시간 단축할 수 있다. 또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은 현행 유급 3일에서 10일로 확대된다. 장기적으로는 육아·학업·훈련 등 생애주기별 여건에 따라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을 도입한다. 이를 통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을 13%에서 2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육아휴직 기간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방안은 곧 시행된다. 월 보험료는 직장가입자 최저수준인 9천원이 될 전망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이 빠르게 확충될 전망이다. 정부는 당초 보다 1년 앞당겨 국공립 보육시설 이용률 40% 목표 달성 시점을 내년으로 잡았다. 앞으로는 500세대 이상 아파트를 건설하면 국공립 보육시설을 반드시 지어야 하고,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도 직장어린이집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2040 세대의 안정적인 삶의 기반(일.주거.교육) 조성/제공=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 2040세대 안정적 삶 기반 조성

정부는 청년 채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일자리를 확충하는 동시에 한국형 실업부조를 도입해 청년의 고용안전망을 강화한다. 직장 내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남녀 임금현황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대상기업을 확대하고, 여성임원 목표제를 도입한다.

당장 내년부터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육아휴직 후 복귀하면 인건비 세액공제(1년간 중소기업 10%, 중견기업 5%) 혜택을 줄 예정이다. 이를 통해 여성고용률을 현재 58%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4%로 높일 계획이다. 

결혼 기피 풍조와 저출산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주거불안 해소를 위해 돌봄 공간을 갖춘 신혼부부 특화단지를 조성하고,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이 수월하도록 저렴한 신혼희망타운을 공급키로 했다. 이를 통해 2022년까지 38만 쌍의 신혼부부가 양질의 공공보육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공주택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사회 대책은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내실화하고, 신중년의 새로운 출발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추진된다. 은퇴세대의 소득 공백과 빈곤 문제 해소를 위해 현재 25만원인 기초연금은 2021년까지 30만원으로 인상된다.

퇴직연금 중도인출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중도해지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해서 연금수령을 유도키로 했다. 노년기 진입 직전의 신중년이 연금수급연령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정부는 사업주가 의무적으로 고용 연장 조치를 마련하도록 법제화한다. 또 신중년 적합직무를 지정하고, 해당 직무에 신중년을 채용하는 사업주에게는 고용장려금(우선지원대상기업 80만원, 중견기업 4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김상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2040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고령사회로의 이행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홍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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