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자 회생절차에 변제율 30% 요구하는 정책금융회사...업계 '갑질 중 갑질'
대표자 회생절차에 변제율 30% 요구하는 정책금융회사...업계 '갑질 중 갑질'
  • 양인정 기자
  • 승인 2018.12.09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책금융기관, 회사 빚 보증에 변제율 30% 요구
구조조정 업계, 회사 보증 빚 막대...변제율 미미할 수밖에
정부 회생법원, 회생기업 대표 구제에 발벗고 나서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한스경제=양인정 기자] “회사가 위기에서 벗어나면 뭐 합니까. 금융회사가 보증 빚 채무조정을 안 해 주는데” 최근 회생절차를 성공적으로 마친 현대차 협력사 K기업 대표이사 A씨의 하소연이다.

A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K기업은 현대차 협력사로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회사는 최근 회생계획안이 통과돼 현재 정상영업 중이다. 회사는 위기를 모면했지만 A씨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쳤다. A씨가 회사의 보증 빚으로 회생절차를 밟아야 했던 것. 기업이 회생절차 구조조정에 돌입하면 대표이사도 같이 개인회생절차를 밟기 마련이다. 회사의 대출금에 대해 보증을 선 빚을 조정하기 위해서다. A씨가 진 회사의 보증채무는 약 600억원. A씨가 회사에 받는 급여로 갚을 수 있는 최대 변제율은 2.2%에 불과했다. 채권단에 포함된 한 정책금융회사는 A씨에게 변제율 30%를 요구하며 채무조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9일 구조조정 업계에 따르면 법원에서 법정관리로 구조조정을 마친 중소·중견 기업의 대표자들이 정책금융기관의 갑질로 회생절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채권금융사들이 회사 보증 빚으로 회생절차를 밟는 대표자들에 대해 무리한 변제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모면한 회사가 대표자의 채무문제로 다시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 업계와 파산법조계는 기술신용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과 같이 정책금융기관이 회생절차에서 주요 채권단을 구성하는 경우 대표자에게 요구하는 변제율이 통상 30%로 보고 있다. 

정책금융회사가 대표자에게 30%의 변제를 요구하는 근거로 구조조정 업계는 ‘연대보증채무 감면 특례’규정을 들고 있다. 해당규정은 기업이 회생절차를 통해 빚이 줄어들면 대표자의 보증 빚도 함께 줄어드는 것으로 돼 있다.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이 보증채무 감면 특례 규정으로 채무를 감면했기 때문에 변제율 30%가 과하지 않다는 말로 대표자의 채무조정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표자가 거치는 회생절차도 법인회생과 마찬가지로 담보채권액 75%, 회생채권액의 66,6%에 해당하는 채권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회생절차가 통과된다. 변제율 30%를 맞추지 못하면 채권단 동의율 확보가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구조조정 업계는 변제율 30%가 비현실적인 수치라고 지적했다. 대표자가 부담하는 보증 빚은 회사의 빚 규모와 비등한 경우가 많아 대표자가 월급을 가지고 30%를 갚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A씨의 사례에 회사 보증 빚의 30%를 상환하려면 최장 10년 동안 180억원을 갚아야 한다.  

구조조정 업계는 중소·중견기업의 대표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현실성 없는 변제계획안을 제시해 가까스로 회생절차를 벗어나지만 이내 계획대로 갚지 못하고 이내 파산절차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 중소기업 대표자, 빚지고 야반도주...막대한 보증 빚 조정되는 환경 만들어야

문제는 금융사의 이 같은 무리한 요구가 기업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설립에서부터 성장, 도산, 재기의 전 과정에서 대표자의 역량이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며 “대표자의 파산은 회생을 거친 기업이라도 향후 영업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회생절차에서 채권금융사의 이 같은 무리한 요구가 회생절차가 필요한 시기에 오히려 기업이 회생을 꺼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17년 중소기업 위상지표에 따르면 2016년 신규 사업자수는 122만 6443곳이고 폐업한 사업자 수는 90만 9202곳이다. 

한편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과 기업이 신청한 회생과 파산신청은 모두 12만 7988건이었다. 이 가운데 채무금액 5억원이 넘는 기업의 대표자나 자영업자가 신청한 회생사건은 1451건으로 전체 1.14%에 해당했다. 

7일 변호사연수 강연에서 대표자의 회생절차를 강의한 안창현 변호사(법무법인 대율)는 “매년 80만명이상의 사업자가 폐업을 하는 상황에서 회생신청 건 수은 극히 미미한 상황”이라며 “상당수 중소기업의 대표자와 자영업자들이 합법적인 채무조정을 회피하고 야반도주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위원회가 정책금융회사의 회생절차 채무조정안에 대해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회생법원이 중소·중견 기업의 대표자들에 대한 회생절차에서 강제인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제인가는 회생담보권 채권액의 75%, 회생채권 채권액의 66.6%의 동의가 없더라도 법원이 강제로 채무자의 회생계획안을 통과시키는 결정을 말한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대표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변제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회생법원은 이 경우 강제인가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