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편집자] 지난 칼럼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헌사(獻詞)였다면, 이번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문화현상으로 자리한 ‘퀸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미 밝힌 바 있듯이 난 ‘퀸심’ 가득한 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가 오래지 않은 신입 덕후 쯤 된다. ‘퀸덕후’에게 있어 영화N차 관람은 기본이고, 떼창은 필수, 멤버들 코스프레는 선택사항이다.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굿즈도 마련해야한다. 

사실 영화 개봉 초기만 해도 싱어롱관의 떼창 열기는 지금 같지 않았다. 부르고 싶어도 옆에 있는 관객들 눈치 보다가 그냥 목 넘김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퀸을 그리워하는 40대 이상의 관객들은 수줍게 그들을 추억했고 반겼다. 

하지만 현재 ‘퀸 신드롬’의 중심에 있는 2030세대는 다르다.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그 아쉬움의 크기만큼 열정적으로 퀸과 만난다. 이미 즐길 준비를 하고 극장을 찾는다. 공연장이 된 그곳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는 노래는 눈물, 웃음, 감동을 넘어서는 무한대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한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일종의 해방구인 셈. 

그렇다면 젊은층이 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음악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흙수저와 금수저로 양분돼버렸다. 그와 동시에 ‘가능성’이라는 희망의 통로가 차단된, 매우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적어도 그렇게 단정 짓고 싶지 않지만 2030세대의 대다수는 현재를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취준생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고목사회(枯木死灰)’라고 한다. ‘마른 나무나 다 타버린 재’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의욕과 꿈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런 그들에게 ‘프레디 머큐리’는 ‘희망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한 존재다. 잔지바르 출생, 영국인들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평론가 집단에 의해 그의 실험정신까지 매도(罵倒)되기 일쑤였고, 훌륭한 무대매너는 과장됐다는 혹평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는 일종의 흙수저, 아싸(아웃사이더를 뜻하는 신조어)에 대한 테러였다. 

“내 자신은 내가 정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의 가슴에 꽂힌 프레디 머큐리의 명대사다. 어쩌면 이는 그가 태생적 한계를 던져버릴 수 있었던 마법 같은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결국 주변부가 아닌 세계음악의 중심으로 거듭나 현재, 그를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 청년들과 이처럼 뜨겁게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깨질 것 같지 않은 유리천장을 용감하게 깨버린 그의 이야기에 감정이입하고 그것에 대한 리액션으로 지금 우리는 열렬히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퀸의 음악은 어느 한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 시공을 초월해 판타지적인 세상을 상상하고 자유를 갈구하고 사랑을 노래한다. 비판과 인기가 공존했던 1970년대~80년대를 뛰어넘어 2018년 퀸은 신화가 되어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며 칭송받고 있다. 모든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음악과 숨겨졌던 히스토리의 컬래버레이션이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Don’t Stop Queen Now!
그런 이유로 지금 퀸은 2030세대에게 멈출 수 없는 희망과 위로, 즐거움이 되고 있다.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