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커피믹스는 기본…테이프·A4용지까지 ‘소확횡’
근무시간 ‘딴 짓’으로...‘시간횡령’도 다반사
엄연한 절도라지만…’작은 일탈’ 이해하는 상사들

[한스경제=허지은 기자] 

취업시즌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뚫고 입사한 사회초년생들은 회사에서도 높은 문턱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사회생활'이라는 신세계다. 그중 회사내 생활은 직장인으로 안착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 된다. 신입사원들이 실제 회사 내에서 부딪치는 상황들과 그에 맞는 대처 방안, 방향을 제시해 그들의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 줄 수 있는 일종의 ‘회사 사용 설명서’를 권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작지만 확실한 횡령, 이른바 ‘소확횡’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안해낸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변형한 소확횡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소소한 일탈을 가리킨다.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나 주전부리 한 움큼을 챙기거나 비품으로 구매한 가위, 스카치테이프, A4용지 등을 몰래 가져가는 식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 소확횡에 나서는 직장인들을 만나봤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 배터리 ‘충전’은 회사에서…인쇄는 무조건 ‘컬러’로

“핸드폰 충전은 집에서 하지 않아요. 무조건 출근 후에 회사에서 충전합니다. 출근길에 배터리가 1%인 상태로 출근한 적도 있다니까요. 옆 자리 대리님은 핸드폰에 보조배터리,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충전하시더라고요”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A씨의 소확횡은 회사의 ‘전기 횡령’이다. 핸드폰은 물론 보조배터리, 블루투스 이어폰, 칫솔 살균기까지. 충전이 필요한 모든 기기를 회사에서 충전하는 것이다. 전기세 한 푼도 아까운 사회초년생들에겐 집이 아닌 회사 전기를 쓰는 건 의외로 흔한 풍경이다. A씨는 “회사에서 직원들 쓰라고 주는 전기니 아낌없이 쓰자는 마인드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B씨는 ‘원 플러스 원(1+1)’의 고수다. 회사에서 공용비품으로 구매한 볼펜, 포스트잇, 형광펜 등을 한 번에 두 개씩 챙기기 때문. B씨는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고 필요할 때 없는 경우가 많아 하나는 회사 책상에, 하나는 가방에 넣어 두려고 두 개씩 챙긴다”고 설명했다.

탕비실 털기는 가장 기본적인 소확횡 중 하나다. 커피믹스를 한 움큼 챙기거나 과자, 빵, 초콜릿 등을 쟁여가는 식이다. 그만큼 탕비실 담당의 한숨도 늘어가고 있으니 '정도'를 지킬 필요는 있다./사진=드라마 미생

IT회사에서 탕비실 담당인 C씨는 요즘 소확횡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C씨는 “탕비실에 커피믹스나 과자, 빵 등 간식을 채우고 나면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동이 나고 만다”며 “커피나 과자 한 두개쯤 더 가져가는 건 괜찮지만 몇몇이 자기 집에 둔다고 다 가져가서 사장님께 혼이 난 적이 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D씨는 출력만큼은 모두 컬러로 하는 게 소확횡이라고 말했다. 그는 “밖에서 컬러인쇄하면 장당 몇백원은 받는데 회사에서는 모두 공짜”라며 “업무용으로 필요한 것 뿐 아니라 야구 관람 티켓, 개인적으로 필요한 서류도 회사에서 뽑아본 적이 많다”고 털어놨다.

◆ ‘시간횡령’으로 ‘월급루팡’ 나서는 직장인들

소확횡엔 물질적인 횡령만 있지 않다. ‘시간횡령’은 가장 흔한 종류의 소확횡이다. 일하는 중간중간 흡연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중견기업 차장인 E씨는 금연을 결심한 후 흡연시간만큼 휴식시간이 줄어들어 낭패를 봤다고 말했다.

E씨는 “평소 오전에 두어번, 점심시간, 오후에 두어번쯤 흡연시간을 가졌었다”며 “건물 내 금연이기 때문에 회사 밖으로 나가거나 옥상으로 올라가야하는데, 이동시간을 포함해서 10~20분 정도 흡연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호소했다. 이어 “그래서 요즘은 회사 근처 카페로 커피를 사러 종종 나간다”고 덧붙였다.

외근이 잦은 F씨는 외근시간을 이용해 낮잠을 잔 적이 있다고 밝혔다. F씨는 “업무 특성상 경기도 외곽으로 외근을 자주 나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낮잠을 청하는 적이 종종 있다”며 “휴게소 주차장을 보면 나처럼 쪽잠을 자는 버스, 트럭 기사분들을 자주 만난다”고 말했다.

'흡연시간'과 '커피타임'은 직장인들의 '시간횡령'에 해당한다. 건물 내 금연을 지정하는 회사가 늘면서 회사 밖과 옥상으로 이동하며 시간을 깎아먹는 식이다./사진=tvn 드라마 미생

그렇다면 흡연시간과 낮잠을 포함한 휴식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인정될까.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주52시간 가이드라인을 보면 흡연 또는 커피를 사러 가는 시간 등은 ‘대기시간’으로 인정돼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E씨처럼 커피를 사러 회사 앞 카페에 갔을 경우 상사가 부르면 바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어서다.

다만 F씨와 같이 사업장 밖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경우는 정확한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렵다.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출장이나 그 밖의 사유로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는 소정근로시간을 일한 것으로 보고, 소정근로시간보다 더 일한 경우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정한 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간주토록 하고 있다.

◆ 소확횡, 엄연한 절도?...“우리 때도 다 그랬는데” 이해하는 상사들

직장인들의 소확횡을 두고 엄연한 절도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져가는 물건의 가격이 높고 낮은 건 중요하지 않으며 종이 한 장이라도 챙기면 절도가 될 수 있다는 것. 현행 법에 따르면 형법 제329조에 따라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절도죄는 훔친 물건의 가치에 비례하지 않고 행위 자체로 판단되기 때문에 소확횡은 다소 위험한 일탈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소확횡에 대한 상사들의 입장은 의외로 너그러웠다. 대기업 상무로 재직 중인 G씨는 “우리 때도 다 그랬다”며 운을 뗐다. G씨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근무 시간은 선진국보다 훨씬 길다”며 “흡연 시간이나 점심 시간 이후 화장실 가는 시간, 업무 중간 커피타임 등 휴식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2024시간으로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일한 시간이 길었다.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국가는 독일로 연간 1356시간에 그쳤으며 덴마크(1408시간), 노르웨이(1419시간), 네덜란드(1433시간) 등 유럽 선진국의 근로시간은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짧다.

외국계 기업 부사장인 H씨는 “업무에 지장이 갈 정도만 아니라면 그 안에서 쉬는 건 자기 재량이다”라며 “그걸 문제 삼는 건 요즘 세대가 말하는 ‘꼰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확횡이 왜 유행이 되고 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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